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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33: 안티오키아에 교회를 세우다(사도 11,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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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01 조회수707 추천수0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33) 안티오키아에 교회를 세우다(사도 11,19-26)


안티오키아 제자들,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다

 

 

박해로 흩어진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이 안티오키아에 가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안티오키아의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다. 사진은 안티오키아의 베드로 사도 기념 교회.

 

 

사도행전 저자는 안티오키아에 복음이 전해져 교회가 설립되고 이 안티오키아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박해를 피해 흩어진 신자들

 

이야기는 스테파노 순교 직후로 돌아갑니다. 스테파노의 일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자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집니다.(8,1) 유다와 사마리아는 사실상 같은 이스라엘 땅이지요. 비록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사마리아인들 역시 유다인들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들은 같은 조상에서 나왔고 같은 하느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에도 복음이 빨리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해를 피해 흩어진 신자들이 유다와 사마리아에만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갑니다.(11,19ㄱ) 우선 세 지명에 대해 잠시 살펴봅시다. 페니키아는 오늘날 시리아와 레바논, 이스라엘의 북부로 이어지는 해안 지역입니다. 복음서들에 언급되는 티로와 시돈 같은 이방인 도시들이 페니키아의 주요 도시들입니다. 마르코복음에 나오는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마르 7,26)도 바로 이 지역 출신이지요. 키프로스는 오늘날 키프로스 공화국인 키프로스 섬을 가리키고, 안티오키아는 당시 시리아의 수도로 대단히 큰 도시였습니다. 오늘날에는 시리아가 아니라 터키 남쪽 시리아 접경 지역에 위치해 있지요. 이 안티오키아는,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사도행전에서 언급되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13,4)와는 전혀 다른 도시입니다.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는 터키 중부 지역 옛 소아시아 지역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신자들이 이들 지역에서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했다”고 사도행전 저자는 기록합니다.(11,19ㄴ) 당시에는 당연했을 것입니다. 흩어진 신자들은 대부분 유다인이었고 이들은 아직도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관습, 곧 이방인들과 어울려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충실히 지켰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10,14)라고 말한 베드로 사도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빠져나가 흩어진 신자들 가운데는 유다 땅에서 살던 유다인들, 곧 히브리계 유다인들 뿐 아니라 그리스계 유다인들도 있었습니다.(사도 6,1) 그들 가운데는 키프로스 사람들과 키레네 사람들, 곧 키프로스나 키레네 태생의 유다인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안티오키아에서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다

 

이 그리스계 신자들이 안티오키아에 가서 유다인들에게만 아니라 “그리스계 사람들에게도 이야기하면서 주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고 사도행전 저자는 기술합니다.(11,20) 여기서 그리스계 사람들이란 단지 그리스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들 전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학자들은 풀이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코르넬리우스 집에서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주십니다”(10,34-35) 하고 말한 것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민의 주님”(10,36)이라고 말한 것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당시 안티오키아는 로마 제국에서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도시로 전체 인구가 5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물론 유다인들도 많이 살고 있었기에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피해 흩어진 신자들이 안티오키아까지 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안티오키아의 많은 사람이 복음을 듣고는 믿어 주님께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저자 루카는 이 일이 “주님의 손길이 그들을 보살피시어” 가능했다고 전합니다.(11,21) 말하자면 복음을 전하는 일은 신자들의 몫이었지만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주님께 돌아서게 된 것은 주님의 손길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 소식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보냅니다. 안티오키아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그곳에 내린 것을 기뻐하면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안티오키아의 신자들을 격려하지요. 그런데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됩니다.(11,22-24)

 

이 대목에서 두 가지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 교회가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에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안티오키아의 유다인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복음을 받아들여 주님께 돌아섰다는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서일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곳의 새 신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르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대대로 그 일을 잘 해냈습니다. 다른 하나는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된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문맥으로 보면 바르나바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는 착할 뿐 아니라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그런 그를 보고 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된 것입니다.

 

그후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칩니다.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됩니다.(11,25-26)

 

 

생각해봅시다

 

1.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11,24) 사도행전 저자의 이 설명은 깊이 새겨볼 만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된 것은 바르나바가 착한 사람일 뿐 아니라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 선포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성령과 믿음 그리고 착함임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언변이나 지식의 힘이 아니라 충만한 믿음과 성령 그리고 착한 마음과 행실이 복음을 선포하는 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과 믿음으로 충만한지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마음과 행실의 착함으로 드러나는지요?

 

2.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예루살렘에서 선포된 복음은 유다와 사마리아는 물론, 다마스쿠스까지 퍼져나가면서 곳곳에서 믿는 이들이 생겨났지만, 이들은 엄밀하게 말해서 아직 유다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안티오키아 교회의 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됐다는 것은 이제 그리스도교가 유다교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새로운 종교로 사람들 사이에 인식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9월 29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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