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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서의 해: 헬레니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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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1-26 조회수1,857 추천수0

[2020 사목교서 ‘성서의 해 II’ 특집] 헬레니즘 시대

 

 

이제 우리는 역사서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역사서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라는 고대 근동의 패권 국가들을 차례대로 만나게 됩니다. 아시리아가 바빌론에 의해서 멸망하고, 바빌론은 페르시아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이러한 강대국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느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역사의 부침(浮沈)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보다도 바빌론에 의해서 왕국의 멸망을 체험하였고, 바빌론에 끌려가 유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바빌론의 멸망(기원전 538년) 이후, 새로운 강자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론 유배 시기와는 달리 종교의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미 우리가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유배지에서 귀환하여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파스카 축제를 지내고 율법을 선포하면서 유다인들의 종교 예식은 페르시아의 통치 아래서 아무런 문제없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지속되지는 못하였습니다.

 

기원전 336년에 그리스 문명에 바탕을 둔 마케도니아의 임금이 된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기원전 331년에 페르시아를 무너뜨리고 이집트에 진출하였고, 더 나아가 인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지역을 점령합니다. 지역을 점령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적극적으로 점령 지역에 그리스 문화를 퍼뜨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기원전 323년에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마저도 살해가 됩니다. 이렇게 후계 구도가 안정적이지 않다 보니 알렉산드로스가 일궈놓은 왕국은 그가 죽고 난 이후에 그의 장수들에 의해서 분리됩니다. 마케도니아 지역은 페르디카스, 시리아-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셀레우코스, 이집트 지역은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서 각각 분할되기 시작합니다. 분할로 끝이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영토 분쟁을 하면서 각자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장하려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위치한 팔레스티나 지역은 처음에는 이집트를 다스리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영향력 아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요구하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종교 정책은 관대한 편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을 섬기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왕조 사이에 지속되는 분쟁 속에서 팔레스티나 지역이 기원전 200년경 셀레우코스 왕조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종교에 대해서는 관대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비해서, 셀레우코스 왕조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는 자신들의 배경이 된 헬레니즘 문화(그리스 문화)의 다신론을 유다인들에게 강요하였습니다. 헬레니즘 문화와 유다의 문화가 만났다는 것은 동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진 문화와 문화의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야훼 하느님만을 믿고 섬기는 유일신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헬레니즘 문화는 다신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헬레니즘 문화를 유다인들에게 강요하였다는 것은 야훼 하느님 신앙을 배교하라는 압력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한 강요가 절정에 이른 때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가 임금이 되면서부터 본격화됩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모든 유다인들에게 할례 금지, 돼지고기와 부정한 음식을 금하는 것, 율법에 대한 공경 금지를 명하였을 뿐 아니라, 유다인들이 그리스 신들에게 제사를 바칠 것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이들은 사형에 처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이교 신의 제단을 세울 것도 명합니다. 이러한 박해의 시기가 시작된 것은 약 기원전 167년입니다. 이러한 박해에 대응하는 유다인들의 방식은 다양하였습니다. 박해로 인해서 배교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저항하다가 순교하기도 하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저항하면서 무장 봉기를 일으키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유다 문화와 헬레니즘 문화가 만나면서 충돌이 일어나게 되고, 이는 야훼 하느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큰 도전이고 시련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련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무장 봉기의 이야기를 마카베오기가 우리에게 들려줄 것입니다.

 

[2020년 1월 26일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해외 원조 주일) 인천주보 3면, 박형순 바오로 신부(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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