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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아브라함과 이사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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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6-09 조회수1,651 추천수0

[구역반장 월례연수] 아브라함과 이사악

 

 

창세기의 전반부(1-11장)를 이스라엘 백성이 고백하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 체험을 바탕으로 우주의 기원과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다루고 있는 인류의 ‘원(原)역사’라고 한다면, 11장 27절에서 마지막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의 선조들이 하느님 안에서 어떻게 성장하였는지를 밝히는 ‘선조 시대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조 이야기는 4대에 걸쳐 펼쳐진 이스라엘 선조들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그 첫 번째 부분, 즉 창세기 11장 27절-25장 18절은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하느님께서 하란 땅에 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당신께서 “보여줄 땅”(12,1)으로 떠나라는 명령으로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 곧 자손과 땅과 축복을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은 그분의 말씀에 따라 자신이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말씀하신 가나안 땅에 가서 정착합니다. 그곳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당신 백성 이스라엘의 조상이요, 모든 믿는 이들의 조상이 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시험을 통해 그의 믿음을 단련시키십니다. 유다교 전통에 따르면 이 시련들은 ① 고향을 버리고 떠나라 하신 것(12,1-2), ② 가나안에 기근이 들게 하시어 이집트에서 나그네살이를 살아가도록 하신 일(12,10), ③ 롯을 살리기 위해 왕들과 싸운 일(14,1-24) ④ 아내 사라를 이집트 왕에게 넘기신 사건(12,15) ⑤ 계약을 새롭게 하시며 할례를 요구하신 일(17,1-27) ⑥ 이스마엘과 하가르를 떠나보내는 사건(21,8-21) ⑦ 외아들 이사악을 바치라고 하신 일(22,-19) ⑧ 사라가 죽었을 때 슬픔을 얼마나 잘 참는지에 대한 시험(23,1-10)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면 아브라함의 삶은 축복의 삶이라기보다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시험들을 통해 아브라함을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오로지 당신만을 신뢰하도록 교육하셨습니다. 그의 삶은 분명 굳건한 믿음과 온전한 순종을 배우는 삶이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충실히 하느님을 따르며 자신을 봉헌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뜻하지도 않은 불행한 일들을 삶에서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의 눈으로만 본다면, 하느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그분의 사랑을 의심할만한 일들이 생깁니다. 하지만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고통과 시련 가운데 우리의 신앙이 더욱 단단해질 수 있도록 시험을 받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시련 가운데서도 당신 약속에 성실하신 하느님을 굳건히 믿을 수 있도록 우리를 시험하시는 하느님. 그런 의미에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아브라함을 참된 신앙인으로 성장시켜나갔는지 살펴볼 때, 우리도 삶 속에서 주어지는 수많은 시련들 속에서 더욱 굳건한 신앙을 키워나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제 아브라함 삶의 여정에 가장 어려운 시험,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시험, 곧 외아들 이사악을 바치라는 하느님의 말씀과 이에 아브라함은 어떠한 선택을 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창세 22,2) 아브라함은 일생동안 하느님에게서 두 차례 ‘가거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첫 번째는 고향과 친족을 떠나 하느님께서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명령이고 두 번째는 이사악을 바치기 위해 모리야 땅의 산으로 가라는 명령입니다. 이 두 번의 ‘가거라’는 의미와 정도가 매우 다릅니다.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가거라’는 고향과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남으로써 과거와의 단절을, 모리야 산으로 이끄시는 ‘가거라’는 아브라함의 외아들을 죽임으로써 미래와의 단절을 요구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아브라함과 같이 지난 삶의 방식을 버리고 또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두려움도 떨쳐버리고 온전히 하느님만을 믿으라고 언제나 ‘내가 너를 이끄는 곳으로 “가거라”’하고 말씀하는 것은 아닐까요?

 

여하튼 이러한 명령에 아브라함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바로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곳으로 길을 떠났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이런 비상식적인 명령에 어떠한 내적 갈등도 없었을까요? 비록 아브라함은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갈등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을 우리는 충분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하느님만을 믿고 내 고향과 친족을 떠나 왔는데... 그리고 땅과 자손을 약속하신 하느님을 끝까지 믿고 결국은 내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얻게 되었는데... 난 이제 어떻게 살아 가야하지? 하느님은 결국 나를 이용하신 것일까? 다른 것은 다 가져가셔도 되는데, 이사악 만큼은 결코 안 된다고 떼라도 써야 하나….’ 자손의 축복을 약속하신 하느님과 지금 자신의 외아들을 바치라는 하느님의 모습은 너무나도 대조적이고 그로 인해 하느님을 두고서 스스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분, 거짓말쟁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믿는 하느님이 이런 분이라니…. 아브라함의 갈등과 고통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잘 압니다. 아브라함의 가슴 속 깊이 자리잡고 있던 하느님의 선하심에 대한 믿음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믿음이 그를 모리야 산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신앙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순종은 결코 충동적인 것도, 맹목적인 것도 아닙니다. 온전히 우리 각자의 자유로운 응답에 결과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들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굳건한 믿음은 우리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따르도록 이끄는 힘입니다. 비록 엄청난 내적인 갈등과 의심으로 하느님을 의심하고 원망했을 아브라함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신실하심을 믿었습니다. 모리야 산으로 오르는 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외아들 이사악이 “아버지! 불과 장작은 여기 있는데, 번제물로 바칠 양은 어디 있습니까?”(22,7)라고 물었을 때, 아브라함은 “얘야, 번제물로 바칠 양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실 거란다.”(22,8)라고 대답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앙고백입니까! 지금 내게 주어진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분명 나를 위해 필요한 것을 마련해주실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이제 이야기는 절정에 다다릅니다.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고 그곳에 이사악을 묶어 칼을 들고 죽이려 할 때, 주님의 천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줍니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22,12) 이 대목에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사악을 바치라는 시험은 아브라함 혼자 겪어내야 할 시험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시련 속에 하느님은 언제나 아브라함 곁에 계셨고 또 아브라함이 당신을 끝까지 신뢰할 것을 믿고 그의 길을 따라 걸으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하느님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인간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시험대에 올려두신 것입니다. 우리는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가는 것처럼 두려움과 고통의 순간을 보낼 때, 혼자라고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가 충실히 믿음을 증거하도록 우리와 함께 걸으십니다. 그러한 우리 인간에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이사악을 바치지 못하게 하십니다. 오히려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내어주시고 그의 수난 공로와 희생의 제사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토록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겪게 되는 수많은 어려움을 충실한 믿음으로 견디어 낼 때에 우리의 신앙은 더욱 튼튼해 질 것이며 그 길에 끝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말이지요.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0년 6월호, 이영제 신부(사목국 기획연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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