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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이스라엘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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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14 조회수575 추천수0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이스라엘의 역사 (1)

 

 

성경에 조금 더 쉽게 다가가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도 아닌데, 왜 우리와 상관없는 것 같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봐야 하는 걸까요? 인류 가운데 하느님을 먼저 체험하고 하느님을 믿은 민족이 이스라엘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 백성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하느님께서 함께하셨던 자리가 바로 역사라는 시간과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성경이 이스라엘이라는 특정한 민족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을 체험한 이야기가 이스라엘의 역사에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활동하신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으며, 우리의 역사 안에서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다 언급할 수 없겠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집트 탈출 사건’이고, 둘째는 다윗 왕조가 멸망하고 예루살렘이 파괴되면서 임금과 사회지도층이 바빌론으로 끌려간 ‘바빌론 유배’입니다. 오늘은 먼저 바빌론 유배를 살펴보겠습니다. 탈출 사건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바빌론 유배를 먼저 살펴보려는 이유는, 바빌론 유배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이 성경을 기록하게 된 결정적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 신앙의 중심지는 바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고, 다윗 왕조의 본거지였습니다. 따라서 예루살렘은 야훼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거룩한 장소요, 다윗 왕조의 영속성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성전과 다윗 왕조와 긴밀하게 연결된 예루살렘이었기에 이 도성은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는 맹목적 믿음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방 민족의 침입은 자주 있었지만, 멸망한 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지탱하는 두 개의 축인, 성전과 다윗 왕조가 멸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 의해서 기원전 587년에 예루살렘이 완전히 폐허가 되었을 뿐 아니라, 임금과 사회 지도층이 바빌론으로 끌려가게 됩니다. 이 사건을 우리는 ‘바빌론 유배’라고 합니다. 바빌론 유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굉장히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이 패배는 자신들의 패배가 아니라, 하느님의 패배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질문을 던집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바빌론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보다 힘이 약하고, 바빌론의 신 마르둑보다 무능력한 신(神)인가?” 이스라엘 백성은 유배지에 끌려가서, 자신들이 바라보았던 무너진 예루살렘과 쓰라린 패배를 회상하면서 질문을 곱씹어 봅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이 얻은 신학적 성찰은 야훼 하느님께서 바빌론의 임금과 신들보다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이 먼저 하느님을 배신하고, 옳게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유배라는 정화의 시간을 통해서 벌을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성찰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의 계약을 다시 기억하게 만들었으며,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서 읽고 묵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지금 만나게 되는 구약성경의 약 90%가 이 시기에 저술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에게 찾아온 절망의 시간들을, 고통의 체험들을 하느님을 다시금 찾는 시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 개인의 역사를 떠올려 봅니다. 그것을 우리는 삶, 인생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은 어떠했나요? 순탄했던가요? 고통이 다가옵니다. 그 고통과 어려움은 피해가지 않고 마치 큰 벌이라도 받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를 힘들게 만듭니다. “하느님이 어디에 계신지?”, “하느님은 뭐하고 계신지?”, “계시기는 한 것인지?” 하는 고통의 신음을 뱉어냅니다. 이것은 비단 우리만의 역사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그 고통과 아픔 속에서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 체험을 기억하는 우리 마음의 작은 공간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2019년 1월 13일 주님 세례 축일 인천주보 4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2019 사목교서 ‘성서의 해Ⅰ’] 이스라엘의 역사 (2)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유배라는 시련 속에서 하느님을 기억하고, 하느님 체험을 본격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이 기록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을 체험하고, 하느님을 고백한 조상들이 전해준 신앙을 기록합니다. 그렇게 기록한 이스라엘 신앙의 이야기를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라고 부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한 기술은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고 있는 역사와는 다른 관점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건과 사실에 대한 기술을 넘어서, 하느님을 체험한 사건에 대한 신앙의 이야기입니다.

 

지난주 언급했던 바빌론 유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다시 찾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 원체험은 무엇이었을까요? 자신들의 역사 안에서 쓰라린 패배를 맞이하면서 떠올렸던 그들의 복원 지점은 바로 이집트 탈출 사건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탈출한 사건이 바로 그들의 하느님 체험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탈출과 해방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며 하느님의 백성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체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입니다.

 

이집트 탈출 사건은 하느님의 강한 손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종의 신분에서 자유인이 되고, 억압에서 해방을 체험한 사건입니다. 이는 단순한 탈출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를 통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주십니다. “나는 있는 나다!”라고 자신을 밝히며 아울러, “야훼”라는 이름을 전해주십니다(탈출 3,14-15). 하느님의 적극적인 자기 계시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계약을 맺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이끄심 안에서 자유와 해방을 체험하였을 뿐 아니라,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하느님 백성”이라는 새로운 신원을 얻게 됩니다. 그들이 하느님과의 관계성 안에서 얻게 된 새로운 신원 안에서 광야의 여정으로 이어지고, 광야의 시간을 통해서 성숙한 하느님 백성으로 나아갑니다. 광야에서의 40년의 시간을 보내고,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하느님 체험의 시작점은 탈출 사건이고, 여기에서 그들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탈출 사건 이전의 이야기도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했는가와 이스라엘 성조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탈출기 앞에 놓인 창세기에 담겨 있습니다. 이집트 종살이 이전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의 아버지는 야곱이었으며, 야곱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이사악과 아브라함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아브라함이라는 한 가족 공동체가, 야곱의 대에 이르러 부족으로 성장하며, 민족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또한 창세기는 성조 아브라함보다 앞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벨탑 이야기, 노아와 홍수 이야기,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 인류의 첫 인간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세상의 근원, 시작점을 “한 처음”(창세 1,1)으로 바라봅니다. 세상의 시작점에 하느님이 계셨고,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고백에서 성경은 시작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 체험은 탈출 사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머물지 않습니다. 세상의 첫 순간부터 하느님은 계셨고, 인간을 위해서 하늘과 땅, 삼라만상을 창조하셨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하느님 체험의 순간은 언제였나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해방되는 참된 자유를 체험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그 체험의 순간들이 우리를 “한 처음”의 시간으로 이끌어주고 주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2019년 1월 20일 연중 제2주일 인천주보 4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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