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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인물 이야기: 카인과 아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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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1 조회수535 추천수1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카인과 아벨 (1)

 

 

형제 사이의 갈등 관계는 고대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성경에도 갈등 관계에 있는 많은 형제가 등장합니다. 카인과 아벨, 에사우와 야곱, 요셉과 형제들, 아비멜렉과 형제들, 암논과 압살롬 등입니다. 이 가운데 카인과 아벨의 갈등은 이류 역사상 최초의 살인 사건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창세기는 아담과 하와가 카인과 아벨을 낳았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외경 필립보 복음서는 카인이 뱀(사탄)과 하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카인은 본래 악한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래 악한 인간은 없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카인을 보호하는 표를 찍으신 하느님(창세기 4,15)은 악을 옹호하고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외경 희년서는 카인과 아벨이 쌍둥이였다고 하는데, 이에 따르면 둘의 아버지가 다를 수 없습니다.

 

농부인 카인은 땅의 소출을, 양치기인 아벨은 양 떼 가운데 맏배들과 굳기름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카인의 제물이 아니라 아벨의 제물만을 즐겨 받으셨습니다. 창세기가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는 그 이유에 대해서 다양한 설명이 시도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채식보다 육식을 즐기신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었고, 하느님이 농경민족(가나안 백성)보다 유목민족(이스라엘 백성)을 더 사랑하셨다는 말씀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맏아들이 아니었던 솔로몬의 왕위 계승을 정당화하기 위해 꼭 맏이가 다른 형제들에 비해 훌륭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이야기라고 해석하기도 했고, 무엇이나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하실 수 있는 하느님의 절대적인 자유를 드러내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카인이 바친 제물이 원죄로 저주받은 땅을 경작하여 얻은 것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고, 하느님의 가난한 이(유다 상속법에 따르면, 맏아들은 다른 형제들에 비해 두 배의 유산을 상속받기에, 아벨은 카인보다 가난합니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카인이 평소에도 아벨을 괴롭혔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의 제물을 기꺼워하지 않으셨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2020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축성 생활의 날) 가톨릭 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인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카인과 아벨 (2)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즐겨 받으신 이유를 창세기 4장 본문 자체에서 유추하여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4,3-4는 아벨은 양의 맏배와 굳기름을 하느님께 드렸지만, 카인은 그냥 소출을 드렸다고 합니다. 맏배는 가장 왕성한 생식능력의 결과이고, 굳기름은 하느님께서 가장 즐겨 받으시는 제물로 여겼습니다(탈출 29,13 참조). 따라서 아벨의 제사가 정성이 더 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벨의 제사를 표현하는 히브리어 문장은 주어 다음에 도사가 나오는 특이한 구조(보통은 동사 다음에 주어가 옵니다)를 갖추고 있는데, 이 구조는 반복적인 행위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즉, 카인은 한 번만 제사를 지냈지만, 아벨은 반복적으로 제사를 바쳤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또한, 우리말 성경에 ‘세월이 흐른 뒤에’(창세 4,3)로 번역된 히브리어의 직역은 ‘그날들의 마지막에’인데, 이때를 추수의 마지막 날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벨은 하느님께서 번성케 해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주저함이 없이 첫 번째이자 유일한 양의 새끼를 바쳤지만, 카인은 제가 필요한 것을 먼저 챙긴 뒤 추수 마지막 날에야 남은 것을 하느님께 바쳤기에 하느님께서 아벨의 제물만을 받으셨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믿음으로써, 아벨은 카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라는 히브리서 11,4의 해석이 되기도 합니다.

 

카인은 자기가 바친 제물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분노했습니다. 창세기의 아람어 번역본인 타르굼 옹켈로스는 창세기 4,7의 말씀을 하느님께서 제 행위는 돌아보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하느님께 화를 내는 카인에게 뉘우칠 기회를 주시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인은 제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는 대신 동생 아벨을 질투하여 그를 계획 살인하는 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어원학적으로 카인의 이름은 질투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나와 관련이 있다니, 그에게 참으로 적절한 이름이라 하겠습니다. 질투가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우리는 삶의 직, 간접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외경 아담과 하와의 첫 번째 책은 이 최초의 살인 장면을 차마 여기 옮기지 못할 정도로 잔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2020년 2월 9일 연중 제5주일 가톨릭 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인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카인과 아벨 (3)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아벨이 어디 있는지 물으시는데, 이것을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로 성인은 하느님이 카인이 한 행위를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스스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우리 죄가 얼마나 크던지 관계없이 항상 우리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의 정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전지(全知)하심을 모르는 카인은 시치미를 뚝 떼고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9)라고 오히려 반문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죄인은 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4,11에서 하느님은 카인이 저주를 받았다고 하시는데, 이것은 뱀에게 하신 말씀(창세 3,14)과 같습니다. 이것을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속임수로 세상에 죽음을 들여온 뱀처럼, 카인도 속임수로 아벨을 꾀어내 죽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카인은 낯선 곳으로 추방되는데, 창세기 4,14은 카인이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4,17은 카인이 성읍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 둘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어로 된 70인역 성경은 카인이 육체의 고통 때문에 신음하며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고 번역했습니다.

 

아무튼, 낯선 곳은 예나 지금이나 이방인에게 위험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떠는 카인에게 하느님은 그를 해치는 자에게 일곱 배의 복수를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일곱 배의 복수는 완전한 복수를 의미합니다. 일곱 배는 ‘일곱 번째 세대’로도 번역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형제를 죽인 끔찍한 카인의 죄에도 그의 생명만은 보호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냅니다.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약속의 표를 찍어 주시는데, 이 표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타르굼 차명 요나탄은 하느님께서 카인의 이마에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당신 이름을 새겨주셨다고 합니다. 한 유다 전승에 따르면 이 표는 사람들이 카인을 해치려 다가오는 것을 막아주는 나병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 표가 무시무시한 외모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카인의 외모에 겁먹은 사람들이 감히 그를 해칠 수 없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다른 이들은 이 표가 개라고 합니다. 카인에게 주어진 개가 그를 해치려는 사람들을 쫓아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든, 하느님께서 카인에게 주신 표는 사람들이 그가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사람임을 알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2020년 2월 16일 연중 제6주일 가톨릭 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인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카인과 아벨 (4)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명만은 보호해주셨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형 제도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은 살인자가 제 죽음으로 죗값을 치르지 않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이들은 항상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외경 솔로몬의 지혜는 카인이 천수(天壽)를 누리지 못하고 노아 때 발생한 대홍수에 휩쓸려 죽었다고 합니다. 중세에는 시각장애인이 된 라멕이 사냥을 하다가 자기 5대조 할아버지인 카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짐승으로 오해해 활을 쏴 죽였다는 전승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알렉산드리아의 필료는 카인을 역사상의 한 인물이 아니라 악의 상징으로 해석하여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세상 모든 악인은 절대 죽지 않고 결코 죽은 적이 없는 자, 카인의 후손들이다.”

 

창세기 4,16은 카인이 주님 앞에서 물러 나와 에덴의 동쪽 놋 땅에 살았다고 합니다. 이 구절을 두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성인은 카인이 평화로운 에덴의 반대편에 있는 소란을 의미하는 이름인 놋으로 쫓겨간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성경에 동쪽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키드마는 앞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하느님께서는 살인자조차 낙원의 반대편으로 멀찍이 쫓아버리지 않으시고 에덴동산 앞에 살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죄인일지라도 다시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희망을 품고 살아보라는 배려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2020년 2월 23일 연중 제7주일 가톨릭 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인계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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