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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모압 여인의 사랑과 도전, 룻기6: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룻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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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4,628 추천수0

모압 여인의 사랑과 도전, 룻기 (마지막 회) 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룻 4,17)

 

 

룻기 4장은 복잡합니다. 법적 문제가 이리저리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교 전통과 현대 학자들이 여러 가지 설명을 시도하지만, 이야기에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습니다.

 

 

“나보다 더 가까운 구원자”(3,12)

 

지난달에 슬쩍 미뤄둔 부분이 있습니다. 보아즈에게 룻이 “어르신은 구원자이십니다”(3,9)라고 말했을 때, 보아즈가 룻에게 “나보다 더 가까운 구원자가 있다”(3,12)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보아즈는 다른 고엘이 의무를 실행한다면 그대로 좋고, 그가 의무를 실행하려 하지 않으면 자신이 룻의 요청을 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제 4장입니다. 보아즈는 성문으로 올라가 앉습니다. 성문은 우리의 숭례문, 흥인지문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어서 그 근처에 시장이 서고, 재판을 비롯한 공공 생활이 이루어집니다. 지금 보아즈는 재판하려고 성문으로 간 것입니다. “때마침”(4,1) 보아즈가 말한 고엘이 지나갑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벌써 아시지요? 룻기 본문은 우연인 듯 말하지만 사실 그 이루어지기 힘든 우연이 바로 하느님의 개입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보아즈는 그 고엘에게, 나오미가 엘리멜렉에게 속한 밭을 팔려고 내놓았다고 말합니다. 이 밭은 수수께끼와 같습니다. 밭이 있다면 나오미는 빈털터리가 아니고 룻은 이삭을 주우러 갈 필요가 없는 것 아닐까요? 여러 가지 설명이 있지만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밭 이야기를 들은 고엘은 밭을 사겠다고 말합니다. 엘리멜렉에게는 후손이 없으니 고엘이 산 밭은 나오미와 룻이 죽고 나면 결국 그가 차지하겠지요. 그는 명목상으로 율법이 부과하는 의무를 수행하여 누구의 비난도 받지 않으려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재산을 그대로 보전합니다.

 

그러나 보아즈는, 그 밭을 사들이면 룻을 아내로 맞아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목할 것은 보아즈가 성문에 올라가 앉아 율법을 해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달에 본 바와 같이, 집안의 상속 재산을 지켜 주는 것이 율법에서 고엘의 의무를 규정한 진정한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후손이 없는 과부에게 밭만 사 줘서는 그 법의 정신을 구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라고 말씀하셨겠지요. 자동차가 신호가 바뀌었다고 보행자가 있는데도 그냥 내달려서는 안 됩니다. 교통 법규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고인의 이름이 … 없어지지 않도록”(4,10)

 

그 고엘은 자기 재산을 망치지 않기 위하여(4,6 참조) 고엘의 의무를 포기합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보아즈에게도 그 밭을 살 의무는 없습니다. ‘어차피 엘리멜렉에게는 후손이 없는데 나오미의 땅을 사 주면 무엇하랴, 그 땅을 누구에게 물려주랴.’ 이렇게 생각하고 그 땅이 다른 사람에게 팔리도록 내버려 둘 수도 있을 것입니다.

 

보아즈에게 율법 해석을 가르친 이는 룻이었습니다. 엘리멜렉 집안에 고엘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룻을 아내로 맞아 아들을 낳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어르신의 옷자락을 이 여종 위에 펼쳐 주십시오. 어르신은 구원자이십니다”(3,9)라며 가르쳤습니다. 보아즈는 그 요구를 받아들여 “고인의 이름을 그의 소유지 위에 세워, 고인의 이름이 형제들 사이에서, 그리고 그의 고을 성문에서 없어지지 않도록”(4,10) 합니다. 보아즈가 룻을 아내로 맞이하지 않았다면, 나오미와 룻이 죽은 뒤 그 집안은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보아즈는 룻의 율법 해석을 따라 한 집안을 살립니다.

 

보아즈보다 더 룻과 가까운 다른 고엘의 이름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불편함을 감수하며, 그가 실제로 고엘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는데도 달리 방법이 없어 매번 ‘그 고엘’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이름이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보존되지 않았습니다. 엘리멜렉과 보아즈와 룻의 이름이 보존된 것과는 대조됩니다.

 

온 백성과 원로들은 룻을 축복하여, 하느님께서 룻을 “둘이서 함께 이스라엘 집안을 세운 라헬과 레아처럼 되게 해 주시기를”(4,11) 기원합니다. 엄청난 일입니다. 모압 여자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어머니에 비견됩니다. 이것은 룻의 헤세드가 가져온 결과이고, 더 좁게 말하면 룻의 율법 해석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오르파와 같이 모압의 친정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어머니 곁에 남기를 선택한 룻의 헤세드, 다른 사람을 만나 혼인하려 하지 않고 엘리멜렉 집안을 위해 고엘인 보아즈를 찾아간 헤세드, 이에 응답한 보아즈의 헤세드. 율법 정신을 지키기 위해 규정된 의무를 넘어서는 룻과 보아즈의 율법 해석, 이것이 모압 여자를 다윗의 조상이 되게 합니다.

 

 

“보아즈는 오벳을 낳았다”(4,21)

 

지금까지의 논리에 따르면 룻은 엘리멜렉의 대를 잇기 위해 나이든 나오미를 대신하여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그러니 오벳은 나오미의 아들이어야 합니다(“나오미가 아들을 보았네”: 4,17). 신명기의 규정에 따라 죽은 형제를 대신하여 과부인 형수를 아내로 맞을 경우, 일반적으로 그 혼인은 영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룻과 보아즈의 경우는 다릅니다. 보아즈가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어떤 경우이든 룻이 엄밀한 의미에서 보아즈의 형수는 아니므로 룻과 보아즈의 혼인은 영속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오벳은 어떤 경우에는 나오미의 아들이라 일컬어지고 - 그렇다면 족보상 엘리멜렉의 아들이어야 합니다 - 다른 경우에는 보아즈의 아들이라 일컬어졌을 것입니다.

 

룻이 낳은 아들 오벳이 “다윗의 아버지인 이사이의 아버지”(4,17)라는 점에 특별히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족보가 없었다면 룻과 보아즈의 이야기는 한 평범한 집안의 따뜻한 사랑 이야기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이는 다윗을 낳았다”(4,22)는 마지막 구절은 룻기 전체를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놓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지니는 전무후무한 의미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에게 다윗은 영광스러운 과거의 임금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이 다윗의 후손을 기다린 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다윗은 메시아의 전형입니다. 아니 다윗은 기름부음을 받은 임금이었으니 글자 그대로 메시아였습니다. 그런 다윗은 룻이 있어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엘리멜렉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도록 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희망이 룻에게 달려 있게 된 것입니다.

 

마태 1장의 족보에서도 룻의 이름이 언급된다는 사실 역시, 룻 이야기가 한 집안의 이야기가 아님을 말해 줍니다. 룻기가 작성된 에즈라-느헤미야 시대는 율법을 크게 강조한 시대입니다. 이방인을 배척한 시대입니다. 이스라엘의 미래는 모압 여자의 도전을 받아들이는 데 있다고 말하며 룻기는 이러한 시대에 도전한 것입니다.

 

아가와 마찬가지로, 룻기는 축제 오경에 속합니다. 룻기는 추수절 전례 때에 사용됩니다. 이 경우 역시 처음부터 룻기가 추수절을 위해 쓰인 것은 아니고, 후대에 그러한 관습이 생겨난 것입니다.

 

왜 추수절에 룻기를 읽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룻기의 사건이 추수절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파스카 축제로부터 50일이 지난 후에 시작되던 추수절은 본래 보리 추수를 끝마치는 감사의 축제였지만, 후대에는 하느님께서 시나이에서 율법을 주신 사건과 계약 체결을 기념하는 축제로 변했습니다. 룻기는 율법과 관련해서도 추수절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해석은 여러 가지입니다. 룻을 개종자의 전형으로 보면서 룻의 개종을 통해 율법의 선물이 외국인들에게까지 확장됨을 기념한다고 설명하기도 하고, 룻의 충실함이 토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충실함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룻의 율법 해석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모압 여자 룻은 참으로 율법을 실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스라엘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모압 여자의 도전장,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헤세드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성 도미니코 말씀의 은사》,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3년 12월호(통권 453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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