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쓰기 느낌 나누기

제목 [묵상]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작성자명현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8-09-27 조회수3,302 추천수4 반대(0)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아침 담임 선생님께서 저에게 조회에 참석하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한번도 조회시간에 나간 적이 없는 저는 싫다고 울고불고 법석을 떨었지만 

결국에는 담임선생님 팔에 안겨서 조회대에 섰습니다.

그땐 제가 혼자서 걸어 다니지 못할 때였습니다.

 

교내 백일장대회에서 상을 타게 된 저를 담임 선생님께서는 자랑스럽게

조회대에 안고 올라가셨지만 그날의 기억은 저에게는 최악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뒤로 사람들 앞에 서는 일과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원고지는 그날의 악몽을 떠오르게 하여서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이젠 그날의 슬픈 기억들을 씻어내고자 마음먹었기에 솔직하게 저의 이야기들을 털어놓습니다.

 

(한 친구가 잡지책을 두 장 뜯어와서 하나를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커닝 페이퍼였지요.

처음으로 본 남의 글,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놓은 것이었습니다.

전 그것을 베끼지 않고 저의 이야기를 썼는데 그것이 당선된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스물 두 번째 세례 기념일을 자축하며 하루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순례자 아브라함에 대한 묵상 중에 “순명”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자리에 우뚝 설 수 있었던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고뇌를 깨닫고 보니, 

갈등을 회피하며 달아나기만 했던 자신이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본당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데 신부님이 바뀌시니

분위기도 바뀌고 달라지는 일들이 있어서 마음이 좀 불편했었습니다.

 

어떤 처지에서든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야훼 이레”(창세 22,14)이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심을 믿는 것이 바로 참된 신앙인 줄을 알면서도 

하느님의 자리에 곧잘 다른 것들을 두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겠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분은 너무 멀리 계신 듯 했으나,

하느님 밖에는 의지할 것이 없으니

이제 그분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를 개신교 재단의 사립학교에 다녔습니다.

개신교 신자들에 대한 실망감이 막연하게 성당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세례를 받고나서는 절대로 본당에서 봉사하지 않을 것과 

너무 열심한 신자는 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의지력이 강하다는 말이 내 이미지였고, 

사회에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이 너무나 많았으며, 

게다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불협화음들을 알았고, 

너무 열심한 신자는 오히려 이상한 사람취급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세례를 받은 후,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알게 되어 참 좋아했습니다.

 

 

주님, 저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저도 주님의  평화의 도구로 써 주시길 기도드렸으나, 

막상 그런 기회가 왔을 때 그만 달아나 버렸습니다. 

정의를 위해 일하고 싶었지만 약자들을 도울 수 없다는 생각에 

정년까지 일하고 싶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난 후 직장생활을 하느라 미사를 드리는 것 외에는 다른 활동을 하지 못했는데 

우연히 시작한 성경 공부가 성서백주간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들의 봉사자로 재미있고 행복하게 지낸 첫 번째 3년의 시간들, 

이스라엘과 그리스 터키에 다녀온 두 번의 성지 순례, 

특별히 교황님 알현과 루르드 성지순례, 

사도직학교에 다니면서 얻은 양식과, 

예비신자 교리교사와 제대 봉사를 통하여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두 번째 3년.

 우리에겐 갈등도 있었고 불편함도 있었으며 건강하지 않았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마음을 나누며 울고 웃었던 시간들이 우리의 신앙과 우정을 더욱 돈독히 살찌웠습니다. 

 

아직도 약점이 많고 부족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하느님께서 사랑하고 계시며 

우리의 공부도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서백주간은 단순히 성경 공부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었기에, 

더욱 하느님 말씀에 맛들이게 되었습니다. 

 

미사의 독서와 복음, 강론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는 것을 보고 

안수식에서의 “에파타”(마르 7,34)를 기억하였습니다. 

 

살아계신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요한 3,14 참조). 

사랑이신 하느님을 이제는 더 잘 알고 싶어서, 

내 안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드리려고 합니다. 

 

특별히 올해는 바오로 사도 탄생 2000년을 기념하는 은총의 해이며, 

전례력으로는 순교자 성월을 지내고 있는 오늘 이 자리에 서고 보니, 

졸업은 마침이 아니며 지나온 6년이라는 과정이 더욱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삶의 매순간마다 예비해 두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립니다. 

어떤 일이든 지나고 나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것이 바로 나의 작은 소망이 이루어졌음을,

간절한 나의 바람이 곧 기도였음을, 그리고 그것을 하느님께서 저버리지 않으셨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말씀의 씨앗이 잘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도록 가꾸며, 

내 안의 하느님을 찾아서 마음의 순례 길을 떠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기 3,12)” 하신 아버지 하느님, 

그분께서 이미 내 안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셨음을 믿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갈라 2,20)”이기 때문입니다. 

아멘.

 

2008. 9. 25 (목) 오후 8시

분평동본당에서 49명의 형제자매들이 성서백주간 제4기 졸업 감사 미사를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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