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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하경호 쪽지 캡슐 작성일2023-01-17 조회수926 추천수0 신고
찬미예수님...

 

제가 성서쓰기를 하면서 어느덧 요한1서 5장을 지나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왜곡없이 읽기에 집중하며 가는 중에

 

예수님이 주신 새계명과 십자가에 대한 부분에서 ?가 생겼습니다....

구원을 위해 믿음으로 회개해야 한다는 것에서 나 자신부터 먼저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는 중심엔 나자신에 대한 사랑도 있어야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신 예수님과 십자가의 희생으로 저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내보이신 예수님의 그 사랑에...

 

예수님 자신의 사랑도 있으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너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아버지하느님께 유일한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신 것과 같이 

사랑받으시는 "예수님도 예수님 자신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저희를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저희 이해가 맞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주원님, 참 아름다워요.

 

성경 필타시 지칠때는 그렇게 눈으로 한호흡 쉬며 가슴까지의 내리사랑을 경험하면 좋치요.

주원님 질문에 의거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광야의 외치는 소리 요한들은 신년 첫 발자국의 이단도 아니요 모두 오병이어의 5단으로 지나가고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읽기에 집중하는 주원님은 십자수를 뜨시는 성모님 향기가 납니다.

 

예수님이 주신 새계명과 십자가에 대한 부분에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새 계명은 그렇게 눈 내려 첫 발자국을 남깁니다.

주원님처럼 믿음이 깊으면 새개명 체인으로 묵고 강조하고 싶으면 새 계명 언체인으로 노래합니다.

구원을 위해 믿음으로 회개해야 한다는 것에서 두려움 없이 나자신부터 사랑하고 있습니다.

매우 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느님 은총으로 알게 모르게 나 자신부터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타인들에게 성모님 향을 향유하는 주원님은 뽐내는 튤립들도 아름다운 동화로 전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부터 먼저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는 중심엔 나자신에 대한 사랑도 있어야하지 않는가?라며 때때로 먹먹하지만

프시케 여행을 하다보면 개인주의 이기주의도 결국 거룩하게 보일 것입니다.

 

부부싸움처럼 너죽고 나죽자 하는 것이 거룩한 것으로 바뀌고

어린시절 너죽고 나살자 골목대장들과 소꼽놀이도 순진과 순수 놀이로 돌아갑니다.

미소 짓는 정추기경님은 너살고 나살자 화답하시며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초월 사랑으로 오늘도 우리에게 모든이 안의 모든 것을 보여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신 예수님은 아버지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함께 내리사랑을 주십니다.

주원님의 이름 속에도 존재하시는 하느님 사랑은 깊은 너와 깊은 나로 하여금 

주님으로 동그라미 성체 현존으로 함께하십니다. 저희가 모두 성체 현존을 믿는 보편 사랑(=가톨릭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 사도행전을 쓰는 프로테스탄트교인도 됐다가 예수님과 친구이신 법정스님도 이슬비 사랑을 노래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십자가의 희생을 봉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무한하신 사랑 때문입니다.

영원의 끝까지 세월호 엄마 아빠들은 그렇게 익어가는 사랑을 채험하며 청원에서 감사기도를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지하철 쏟아지는 붉은 선혈 인파들을 만나 압사 위기를 겪기도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 사랑을 잠시 잃어도 하느님이 계시기에 눈물 글썽이는 사랑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가톨릭 신자들은 경사보다 조사를 선호하지만

하느님은 차례로 더 심하게 주문들을 맞추는 신자들을 맞춰주는 수녀님들 헌신 역시 삐에따 성모사랑을 채험으로 돌아갑니다.

저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내보이신 예수님 그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는 땀 흘리는 신랑의 발꼬랑내를 더 그리스도향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좌도 우도들의 음악과 치과 운동에도 건강과 거룩함을 보시며 기도합니다.

 

예수님 처럼 깊은 자신(하느님 아버지)을 더욱 사랑하는 모습으로 관상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너(하느님, 성모님) 자신은 때때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고통중 하느님께 절규하시는 다섯번째 마디에서 더욱 조명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기에 대사제 멜키세댁 신부님들 역시 온 세상 이웃 또한 한마음 한몸 운동으로 주관하시기에 모든이를 영적 외아들로 볼 수 있길 희망하며 새아침을 맞이합니다.

 

복음을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도민고 성모님 채험으로 치매 엄마와 기쁘고 즐겁게 세상 가장 아름다운 친구들과의 여로 귀로가 보여질 것입니다. 매우 좋은 묵상 친교하는 주원님 날개가 훨훨 날길 응원합니다. 어제 계 탄 소소한 채험도 읽어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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