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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네 복음사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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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16 조회수348 추천수0

네 복음사가 이야기


주님의 말과 행적뿐 아니라 ‘뜻’을 전했다

 

 

신약성경 앞부분에 등장하는 네 개의 이야기 복음서는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이 각각 저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복음사가’(福音史家)는 일반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3세기 이래 이 말은 그리스도의 말과 행적 또 삶과 죽음이 담긴 복음서를 쓴 네 명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이들은 각각 사람, 사자, 황소, 독수리 등 고유한 상징으로 표현된다. 10월 18일 성 루카 복음사가 축일을 맞아 네 복음사가에 얽힌 이야기를 살펴본다.

 

 

복음사가

 

예수에 관한 이야기는 입으로 전해진 구두 전승(口傳)과 문서 전승으로 나뉠 수 있는데, 복음사가들은 이 두 전승을 모아 각자의 편집 원칙에 따라 적절히 분류하고 순서를 정해 복음서를 쓴 것으로 추정한다. 사가들은 무작위로 전승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전승을 수집한 다음 세심하게 살피면서 예수의 가르침과 그 모습을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을 것이라고 본다. 「가톨릭대사전」은 “이들을 ‘전승의 수집자’ 혹은 ‘전승을 옮겨 쓴 이’라 부르지 않고 복음사가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밝힌다.

 

복음사가들을 상징과 연결한 것은 에제키엘서 1장 10절과 요한묵시록 4장 7절에 언급된 ‘살아있는 네 생물’에서 유래한다. 상징은 2세기경 프랑스 리옹의 주교 이레네오로부터 비롯됐으나 4세기 말 경 성 예로니모에 의해 복음서와 일치됐다. 그리스도교 미술에서 상징들이 사용된 것은 5세기 이후부터다.

 

복음서를 쓴 마태오·마르코·루카·요한(왼쪽부터). 아래에는 각각의 복음사가를 상징하는 사람·사자·황소·독수리가 그려져 있다. 타데오 디 바르톨로의 작품.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마태오

 

12사도의 한사람이다. 마르코복음과 루카복음 두 군데서 그를 레위(Levi)라고 부르고 있다. 알패오(Alpheus)의 아들이고 예수를 따르기 전까지는 로마제국을 위해 세금을 징수하는 카파르나움의 관리였다. 성령 강림 후 팔레스티나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전승에 의하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마태오는 족보를 통해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혈통을 강조하며 인간성을 뚜렷이 부각하고 있기에 ‘사람’을 상징으로 나타낸다.

 

 

마르코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에 의하면 베드로의 통역이었다. 에우세비오의 「교회사」는 “베드로가 예수님 말씀과 행적에 대해 가르친 것을 충실히 기록했다”고 전한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따라 전교 여행에 동행하기도 했던 마르코는 베드로에게 ‘나의 아들’(1베드 5,13)이라 여겨질 정도로 친근한 동료였다. 전승에 따르면 마르코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를 역임하고 그곳에서 순교했다.

 

마르코는 사막에서 외친 요한 세례자의 이야기로 복음서를 시작하기에 ‘사자’로 묘사된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마르1,3)로 표현한 데서 예술적 전승은 그 소리를 사자 울음으로 비유했다. 눈을 뜨고 잠을 자는 사자는 무덤에 있는 신성(神性)을 뜻한다.

 

 

루카

 

마태오와 마르코가 복음서 저자로 130년경에 이미 증언된 것과 달리, 루카는 180년경 로마에서 작성된 무라토리 경전 목록에서 비로소 루카 복음서 저자로 밝혀졌다. 전통적으로 그는 바오로의 협력자인 의사 루카로 알려진다. 바오로의 죽음 직전 함께 남아있던 유일한 사람이다. 이교도 출신 개종자이며 토로아스에서 처음 바오로를 만났다. 전승에 따르면 미혼이었고 84세에 아카이아에서 사망했다.

 

유다교 성직자인 즈카리야를 언급했기에 ‘황소’로 그려진다. 즈카리야에 의해 성전에서 희생 제물로 황소 또는 송아지가 선택됐고 새 법에서 희생 제물로 그리스도가 선택됐기 때문이다.

 

 

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첫 제자들 가운데 한 명이며 제베대오의 아들이고 야고보(대)의 동기다. 십자가 밑에 남아있던 유일한 제자로서 성모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셨다. 예루살렘 사도 회의 이후 그는 소아시아로 가서 성모 마리아를 돌봤다. 후에 로마 여행을 했고 순교를 피해 파트모스 섬에 가 살았다고 한다. 에페소로 돌아와서는 복음서와 세 통의 서간을 썼다.

 

그에게는 ‘독수리’의 상징이 부여돼 있다. 창공을 높이 나는 독수리처럼 예수님의 신성을 기록했다는 평가에서다. 신학적으로 특출하고, 특별히 복음서의 서두가 매우 높은 위치에 있다는 해석이다. 독수리는 예수님의 신성을 입증하면서 ‘말씀’의 영원한 세대를 응시하는 요한의 시선을 드러낸다.

 

[가톨릭신문 수원교구판, 2019년 10월 13일,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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