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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2: 머리말과 예수님 승천(사도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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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14 조회수393 추천수0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2) 머리말과 예수님 승천(사도 1,1-11)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보며 서 있느냐"

 

 

머리말과 주님 승천 이야기로 시작하는 사도행전은 '성령의 복음'이라고 부를 정도로 성령에 힘입은 사도들의 복음 선포 활동을 다룬다. 그림은 조토(1266~1337)작 '주님 승천' 프레스코화.

 

 

머리말(1,1-5)

 

사도행전은 루카복음과 마찬가지로 머리말로 시작합니다. 머리말이 보고서 형태를 띠는 것도 루카복음과 동일합니다. 보고서의 수신인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 또는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테오필로스’라는 사실도 루카복음과 똑같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가 루카복음의 저자와 같다고 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머리말을 시작하면서 “첫 번째 책에서 저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처음부터 다 다루었다”(1,1)라고 씁니다. 첫 번째 책이란 바로 루카복음을 말하지요. 이어서 처음부터 다 다루었다는 그 내용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뽑으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분부를 내리시고 나서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다 다루었습니다.”(1,2) 루카복음에서 다룬 내용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 루카는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후의 행적과 가르침을 전하는데,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당신이 살아 계심을 여러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다. 2) 40일 동안 사도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주셨다. 3)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고 지시하시면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3-5)

 

이 서론 부문에서 특별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성령에 대한 언급입니다. 루카는 이미 자신이 쓴 복음서의 첫 부분에서부터 성령을 이야기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예수님의 탄생이 모두 성령과 관련됩니다. 그런데 차이가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루카 1,15)이지만 잉태 자체가 성령에 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경우는 잉태 자체가 성령의 힘에 의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 곧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불리게 됩니다.(루카 1,35) 나아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시고는 성령으로 가득 차 돌아오셨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셨습니다.(루카 3,22; 4,1) 광야에서 유혹을 물리치신 후에 성령의 힘을 가득히 받고 돌아오시어 공생활을 시작하십니다.(루카 4,14) 이렇게 예수님은 성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루카는 사도행전에서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분부하실 때 “성령을 통해서 분부를 내리셨다”(사도 1,2)고 기록합니다. 복음서에는 성령을 통해서 사도들에게 분부를 내리셨다는 표현을 쓴 적이 없었는데 사도행전을 시작하는 머리말에 이 표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표현을 통해서 루카는 예수님 생전에 사도들을 파견하신 예수님의 분부가 사실은 성령을 통해서임을 드러내면서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펼치게 될 활동 또한 성령을 통한, 성령의 능력에 힘입은 활동임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이 사도행전을 ‘성령의 복음’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계속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40일이라는 숫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40은 충만함, 완성의 뜻을 지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헤맨 것이 그렇고, 엘리야가 밤낮으로 40일을 걸어 하느님의 산 호렙에 도달한 것도 그렇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것도 그렇습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사도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주셨다는 것은 사도들이 앞으로 선포해야 할 하느님 나라에 관해 충분히 말씀해 주셨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에게 아직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사도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선포하고 증언해야 할 하느님 나라에 관해서는 충분히 배워 알았지만 이를 실행할 동력이, 힘과 권한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파견됐을 때는 예수님에게서 힘과 권한을 받았지만, 예수님께서 떠나가시면 그 힘과 권한을 받을 곳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천(1,6-11)

 

루카는 예수님의 승천을 전하기에 앞서 사도들과 예수님이 주고받은 질문과 답변을 전합니다.(1,6-8) 사도들은 “주님, 지금이 주님께서 이스라엘에 다시 나라를 일으키실 때입니까?”하고 묻습니다.(1,6)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가 오면 이스라엘에 튼튼한 나라를 다시 일으키실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긴 사도들은 그 나라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이런 기대는 물거품이 됐지만, 다시 살아나신 주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계시니 지금이야 바로 그때가 아닌가 하고 여쭐 만한 셈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답변은 달랐습니다. 우선, “그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한으로 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사도들은 다소 실망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계속해서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1,7-8)라고 덧붙이십니다.

 

사도들은 이 말씀에 또 한 번 힘을 잃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사도들은 전에 예수님을 따라다녔을 때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고 예수님한테서 파견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다녔습니다.(루카 9,1-6; 10,1-12) 그런데 이제는 유다와 사마리아는 물론 땅끝까지 다니며 예수님의 증인이 돼야 할 운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끝으로 하늘에 오르십니다. 구름에 감싸여 사도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맙니다.(1,9) 사도들이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느냐?…저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라고 말합니다.(1,9-11)

 

 

생각해 봅시다

 

주님의 나라를 이스라엘에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실 것이라고 믿었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시어 구름 속으로 사라지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사도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주님을 따라 같이 하늘로 올라가고픈 심정이었을까요? 아니면 다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꿈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허망하게 바라보는 심정이었을까요?

 

그런 사도들에게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고 서 있느냐?…”는 말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혹시 우리 삶에서 이와 비슷한 일을 겪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요? 우리 또한 유심히 하늘을 쳐다보고만 있을 것인지요?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월 13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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