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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하느님 뭐라꼬예?: 꿈의 남자 요셉과 하느님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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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0-12-08 조회수621 추천수0

[하느님 뭐라꼬예?] 꿈의 남자 요셉과 하느님의 섭리

 

 

아버지의 사랑과 형들의 질투

 

‘야곱과 에사우의 이야기’에 이어 창세기는 “야곱은 자기 아버지가 나그네살이 하던 땅 곧 가나안 땅에 자리를 잡았다. 야곱의 역사는 이러하다.”는 말로 37장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8장 ‘유다와 타마르’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후반 37장부터 마지막 50장까지 대부분 ‘요셉에 관한 이야기’에 할애되고 있을 만큼, 요셉은 야곱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이스라엘은 요셉을 늘그막에 얻었으므로,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 입혔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37,3-4) 창세기 35장 후반부는 야곱에게 열두 아들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는데, 막내 벤야민을 제외한다면 10명의 형들이 다 하나같이 요셉을 미워했다고 합니다. 야곱이 아버지로서 요셉을 편애했다는 것인데요, 그 일이 그토록 큰 잘못이었을까요?

 

요셉에 대한 형들의 미움은 연로한 아버지로부터 사랑받는 동생에 대한 질투에서 생겨났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됩니다. 비록 요셉이 형들과 부모까지 자신에게 절을 하더라는 식의 꿈 이야기를 눈치 없이 했다지만, 아직 철이 들지 않았을 어린 동생에게 정다운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을 정도였다니, 배다른 형들이 품었을 미움이 얼만 컸을까 싶습니다.

 

창세기는 이런 상황 속에서 요셉에게 하느님의 손길이 일찍부터 닿고 있었음을 야곱의 말을 통해 암시하고 있습니다. “‘네가 꾸었다는 그 꿈이 대체 무엇이냐? 그래,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너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려 큰절을 해야 한단 말이냐?’ 형들은 그를 시기하였지만, 그의 아버지는 이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37,10-11) 아마도 야곱은 요셉의 꿈이 하느님에게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37,20) 요셉의 형들은 이렇게 말했지만 큰 형 르우벤은 그들 손에서 요셉을 살려낼 생각으로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고 설득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은 이제 유다의 개입으로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 이집트로 끌려가게 됩니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요셉에 대한 질투와 미움과 분노로 이성을 상실해 버린 다른 형제들의 악행 속에서도 르우벤은 요셉을 살리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르우벤이 발휘한 지혜(?)는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신 배려에서 나온 것 아닐까요?

 

‘어린 동생 요셉에 대해 형들이 갖게 된 미움’의 이야기는 ‘한 사람에 대한 편애는 또 다른 사람에 대한 시기심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생겨나는 편애의 마음과 시기심들을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요셉은 죽음의 문턱에서 르우벤의 배려로 삶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곤경에 빠진 사람이 있다면 그에 대해 연민의 정을 가집시다. 누군가를 살리려고 하면 길이 보일 것입니다!

 

 

인생 밑바닥의 요셉에게 내려진 축복

 

미디안인들은 요셉을 이집트로 끌고 갔고, 그곳에서 그들은 요셉을 파라오의 내신으로서 경호대장을 하던 포티마르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렇게 노예살이라는 비참한 상황에 빠진 요셉이었지만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이 하는 일마다 다 잘 되게 하셨다고 하면서 요셉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는 모든 일을 잘 이루는 사람이 되었다.”(39,2) “주님께서는 요셉 때문에 그 이집트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39,5)

 

하지만 이런 요셉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칩니다. 포티마르의 아내가 몸매와 모습이 아름다웠던 요셉에게 유혹의 손길을 뻗쳤고, 그것을 거절한 요셉에게 오히려 자신을 희롱하려 했다는 누명을 씌운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감옥에 갇힌 요셉이었지만 그곳에서도 요셉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은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계시면서 그에게 자애를 베푸시어, 전옥(典獄: 교도소의 우두머리)의 눈에 들게 해 주셨다. …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으며, 그가 하는 일마다 주님께서 잘 이루어 주셨기 때문이다.”(39,21.23)

 

요셉에 대한 창세기의 칭송은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도 계속됩니다. 같은 감옥에 갇혀있던 수인으로서 파라오에게 술잔을 올리던 헌작 시종이 꾸었던 꿈을 풀이해주었고, 꿈대로 복직된 시종이 이년 뒤 파라오가 꾼 꿈을 풀이할 사람을 찾지 못해 진노했을 때에야 요셉을 기억해내고 말씀드려 요셉에게 살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왕에게 앞으로 이집트 땅에 닥칠 일곱 해의 대풍과 일곱 해의 기근을 예고하면서 앞으로의 대비책까지 내놓았고, 이에 파라오는 자기 신하들에게 “이 사람처럼 하느님의 영을 지닌 사람을 우리가 또 찾을 수 있겠소?”(41,38)하며 슬기롭고 지혜로운 요셉에게 나라를 다스릴 모든 권한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나이 서른에 이집트의 최고 재상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숱한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의 섭리에 절대적으로 신뢰하였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삶은 오로지 하느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내가 인생의 밑바닥에 내쳐질지라도 구원하는 하느님의 손길은 계속됨을 잊지 맙시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어떠한 경우라도, 삶의 끈을 놓아버리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그 희망의 끈을 먼저 놓으실 리는 없는 것입니다!

 

 

기근으로 죽을 처지의 가족을 구한 요셉

 

요셉의 말대로 이집트 온 땅에 기근이 퍼지자 요셉은 그간 준비한 곡식창고를 모두 열고 이집트인들에게 곡식을 팔았습니다. 이집트사람 뿐 아니라 온 세상이 요셉에게 곡식을 사려고 이집트로 몰려들었는데, 그것은 온 세상에 기근이 심하였기 때문이었다는 설명을 창세기는 덧붙이고 있습니다. 가나안에서 살던 야곱의 가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곱은 “내가 들으니 이집트에는 곡식이 있다는 구나. 그러니 그곳으로 내려가 곡식을 사 오너라. 그래야 우리가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다.”(42,2) 하면서, 아들들을 이집트로 곡식을 사러 가는 일행에 함께 보냅니다. 그러면서도 야곱은 혹시나 무슨 변이나 당할까 요셉의 아우 벤야민은 함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집트를 통치하며 그 나라의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고 있던 요셉에게 형들이 와서 (요셉이 일찍이 꿈이야기를 한 대로)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하였습니다. 그때 요셉은 형들을 염탐꾼들로 몰아세우면서, 처음에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만 집으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버지와 함께 있다던) 막내아우를 데리고 와야만 그들을 믿을 것이라며 감옥에 가두었으나, 사흘 뒤에는 생각을 바꾸어 한 사람만 감옥에 남고 나머지는 굶고 있는 집 식구들을 위해 곡식을 가져가되 막내아우를 자신에게 데려오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말대로 하겠다고 하고서는 서로 말하였습니다. “그래, 우리가 아우의 일로 죗값을 받는 것이 틀림없어. 그 애가 우리에게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 우리는 그 고통을 보면서도 들어 주지 않았지. 그래서 이제 이런 괴로움이 우리에게 닥친거야. … 이제 우리가 그 아이의 피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42,21.22) 요셉이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며 형들이 했다던 말에서 그들 뉘우침의 진실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그들 앞에서 물러 나와 울었다.”(42,24) 창세기는 그들의 말을 들은 요셉도 그들의 뉘우치는 마음을 알고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결국 (가져간 그대로의 돈과 함께 많은 곡식을 나귀에 싣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간) 형들은 아버지를 설득하여 벤야민을 데려왔으나, 요셉은 그들을 환대한 후 (벤야민의 곡식 자루에 숨겨두었던 자신의 은잔을 빌미로) 벤야민을 종으로 남겨 놓고 아버지에게 돌아가라 명하였습니다. 이에 유다는 그 아이가 없는 것을 아버지가 보게 되면 아버지가 상심하여 죽고 말 것이라며, “이제 이 종이 저 아이 대신 나리의 종으로 여기에 머무르고, 저 아이는 형들과 함께 올라가게 해 주십시오.”(44,33) 하고 애원하였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한 채 큰 울음을 터뜨리고서는 마침내 자신이 바로 형들이 팔아넘긴 요셉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요셉은 자신이 형들에 의해 이집트로 팔려온 것은 다 하느님의 섭리였다고 고백합니다.

 

파라오의 호의로 야곱의 가족은 이집트에서 가장 좋은 곳인 라메세스 지방에 머무르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장차 모세가 이끄는 이집트 탈출의 배경이 됩니다. 이집트에서 살아가게 된 이스라엘의 비참한 종살이의 출발점이 바로 요셉을 통한 이스라엘 가족의 구출이었고, 이는 결국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생겨난 일이었던 것입니다.

 

 

악에서마저도 선을 이끌어내시는 하느님

 

요셉은 형제들에게서도 버림받고, 노예로 팔렸으며, 성실히 최선을 다해 살고, 남에게 많은 이득을 주고, 불의한 유혹을 물리치고, 정의를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고서도 또 불의한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던 요셉은 그 감옥 속에서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이집트를 곤경에서 구하였습니다. 이집트의 종이었던 그는 오히려 이집트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었고, 가족 전체를 구하여 이스라엘의 12지파에게 삶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요셉이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하느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창세기 저자의 의도입니다. 이는 먼저 요셉 자신이 파라오에게 한 말을 통해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 앞으로 당신께서 하고자 하시는 바를 파라오께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41,25) 다음 요셉이 형들에게 한 말에서 하느님의 섭리라는 인식이 더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시어, 여러분을 위하여 자손들을 이 땅에 일으켜 세우고, 구원받은 이들의 큰 무리가 되도록 여러분의 목숨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여러분이 아니라 하느님이십니다.”(45,5.8)

 

요셉의 이야기들은 ‘하느님은 인간이 처한 세상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선을 이끌어내실 수 있는 분’이심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창세기가 전하는 요셉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믿는 하느님께서는 ‘드러나시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역사를 이끄시는 분’이시라는 것과, 결국 ‘악(惡)에서마저도 선을 이끌어내실 수 있는 분’이심을 역설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 것인가?’하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창세기의 신학에서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요셉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섭리를 보며, 나의 삶을 통해서는 하느님의 섭리가 어떻게 구현(具現)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비록 나 자신이 악의 길을 걸을지라도 그 길을 비추고 적시는 햇볕과 빗물과 같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하십시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12월호, 조현권 스테파노 신부(대구대교구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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