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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해' 의 의미 차이?!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이복선 쪽지 캡슐 작성일2014-02-25 조회수744 추천수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답변이 길어져서 별도의 글로 올립니다.-

 

 

* 박윤식님의 답글, 댓글들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들;

 

1. 박윤식님께서 말씀하신 '화해'라는 정의와 제가 인식하는 '화해'의 정의가 서로 차이가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 봤습니다.

 

2. 박윤식님께서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박윤식님 내부에서도 그 두 정의가 혼동되는게 아닐지 생각해 봤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인한 성사적 화해 / 인간적 차원의 화해)

 

3.  또한 댓글에서 

[‘평화를 이루시려고 오신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당신을 핍박한 자들을 화해토록 하신 것이 아닐까 묵상을 했습니다.] 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박윤식님이 사용하신 화해라는 단어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

 

* 똑같은 화해라는 한글로 번역되었다 하여도, 의미상 다른 영어 단어가 여럿 있습니다.

 

한 예로, 다음 검색창에서 화해를 쳐보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compromise   amicable settlement   reconciliation 

 

<출처: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kew000084981&q=%ED%99%94%ED%95%B4>

    

 -----

 

 

* 제가 인식하고 있는 화해라는 단어를 말씀 드리자면,

가톨릭 교리서 1442항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이, 예수님이 몸소 당신 피로 값을 치르고 얻어주신 성사적 의미의 화해'(:reconciliationis, :reconciliation) 입니다.

  

 

<참조> 가톨릭  교리서 1442  

 

 

 1442 그리스도께서는 온 교회가 기도와 생활과 실천으로써, 몸소 당신 피로 값을 치르고 얻어 주신 용서와 화해의 표지와 도구가 되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죄를 용서하는 권한의 행사는 사도직을 맡은 이들에게 위임하셨다. 사도들은 “화해의 직분”(2코린 5,18)을 받았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파견되었으며, 그들을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2코린 5,20) 하고 간곡히 권유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 자신이시다.     

 

 

1442 Christus voluit Suam Ecclesiam totam, in sua oratione, in vita sua et in suis operationibus, signum esse et instrumentum indulgentiae et reconciliationis quas Ipse nobis, Sui sanguinis pretio, acquisivit. Tamen potestatis absolutionis exercitium ministerio concredidit apostolico. Ipsum suscepit “ministerium reconciliationis”(2 Cor 5,18). Apostolus nomine Christi mittitur, et Deus Ipse per illum exhortatur et rogat: “Reconciliamini Deo”(2 Cor 5,20).

 

  

 1442 Christ has willed that in her prayer and life and action his whole Church should be the sign and instrument of the forgiveness and reconciliation that he acquired for us at the price of his blood....(이하 생략)

 

===>

    화해 =  [라] reconciliationis = [영]reconcil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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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식님께서 맨처음에 질문하신 내용인,

 

전에는 서로 원수로 지내던 헤로데와 빌라도가 바로 그날에 서로 친구가 되었다.’(루카 23,12)

 예수님 사형 선고를 앞두고 루카복음 사가의 말입니다.

이 과정에 예수님의 그 어떤 개입의 소지가 혹시 있지 않나 해서 궁금증을 가져 봅니다.

그리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가 궁금합니다.

 없다면 원수지간이 왜 친구가 되었을까요?

 

 

===>

여기서 저는  <헤로데와 빌라도가 원수지간에서 바로 그날 친구가 된 사건>을 

예수님의 성사적 화해(reconciliation)의 개입이 아닌,

그 두 사람의 인간적이고 이해타산적인 화해(compromise ?)’로 보았던 것입니다.

 

 

 -----

 

 

※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제가 찾아 본 자료들과 박윤식님이 인용하셨던 교부들의 주해의 내용이  상호 보완적으로 통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와 다른 의견 개진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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