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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필사본 이야기: 중세 미술의 숨겨진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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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01-07 조회수630 추천수0

[필사본 이야기] 중세 미술의 숨겨진 꽃

 

 

대체로 그리스도교 미술은 박해 시대 이후 예배 공간이 공식적으로 축조되고, 그리스도교의 전례가 확고한 틀을 갖게 되면서 꽃을 피우기 시작하였다. 독자적인 교회 건축이 탄생되고 그 건축물을 중심으로 벽화와 조각이 발달하였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하는 성서 필사본이 눈부신 발달을 이루게 된다. 그리하여 건축, 조각, 벽화, 필사본은 중세 그리스도교 미술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성서 필사본 원본은 귀중본으로 분류되어 특별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한 일반 신자들의 접근이 허용되지 않고 있음을 감안하여, 본 그리스도교미술 연구회는 중세 미술의 진정한 꽃인 성서 필사본에 관하여 「성모기사」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한다.

 

 

필사본(Illuminated Manuscripts)이란?

 

라틴어의 ‘illuminare(꾸미다)’에서 유래한 필사본은 사람의 손으로 직접 필사하고, 그림을 그리고 여러 장식으로 꾸며 만든 책이다. 대부분의 경우 필사본은 필사가와 화가의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이라 불리던 작업장에서 필사가는 본문을 정서하는 작업을 담당하였고, 화가는 첫머리 글자를 장식하는 작업, 테두리를 꾸미는 작업, 성서의 내용을 묘사하는 채색 삽화를 그리는 작업을 담당하였다. 필사본은 주로 수도원에서 수도자들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수도원에 따라 필사본의 필체나 삽화에 들어간 그림 유형이 구분된다. 후대의 연구가들에게 각 지역의 수도원에서 제작된 필사본의 유형적 차이는 옛 필사본의 제작처를 추정하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되곤 한다. 고대에 제작된 필사본은 이집트 무덤에서 나온 ‘사자死者의 서書(Book of Dead)’와 마찬가지로 두루마리 형식이었으나, 3~4세기 이후로는 오늘날의 책과 유사한 형식(코덱스 codex)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중세는 역사적으로 박해 시대 이후부터 르네상스 이전 시기를 의미하며, 문화사적으로는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으로 구분된다. 중세 필사본은 연대기적으로 비잔틴 양식, 섬 양식(아일랜드와 브리튼), 카롤링 양식, 오토 양식,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으로 세분화된다. 지역적으로 보면 중동을 포함하여 비잔틴(현재의 이스탄불) 지역에서 제작된 것과 서유럽 지역에서 제작된 것, 그리고 아일랜드와 브리튼(영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대별된다.

 

시기적으로나 지역적으로 나뉜 필사본 중에서 각 양식의 대표적인 필사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우선 5~6세기에 제작된 로사노 복음서를 들 수 있다.

 

● 비잔틴 양식 필사본

 

로사노 복음서(The Rossano Gospels or The Codex Purpureus Rossanensis) : 5~6세기에 제작된 복음서로서 현존하는 신약 필사본 중에 가장 오래된 필사본이다. 자주색 양피지에 은색 잉크로 제작되었으며, 30cm×25cm 크기이고, 21.5cm 정사각형 블록에 20개의 줄이 각각 2줄씩 쓰인 것이 특징이다. 현재 이탈리아 로사노 성당에 보관 중이다.

 

● 카롤링 양식 필사본

 

드로고 전례서(Drogo Sacramentary) : 카롤링거 왕조 시기의 대표적 필사본인 드로고 전례서는 850년경 메스(Metz)의 주교이며 샤를마뉴의 아들인 드로고에 의해 제작되었다. 삽화가 들어간 알파벳 이니셜을 식물 문양 장식과 금박으로 치장하고, 색상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필사본이다. 26.4cm×21.4cm 크기에 130개의 폴리오(Folio)로 구성된 이 전례서는 메스 생 테티엔 성당에서 성찬 전례에 사용되었다.

 

● 오토 양식 필사본

 

오토 3세 복음서(Gospels of Otto III) : 오토 양식의 대표적인 필사본으로 10세기 후반에서 11세기 초에 라이헤나우 수도원에서 제작되었다. 비잔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필사본은 크기가 33.4cm×24.2cm, 276 폴리오이다. 필사본은 12개의 캐넌 테이블과 4대 복음사가를 비롯해 34개의 세밀화로 구성되어 있다.

 

● 섬 양식 필사본

 

켈스의 서(Book of Kells) : 800년경 아일랜드의 골룸바 수도원에서 제작되었다. 인슐라 양식의 대표적인 필사본으로서 신약의 4대 복음서와 예수의 전기, 그리고 몇몇 보충적인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 화려한 색상의 장식 문양과 함께 동식물이 서로 얽혀 피조물의 길거나 휘어진 몸을 환상적으로 표현하고, 첫 글자 이니셜이 다채로운 아라베스크가 켈트족의 문양을 대표한다. 책의 크기는 33cm×25cm이고 340 폴리오로 되어 있으며 양질의 송아지 가죽에 빨강, 검정, 노랑, 보라 등 다양한 색상의 잉크로 필사되었다. 동시대 필사본 중 가장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켈스의 서」는 켈스 수도원에서 보관하다가 지금은 아일랜드의 더블린에 있는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에서 소장 및 전시 중이다.

 

● 스페인 필사본

 

베아투스 필사본(Morgan Beatus) : 스페인 리에바나의 수도원장 베아투스에 의해 8세기에 제작된 요한 묵시록의 주해서이다. 이후 베아투스의 주해서 복사본이 제작되었는데, 현존하는 것은 26종이며 ‘Commentary on the Book of the Apocalypse’라 불린다.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8세기 마이우스(Maius)에 의해 제작된 「Morgan Beatus」가 현재 전해지는 베아투스 필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베아투스 필사본은 당시 스페인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랍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모차라브 양식이라는 독특한 스타일로 제작되어, 화려한 색상이나 표현 방법에서 동시대 다른 필사본과 구별된다. 크기는 38.7cm×28.5cm이다.

 

 

필사본 제작 과정

 

필사본은 인쇄술이 발달하고 종이의 사용이 일반화되기 전까지 오랫동안 양피지나 우피지에 제작되었다. 필사를 위한 양피지나 우피지의 준비 과정은 동물 가죽의 세척작업으로 시작하여, 약품 처리를 거친 장시간의 건조 작업 이후 무두질 작업으로 이루어졌으며, 전반적인 과정을 살펴보면 오랜 노동과 시간을 요하는 매우 복잡한 선제 작업이었다.

 

양피지가 준비되면 그 위에 먼저 소묘를 하고, 밝은 부분부터 어두운 부분 순으로 채색하며, 금을 바르는 곳은 금이 잘 입혀지도록 미리 바탕 처리를 하였다. 주로 식물이나 광물 등에서 추출한 색료와 달걀노른자를 혼합하여 사용하는 템페라 기법으로 채색되었다. 채색과 건조를 반복하는 단계가 마무리되면, 마지막으로 옷의 주름이나 얼굴 표정 등의 섬세한 부분들을 조화롭게 강조하는 것으로 작품이 완성된다.

 

중세의 성서 필사본은 주로 미사 중에 쓰이는 기도문이 수록된 전례서, 네 복음서가 모두 들어 있는 성서, 주일 미사나 축일 미사에서 읽는 복음서, 수도자들이 사용하는 기도서 외에도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필사본의 크기는 여러 가지였는데, 대략 미사 중에 쓰이는 복음서나 전례서는 30cm×45cm 정도이고, 도서관이나 수도원에 보관하는 기도서는 길이 20~35cm, 폭이 15~25cm 정도 되었다. 그 밖에 개인적인 기도용 필사본은 휴대하기 좋은 크기로 위의 것들보다 더 작게 만들었다.

 

필사본 제작의 난이성과 전문성은 무아사크(Moissac) 수도원의 문헌 자료에 잘 나타나 있다. 우선 그리스어, 히브리어, 라틴어 등으로 된 원본을 어학 능력이 뛰어난 수도사들에게 맡겨 필사를 담당하도록 하였다. 그 다음엔 삽화 단계로, 화가가 전담하여 묘사와 채색 작업을 진행하였다. 간혹 뛰어난 필사가가 화가의 역할도 맡는 경우가 있었지만 매우 드물었다.

 

필사본의 제작 과정은 복잡하고 전문적일 뿐만 아니라 비용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제작을 의뢰하는 사람은 주로 왕이나 귀족 또는 고위 성직자였다. 그리하여 화려하고 독창적이며 예술성이 강한 채색 세밀화 필사본은 소유자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샤를르 르 쇼브 성서」, 「베리 공의 대기도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성서 필사본은 필사가와 화가들의 노력과 빼어난 솜씨가 없었다면 제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더 중요한 것은 주문자, 제작자, 사용자의 깊은 신앙심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 존재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작자들의 깊은 신앙과 정성 및 체취가 배어 있는 중세 필사본은 14세기 후반부터 서서히 발전되어 온 인쇄술(1450년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술 발명)의 등장으로 조금씩 그 빛을 잃어 갔다. 하지만 한동안 희소가치와 작품성을 중요시하는 사람들과 교회에서는 대접을 받았다. 금과 은이 사용되어 ‘illuminated'라 불렸던 필사본은 중세의 최고위층만 누릴 수 있는 지적(知的) 사치였다. 우르비노 공작은 “도서관에서 인쇄된 책을 소장하고 있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인쇄된 책자가 시중에 유통되어 누구나 쉽게 책을 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우르비노 공작과 같이 필사본에 깃들어 있는 시간과 정성으로 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건재했던 것이다.

 

앞으로 비잔틴 양식, 아일랜드와 브리튼 양식, 카롤링 양식, 오토 양식을 비롯하여 스페인에서 제작된 대표적인 필사본 이야기를 연대순으로 함께할 것이다. 중세를 찬란히 빛냈던 필사본의 매력과 성경을 필사하던 장인들의 숨결이 이 글을 읽는 「성모기사」 독자 여러분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성모기사, 2019년 1월호, 박성혜 테레사(그리스도교미술 연구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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