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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예수님 이야기84: 조롱과 심문(루카 22,6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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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10-31 조회수1,260 추천수0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 루카복음 중심으로] (84) 조롱과 심문(루카 22,63-71)


최고 의회 심문관들의 질문과 메시아의 답변

 

 

- 밤새도록 대사제의 집에서 고초를 겪으신 예수님은 최고 의회에 끌려가셔서 ‘당신이 메시아요?’라는 질문을 받으신다. 사진은 대사제의 집에서 조롱과 모욕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묘사한 모자이크화. 예루살렘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에 있다. [CNS 자료사진]

 

 

루카 복음사가는 대사제로 끌려가신 예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모욕을 받으셨으며(22,63-65), 날이 밝자 최고 의회로 끌려가 심문을 받으신 이야기를(22,66-71) 전합니다. 차례로 살펴봅니다.

 

 

조롱(22,63-65)

 

“예수님을 지키던 사람들은 그분을 매질하며 조롱하였다. 또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알아맞혀 보아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이 밖에도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을 많이 퍼부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 대목으로 예수님께서 대사제의 집에서 밤새 겪으신 고초를 전합니다. 매질과 조롱, 모독하는 말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면서 “그들은 사람의 아들을 조롱하고 모욕하고 침 뱉을 것이다”(18,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람의 아들이 올 날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17,25)고 말씀하셨지요. 이렇게 당신 친히 예고하신 말씀이 이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최고 의회의 신문(22,66-71)

 

대사제의 집에서 밤새도록 죄인으로 취급받으며 고초를 겪으신 예수님께서는 날이 밝자 최고 의회로 끌려갑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최고 의회로 끌고 간 이들이 “원로단, 곧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22,66)이라고 기록합니다. 최고 의회는 ‘산헤드린’이라는 그리스말을 우리말로 옮긴 것인데,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백성의 원로 등 모두 71명으로 이뤄진 유다교의 최고 재판기구 또는 그 재판이 열리는 장소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제 유다인들의 최고 법정에 서게 된 것입니다. 무슨 죄목으로? 

 

예수님을 최고 의회로 끌고 간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메시아라면 그렇다고 우리에게 말하시오.”(22,67ㄱ) 메시아는 그리스말로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 받은 이’로 번역되는 아람말을 우리말로 음역한 것으로,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담아 이 칭호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유다인들은 다윗 왕가의 후손으로 자기들을 이민족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아, 즉 정치적 왕권을 지닌 메시아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말은 ‘당신이 왕이면 그렇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시오’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두 부분으로 나눠 살펴봅니다. 첫 부분은 “내가 그렇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믿지 않을 것이고 내가 물어보아도 너희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22,67ㄴ-68)까지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고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물음에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당신을 두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고백했을 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당신이 그리스도 곧 메시아심을 인정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물음에 예수님의 이런 대답에는 오히려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부분은 “이제부터 ‘사람의 아들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을’ 것이다”(22,69)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지칭할 때 사용하신 표현으로, 루카복음서에만 서른 번가량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은 원래 구약성경 다니엘서에 나옵니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사람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다니 7,13-14)

 

반면에 ‘전능하신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는다’는 표현은 시편 110편 1절에 나옵니다. “주님께서 내 주군께 하신 말씀, ‘내 오른쪽에 앉아,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이 시편은 ‘군왕 시편’으로서 임금의 대관식 같은 때에 부르는 노래라고 합니다. 

 

따라서 다니엘서에 나오는 사람의 아들과 다윗 왕가의 임금 즉위식 때 사용됐을 시편 노래를 합친 이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다윗 왕실을 잇는 왕으로서 영원히 다스릴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밝히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모두 ‘그렇다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이오?’ 하고 물었다”(22,70ㄱ)고 기록합니다. ‘모두’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최고 의회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잘 알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내가 그러하다고 너희가 말하고 있다”(22,70ㄴ) 하시며 직접적인 답변을거부하십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언이 더 필요합니까. 제 입으로 말하는 것을 우리가 직접 들었으니 말입니다.”(22,71)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직접 예수님에게서 ‘유다인의 왕’이라거나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직접 들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그리스도, 메시아이심을 바로 긍정하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와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메시아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님을 없애려는 이들은 메시아를 현세적 왕권을 지닌 메시아로만 이해했습니다. 이들뿐 아니라 군중도 예수님을 현세적 왕으로 모시려고 했지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의 배를 불리신 기적 후에 군중은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으로 모시려고 했지요.(요한 6,15) 루카복음에서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대목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바로 다음에 나옵니다.(루카 9,10-21 참조)

 

물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현실적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군중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이나 병자들을 고쳐주신 기적 등이 그 증거들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집착하게 될 때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보시오” 하는 악마의 유혹에 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당신이 메시아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요?’ 하는 물음에 답변하지 않으신 것이 아닐까요?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10월 28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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