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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49: 안티오키아 귀환과 아폴로의 선교(사도 18,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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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02-01 조회수445 추천수0

[이창훈 소장의 사도행전 이야기] (49) 안티오키아 귀환과 아폴로의 선교(사도 18,18-28)


다시 선교여행 떠나는 바오로, 새로운 복음 선포자 아폴로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1년 6개월 이상 지내면서 하느님 말씀을 전한 후 에페소를 거쳐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인사한 후 안티오키아로 내려감으로써 두 번째 선교 여행을 마무리한다. 사진은 바오로가 코린토를 떠나기 전에 머리를 깎은 켕크레애 항구 유적.

 

 

바오로는 예루살렘을 거쳐 안티오키아 교회로 돌아갔다가 세 번째 선교 여행을 시작하고, 에페소에서는 아폴로가 활발하게 선교 활동을 펼칩니다.

 

 

안티오키아 귀환과 재출발(18,18-23)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한동안 더 머물다가 시리아로 갑니다. 시리아는 선교 여행을 출발한 안티오키아 교회가 있는 지역이지요. 바오로는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를 데리고 배를 타고 시리아로 향합니다.(18,18) 켕크레애는 코린토에 있던 두 항구 중 하나로 에게해 쪽에 있는 항구입니다. 오늘날에는 많은 부분이 바닷물에 잠긴 유적만 일부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번잡한 항구에 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오로는 떠나기 전에 머리를 깎습니다.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머리를 깎았다”고 하는데, 학자들은 이 서원을 구약성경 민수기에 나오는 ‘나지르인 서원’으로 보기도 합니다. 민수기 6장 1-21절에 따르면, 자신을 주님께 바치기로 하고 평생 또는 한시적으로 서원하는 것을 나지르인 서원이라고 부릅니다. 이 나지르인 서원을 할 경우, 서원 기간 내내 머리털이 자라도록 내버려 둬야 합니다. 그렇다면 전에 서원한 일이 있었다는 표현은 이제 그 서원 기간이 끝나서 머리를 깎았다는 것이 됩니다. 바오로는 율법에 충실한 바리사이 출신이었기에 회심한 후에도 새로운 길, 곧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율법을 지키는 관습을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와 함께 켕크레애 항구를 떠난 바오로는 에페소에 도착하자 두 사람을 그곳에 따로 남겨두고 혼자 회당으로 가서 유다인들과 토론합니다.(18,19) 당시 에페소는 오늘날의 터키 땅 서쪽 에게해와 맞닿아 있는 지역인 아시아의 수도였습니다. 주민이 20만 명 이상 거주하는 큰 도시로서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였지요. 에페소는 큰 상업도시여서 천막 짜는 일을 생업으로 하는 이 부부에게는 생업을 유지하기에 좋은 곳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바오로는 이 독실한 부부에게 에페소에서 선교 거점을 마련하도록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많은 유다인이 살고 있었기에 바오로는 여느 도시에서 선교할 때와 마찬가지로 에페소에 도착하자 회당을 찾아 유다인들과 토론을 벌입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곧 에페소를 떠납니다. 유다인들은 바오로에게 좀 더 오래 머물러주기를 청했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여러분에게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 작별인사를 한 후 배를 타고 에페소를 떠나 카이사리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에 인사한 다음 안티오키아로 내려갑니다.(18,20-22)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은 어머니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선교 여행에 관해 보고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예루살렘에서 바오로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났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습니다. 안티오키아로 다시 돌아옴으로써 바오로의 2차 선교 여행은 끝이 납니다. 학자들은 이 두 번째 선교 여행이 기원후 49년 가을부터 52년 가을까지 약 3년에 걸쳐 이뤄졌다고 추정합니다.

 

바오로는 안티오키아에서 얼마 동안 지낸 뒤에 다시 길을 떠나,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쳐 가면서 모든 제자의 힘을 북돋아 줍니다.(18,23) 바오로가 세 번째 선교 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바오로가 거쳐 간 갈라티아와 프리기아는 오늘날 터키 땅 내륙 지방입니다. 1ㆍ2차 선교 여행 때에 갔던 곳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3차 선교 여행을 떠나 그곳 신자들에게 힘을 북돋아 준 것입니다. 바오로의 3차 선교 여행은 53년쯤에 시작됐다고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아폴로의 에페소 선교(18,24-28)

 

한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폴로라는 유다인이 에페소에 와서 선교 활동을 펼칩니다. 박학하고 성경에 정통한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주님의 길’ 혹은 ‘새로운 길’을 배워서 알고 있었기에 열정을 가지고 예수님에 관해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는 요한의 세례만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주님께서 사도들을 통해 분부하신 세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예수님에 관해 가르친 것입니다. 아폴로가 회당에서 설교하는 것을 들은 프리스킬라와 아퀼라는 그를 데리고 가서 하느님의 길,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새로운 길에 대해 더 정확하게 설명해 줍니다.(18,24-26)

 

그 후 아폴로가 그리스 땅인 아카이아로 건너가고 싶어 하자 에페소의 신자들이 그를 격려하면서 아카이아의 제자들에게 아폴로를 영접해 달라는 편지를 써 보냅니다. 아카이아는 코린토가 수도인 그리스 땅 서남쪽 지역입니다. 코린토로 건너간 아폴로는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논증하면서 유다인들을 반박해 이미 신자가 된 코린토의 형제들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18,27-28)

 

코린토는 바오로가 1년 6개월 이상 머무르면서 선교 활동을 펼쳤던 곳으로 이미 적지 않은 신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또한 새로운 길을 반대하는 유다인들도 많았기 때문에 특히 바오로가 코린토를 떠난 후에 코린토 신자들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폴로가 와서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시라며 확실하고 대담하게 유다인들을 논박하니 코린토 신자들에게는 큰 힘이 됐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폴로의 아카이아 선교 활동은 코린토 신자들에게는 분열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써 보낸 첫째 편지에서 “아폴로 편이다, 바오로 편이다, 베드로 편이다” 하고 갈라져 있는 코린토 교회의 분열을 질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코린 1,10-17 참조)

 

 

생각해봅시다

 

1. 아폴로는 성경에 정통한 유다인이었지만 사도들로부터 직접 배운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간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듣고 새로운 길을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열정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정확하게 가르칩니다.

 

아폴로의 이런 활동을 보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여 목숨을 바쳐가며 증언한 우리의 첫 신앙 선조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조금 부족함이 있어도 진리에 대한 깊은 확신과 사랑이 있으면 부족함을 채울 것입니다.

 

2. 프리스킬라와 아퀼라는 아폴로의 부족함을 보았습니다. 이 부부는 자기들보다 새로운 길에 대해 잘 모르는 유다인이 새로운 길을 전파하고 나서는 것을 보았지만 제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들이 아는 바를 더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아폴로가 코린토 선교를 희망하자 에페소 형제들은 격려하며 편지를 써 주기까지 합니다.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도 그 형제들 가운데 있었을 것입니다.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가 보여준 행위는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요한은 낯선 사람이 스승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막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반대하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루카 9,50)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2월 2일, 이창훈(한국평협 평신도사도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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