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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14: 어린양과 그의 백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6,231 추천수0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어린양과 그의 백성

 

 

“어린양이 시온 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14,1). 여인과 용에 대한 환시 이후에 전해지는 환시는 어린양과 함께 있는 십사만 사천 명에 대한 것입니다. 7장에서도 표현된 바 있는 십사만 사천 명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구원받게 될 신앙인들, 곧 박해 중에도 신앙을 간직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있는 모든 신앙인을 의미합니다. 이 환시는 시온 산 위에 서 있는 어린양에 대한 소개로 시작합니다.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 명

 

어린양이 서 있는 시온 산은 이미 구약성경에서부터 구원의 장소로 표현되는 곳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이 시온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계시는 구약성경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온 산과 관련해서 요한 묵시록의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구절은 요엘 3,5입니다. “그때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는 살아남은 이들이 있고 생존자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부르시는 이들도 있으리라.” 사실 시온 산과 예루살렘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에서 시온 산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예루살렘보다 시온 산을 구원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나타내는 가장 큰 이유는, 구약성경에서부터 ‘산’이 하느님의 뜻이 계시되는,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장소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어린양과 함께, 이마에 어린양과 하느님의 이름이 적힌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다는 것은 이미 이들이 구원에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7장과 14장에 나타난 이 구원받은 이들에 대한 환시는 중요합니다. 특히 요한 묵시록의 역사적 배경인 박해라는 상황에서 이들이 이미 구원받은 모습으로 표현된다는 것은 역설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지금 환난과 박해 중에 살아가지만 이미 구원받아 벌써부터 구원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동정을 지킨 사람들로서 여자와 더불어 몸을 더럽힌 일이 없습니다”(14,4). 여기에서 표현된 ‘동정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는 성적(性的) 절제라는 상징을 통해 이들이 지키고 있는 믿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또한 ‘몸을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에서 ‘불륜’과 반대되는 표현입니다. 성경은 하느님과 그의 백성, 그리고 예수님과 교회 공동체 간의 관계를 혼인으로 묘사합니다. 구약은 하느님의 백성을 ‘시온의 딸’로, 신약은 믿는 이들의 공동체를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의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이러한 혼인 관계를 무너뜨리는 모든 행위가 ‘불륜’에 해당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과의 계약 관계를 깨는, 곧 우상숭배 같은 행위가 상징적 의미에서 불륜에 해당합니다. 결국 14장의 이 표현은 ‘믿음을 지켜가며 우상숭배를 하지 않은 이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빌론에 대한 심판 예고

 

이 환시 이후에 심판 예고가 등장합니다. 그 대상은 ‘바빌론’입니다. 기원전 587년경 바빌론이 성전을 파괴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유배 보내면서 그 백성은 자신의 땅을 떠나 흩어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바빌론은 우상숭배와 악의 세력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특히 요한 묵시록에서 바빌론은 로마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입니다. 로마 역시 바빌론과 마찬가지로 기원후 70년에 성전을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성전 파괴라는 공통점에서 요한 묵시록은 로마를 바빌론으로 표현하는데, 이러한 경향은 80년 이후에나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심판 예고는 세 천사에 의해 표현됩니다. 첫째 천사는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합니다. 둘째 천사는 구약성경에서 예언되었던(이사 21,9; 예레 50,2; 51,8 참조) 바빌론에 대한 심판이 이미 이루어졌음을 선포합니다. 셋째 천사는 우상숭배, 곧 황제 숭배 의식을 따르는 이들이 심판받을 것임을 예고합니다. 10절에 나오는 ‘하느님의 분노의 술’은 이미 8절에서 바빌론과 함께 언급된 ‘불륜의 술’과 대조를 이룹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느님의 분노의 술을 마신다’(시편 75,9; 예레 51,7 참조)는 것은 심판을 나타내는 이미지입니다. 심판 예고 끝에는 다시 한 번 죽음에 이르기까지 신앙을 지켜낸 이들에 대한 보상이 소개됩니다. 그들은 이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14,13ㄷ)입니다. 믿음을 지킨 이들의 행위는 결코 잊히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정의, 곧 하느님은 사람이 한 일에 대해 정의롭고 공정하게 판단하신다는 전통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심판 예고는 수확에 대한 환시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종말에 있을 심판을 주관하는 존재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1,13)입니다. 포도 수확은 요엘 4,13을 바탕으로 하고, 복음서에서도 이는 종말에 있을 심판을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마르 13,27 참조). 무섭게 표현된 하느님의 분노와 진노는 이사 63,3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 환시는 앞으로 이루어지게 될 그리스도의 마지막 심판을 예고합니다. 분노로 확을 밟고 확에서 피가 흘러나와 그 높이가 말고삐에까지 닿는다(14,20 참조)는 것은 상당히 잔인한 표현이지만, 이는 하느님의 분노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고 또 믿음 때문에 죽어야만 했던 신앙인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하느님의 분노와 심판에 대한 표현 역시 더욱 강해집니다. 박해하는 이들에게는 경고가 되고, 신앙인들에게는 그만큼 어려운 현실을 이겨 내게 하는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일곱 대접을 통한 재앙을 표현하기 전에 심판을 예고하는 것은 더 이상 유예의 가능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회개를 위해 지체할 시간이 더는 없습니다. 앞으로 닥칠 재앙이 지나고 나면 마지막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재앙과 반복되는 심판 예고는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을 열어 둡니다. 하지만 이제 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재앙 이후에는 시간이 더 이상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2월호(통권 479호), 허규 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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