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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 성경 다시 읽기: 허무로다, 허무! 먹고 마시며 행복을 누려라! 코헬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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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1-14 조회수248 추천수1

[구약 성경 다시 읽기] 허무로다, 허무! 먹고 마시며 행복을 누려라! 코헬렛

 

 

“보라, 하느님께서 주신 한정된 생애 동안 애쓰는 온갖 노고로 먹고 마시며 행복을 누리는 것이 유쾌하고 좋은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그의 몫이다.”(코헬 5,17)

 

 

코헬렛, 세상만사 허무하니 먹고 마시며 즐겨라?

 

코헬렛은 시작과 끝에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모든 것이 허무로다!”(코헬 1,2; 12,8)라는 똑같은 넋두리(?)를 늘어놓습니다. 책 전체를 같은 말로 열고 닫는 경우가 성경에서 흔치 않다는 점에서, 이렇듯 수미상관(首尾相關)으로 표현된 ‘인생의 덧없음’은 분명 코헬렛의 핵심 주제입니다. 한술 더 떠서 코헬렛은 “자기의 노고로 먹고 마시며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좋은 것은 없다.”(2,24; 3,12)라고 가르칩니다. 자칫 잘못 이해하면 ‘모든 것이 허무하니 그때그때마다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게 최고다.’ 외치며 허무주의와 쾌락주의에 빠진 작금의 현실을 더 부추기는 듯 보이는 이 책,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코헬렛은 어떤 책인가

 

코헬렛은 책 제목이면서 저자의 이름이기도 합니다(1,1.12) 코헬렛은 ‘카할’(모으다, 소집하다)이란 히브리 단어와 연관된 말로 ‘집회를 소집하거나 이끄는 이(설교가)’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같은 의미에서 그리스어 칠십인역 성경은 이 책을 ‘에클레시아스테스’(집회[‘에클레시아’]를 이끄는 이)라고 불렀고 라틴어 불가타 성경은 이 그리스어를 그대로 음역하여 책 제목으로(Ecclesiastes) 사용했지요. 우리가 예전에 이 책을 설교가(전도자)의 설교집이란 의미에서 ‘전도서(傳導書)’라고 불렀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유다 전통에 따르면 솔로몬 임금(B.C. 975-935년 치세)은 청년기에 사랑의 시 ‘아가서’를, 지혜가 충만했던 중년기에 ‘잠언’을, 노년에 세상사의 허무함을 고백하는 ‘코헬렛’을 지었다 하지요. 코헬렛의 저자는 스스로를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1,1), 곧 솔로몬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학자들은 여러 근거를 통해 이 책의 저자가 기원전 3세기경 예루살렘의 지혜 교사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코헬렛은 ‘축제 두루마리 오경’(룻기, 아가, 코헬렛, 애가, 에스테르기) 중 하나로서 초막절 축제 때에 낭독되었는데, 유다인들은 가을 추수를 마치며 하느님께 풍요로운 수확에 감사드리고 ‘하느님을 떠나서는 인간의 모든 노고가 헛되다.’는 사실을 함께 되새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예비신자들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으로 이 코헬렛을 꼽았다하는데요, 그들이 교회의 일원이 되기 전에 먼저 ‘세상의 모든 가치는 허무하게 스러져갈 뿐임’을 깨닫길 바랐기 때문이었겠지요.

 

 

인생무상(人生無常)

 

코헬렛은 처음부터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1,2)라고 외칩니다. “허무”로 번역된 히브리어 ‘헤벨’은 ‘입김, 숨결’이란 뜻으로 붙잡을 수 없는 찰나의 것을 의미하지요. 이어서 코헬렛은 자연 현상과 인간의 역사가 끊임없이 순환할 뿐이라 말하며 인생의 허무함을 토로합니다.(1,3-11) 그가 언급한 땅과 태양과 바람과 강물은 당시 그리스 철학이 말하던 세상의 기본 요소들(흙, 불, 공기, 물)을 연상시키는데, 결국 그는 온 세상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다 과거에 이미 있던 것일 뿐이니 오직 헛될 뿐이라 탄식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여느 사람이 ‘세상 모든 것이 허무로다!’ 말한다면 ‘당신이 세상을 얼마나 안다고, 뭐 그리 세상 모든 걸 다 해보고 다 가져본 사람처럼 말하는 게요?’ 따질 수도 있겠지만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지혜로웠고 온갖 부귀영화와 쾌락의 극치를 탐닉해 본 솔로몬 임금(2,1-11)이 ‘세상만사 다 허무로다!’ 하고 토로하고 있다면 얘기가 다릅니다.

 

코헬렛은 매일 우리가 죽자고 달려드는(?) 일들과 가치들이 때로는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를 정말 냉정하고 솔직하게 직시해 보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러고 보니 죽어라 마음을 쓰고 걱정하고 애를 썼는데도, 돌아보면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네요. 코헬렛과 함께 좀 더 깊은 성찰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모순과 부조리의 현실, 흔들리는 전통적 신앙관

 

코헬렛의 깊은 고민은 전통적 신앙관으로는 도저히 설명 할 수 없는 모순된 현실에서 출발합니다. “지혜로운 이도 어리석은 자와 함께 죽어 가지 않는가!”(2,16), “나는 태양 아래에서 보았다, 공정의 자리에 불의가 있음을, 정의의 자리에 불의가 있음을”(3,16), “의롭지만 죽어 가는 의인이 있고 사악하지만 오래 사는 악인이 있다.”(7,15) 구구절절 다 맞는 말입니다.

 

행위에 따른 상벌 개념이 분명치 못하고 흐릿해질 때, 사람들은 정의를 문제 삼고 자신의 삶과 노고의 의미에 회의를 품습니다. 그건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코헬렛은 ‘상선벌악, 인과응보’의 전통적 신앙관(신명기 사상)이 무너진 듯 보이는 현실 속에서 다음과 같이 고뇌합니다. “그래서 태양 아래에서 애쓴 그 모든 노고에 대하여 내 마음은 절망하기에 이르렀다.”(2,20) 전통적인 인과응보 원칙에 대한 지식과 기대만으로는 매일 만나는 일들에 대한 온갖 의문과 불만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 걸까요?

 

 

인간 지혜의 한계

 

코헬렛은 자신이 지혜를 얻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밝히면서(1,13; 2,9) 결국 한계에 봉착했음을 고백합니다. 삶의 이치를 꿰뚫는 지혜란 너무도 심오하여 감히 그것을 찾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7,23-24; 8,16-17) 그러나 실상 그는 이 고백과 함께 이미 참된 지혜의 길로 접어든 셈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지혜문학이 입을 모아 증언하고 있듯이, 지혜의 시작은 하느님을 경외함에 있으며(3,14)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이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8,16-17) 나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내 삶의 의미는 오직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깊이 성찰한 사람만이 하느님께 진심으로 지혜를 청할 수 있는 법이지요.

 

코헬렛은 ‘하느님께서 당신 마음에 드는 인간에게 지혜와 지식과 즐거움을 내리신다.’고 선포합니다.(2,26) 코헬렛이 말하는 지혜는 다른 지혜문학들과는 달리 그 자체로 ‘율법(토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덧없는 인생에 관한 보편적 분별력’과 ‘하느님의 섭리와 인간의 한계를 겸허히 수용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여담이지만 유다 전승에 의하면 평소 다윗은 인생을 지혜롭게 살려면 세 가지를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나약함’, ‘자신의 나이’, ‘자신도 죽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인간은 이 세 가지 지혜를 통하여 자신의 한계와 죽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그때야 비로소 매일 일상 속에 주어지는 작은 기쁨들에 감사하며 마침내 완전한 행복을 얻게 된다는 것이었지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고대 근동에서 지혜로움의 기본 속성은 ‘적절한 때’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붉은 저녁노을이 있고난 다음날은 맑다는 것이나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것 등은 고대인들도 이미 알고 있던 지식이었지요. 그런데 코헬렛은 자연현상을 해석하여 다가오는 ‘때’를 예견하던 그런 이방 지혜와는 달리 이 세상에는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가 있음을 선포합니다.

 

코헬렛은 전형적인 대조적 대구법(예.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을 통해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와 때가 있음을 강조합니다(3,1-9) “그러니 일하는 사람에게 그 애쓴 보람이 무엇이겠는가?”(3,9)라는 그의 말은 ‘애써봐야 헛수고이니 아무 노력도 할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때를 결정하고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니’(3,14) 섣부른 판단과 집착과 조급함으로 스스로를 옥죄며 살지 말라는 조언인 게지요. 매일 걱정하고 불평하고 누군가를 탓하고 때로는 부질없는 헛수고로 시간과 감정을 허비하는 이에게 코헬렛은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하고’(3,11) ‘모든 것에는 적절한 때가 있고 그때를 결정하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시니’(3,1.14)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주어진 삶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최대한 즐겁게 사는 일’이라고 말이지요.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 불행한 날에는, 이 또한 행복한 날처럼 하느님께서 만드셨음을 생각하여라.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인간은 알지 못한다.”(7,14)

 

 

죽고 나면 다 부질 없는 것, 현재에 충실하라

 

코헬렛은 의인과 악인, 임금과 노예, 현자와 어리석은 자 모두가 결국엔 똑같이 죽음을 맞고 같은 땅 속에 나란히 눕게 될 뿐이라는 것, 누구나 다 차별 없이 어둡고 적막한 셰올(저승)로 내려갈 뿐이라는 사실 앞에서 절망합니다. 설사 원하는 것을 얻는다 해도, 결국 죽음은 그것을 영원히 앗아가고 허무로 돌아가게 한다는 생각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지요.(3,19-20; 6,6.12; 8,8; 9,2-6.10) 물론 죽음 뒤의 세상, 곧 내세에 관한 코헬렛의 이해는 우리와 다릅니다. 코헬렛은 구약 시대의 신학적 이해 안에서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헛될 뿐’이라 말하는 것이지요. 죽음 이후에 주어질 하느님의 보상과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위해 이 세상에서의 노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코헬렛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죽음이라는 거대한 한계 앞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인간의 올바른 태도’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참으로 명쾌합니다.

 

코헬렛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살아있을 때 제대로, 후회 없이 행복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너는 기뻐하며 빵을 먹고 기분 좋게 술을 마셔라. 하느님께서는 이미 네가 하는 일을 좋아하신다.”(9,7) 근심걱정에 싸여 지나치게 자신을 괴롭히는 이에게 코헬렛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삶을 즐기라고, 그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바이고 내게 바라시는 삶이라고 조언합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나의 모습을 찾아 그 안에 머물며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만이 삶의 참 진리라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혹자는 코헬렛을 염세주의나 허무주의를 대표하는 책처럼 여기기도 하나, 사실 코헬렛은 끊임없이 삶을 예찬하면서, 특히 삶을 즐기라고 일곱 번(완전한 수[!])이나 권고합니다.(2,24; 3,12-13; 3,22; 5,17; 8,15; 9,7-9; 11,9-12,1) “보라, 하느님께서 주신 한정된 생애 동안 하늘 아래에서 애쓰는 온갖 노고로 먹고 마시며 행복을 누리는 것이 유쾌하고 좋은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이것이 그의 몫이다.”(5,17)

 

 

영원하신 하느님을 경외함

 

‘헛됨’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헤벨’은 구약 성경에서 73회 사용되는데, 그 중에서 무려 38회(52%)가 코헬렛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코헬렛은 인간의 삶은 ‘헛되고 쓸모없는 수고’라고 그토록 반복하여 말하면서도 하느님과 관련해서는 절대로 ‘헛되다, 허무하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허무함에 대한 인식은 하느님께 오롯이 의탁하기 위한 출발점일 뿐이기 때문이지요. 코헬렛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만은 영원히 지속된다.”(3,14)고 힘주어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하루가, 우리의 삶이 허무로 끝나버리지 않는 유일한 길은 그저 정신없이 살아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일을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과 끊임없이 연결지으며 살아가는 데에 있습니다.

 

과거에 대한 집착도, 의미 없는 제자리걸음도,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도 결국엔 허무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2,17.21.26; 4,4-6; 6,9; 11,7-8) 인간의 운명은 오직 하느님의 손안에 있으니(9,1)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매순간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일입니다. 오늘도 내가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청하는 것, 그리고 매순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작은 기쁨을 찾아 감사하며 즐기는 것, 그것이 하느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삶이며 그분을 경외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코헬렛은 다음과 같은 당부로 끝납니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들어보자.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12,13)

 

 

하느님께서는 내가 늘 기뻐하고 행복해하길 바라신다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라는 책이 있습니다. 브로니 웨어(Bronnie Ware)라는 호주의 호스피스 간호사가 쓴 책인데, 그녀는 죽음을 앞둔 시한부 환자들이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공통적으로 후회하는 내용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것’인데,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맞춰 살았을 뿐 정작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둘째,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만 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인데, 주로 일에 쫓겨 살다가 정작 따뜻한 가정생활을 하지 못했던 남성들의 후회였습니다. 셋째,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살지 못한 것’으로 주위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려 감정을 너무 억누르고만 살아 그것이 쌓여 병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넷째, ‘친구들과 연락하고 지내지 못한 것’으로 죽음을 앞두고 오랜 친구들이 보고 싶지만 너무 늦어 버려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지요. 마지막으로 다섯 째는 ‘행복해지려고 더 노력하지 않았던 것’으로 평생 익숙한 방식과 습관에 머물러 살았을 뿐 정작 자신의 더 나은 행복을 위해서 애써보지 않았다는 후회였지요. 저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인생은 선택이며, 인생은 당신의 것입니다. 의식적이고 현명하며 솔직하게 당신의 인생을 선택하십시오. 행복을 선택하십시오.” 문득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선종하시기 전 남기셨던 말씀이 떠오르네요.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십시오!(Io sono felice, siatelo anche voi!)”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의 하루가 아무런 근심걱정도, 스트레스와 갖은 노고도 없을 수는 없겠지요. 다만 하느님께서 당신 섭리로 지금 내게 맡겨 주신 일에서 기쁨과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 일을 한다 해도 그 목마름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 마련해 주신 ‘맞춤형 일상’을 성심껏 살아가면서 그 안에 담아 주신 기쁨과 보람의 순간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기꺼이 즐길 수 있는 지혜를 청해야겠습니다. 내가 늘 기쁨 속에서 살아가길(!) 원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코헬렛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밖에는 좋은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이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3,22) “그러니 너는 기뻐하며 빵을 먹고 기분좋게 술을 마셔라. 하느님께서는 이미 네가 하는 일을 좋아하신다.”(9,7)

 

[월간빛, 2019년 11월호, 강수원 베드로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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