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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복음서 해설: 표징과 믿음(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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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2,281 추천수0

[요한 복음서 해설] 표징과 믿음(2,1-12)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 이야기이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는 ‘초능력’은 낯설다. 낯설기에 기적이라 하고, 그래서 예수님의 능력에 감탄한다. 하지만 ‘역시 주님이야’ 하며 감탄사로 복음을 읽는 데는 낯설지 않다.

 

믿음이 뭘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예수님을 향한 한 개인의 열정 또는 사랑으로 이해한다면, 믿음은 자기 욕망을 예수님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된다. 이를테면 “예수님,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사랑에 대한 개념을 솔직히 물어 보면, 자신의 삶이 무너지고 내팽개쳐져서 한없이 아픈 삶 곧 십자가의 삶을 사랑이라고 받아들이진 않는다. 한평생 얼마간의 평온함과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며 무탈하게 살아간다는 전제 조건 하에 예수님께서 여전히 홀로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암묵적 동의가 ‘예수님, 사랑합니다’가 될 수 있다.

 

카나의 혼인 잔치는 분명 잔치이고 기쁨의 시간이다. 전통적으로 혼인날은 메시아의 도래를 가리키는 개념이었다(이사 62,4-5; 마태 22,1-14 참조). 메시아가 오면 좋은 일, 기쁜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의 기본 습성이다. 이 습성으로 카나의 혼인 잔치를 읽어 가다 보면 잔치에 빠질 수 없는 포도주를 만들어 주신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메시아임을 고백하게 된다. ‘예수님, 사랑합니다’라는 논리와 다르지 않은 셈이다. 잔치의 기쁨이 훼손되지 않는 딱 그만큼의 요구에 예수님은 필요조건일 뿐이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2,4). 예수님의 때는 카나의 혼인 잔치 시간에 매몰되어 그것으로 끝나버릴 수 없는 다른 시간을 예고한다. 요한 복음이 가리키는 예수님의 때는 언제일까? 놀랍고 낯설기 짝이 없는 순간, 사도 바오로의 표현(1코린 1,23 참조)을 빌리자면 걸림돌이고 어리석음이 될 수 있는 십자가 사건에 담긴 예수님 당신의 충만한 때를 말한다. 요한 복음은 그때를 ‘영광의 때’라고 말한다(7,38-39; 12,23; 13,31 참조). 대개 성경에서 영광이란 말마디는 하느님의 현존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1열왕 8,11 참조). 하느님의 현존이 십자가 사건으로 확연히 드러난다는 것이 영 마뜩잖다. 우리는 지금 혼인 잔치의 기쁨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죽음보다야 사는 게 낫고, 슬픔보다야 기쁜 게 낫지 않겠나. 그러나 요한 복음은 이런 이분법 개념을 가차없이 무너뜨린다. 죽음과 생명, 슬픔과 기쁨이 전혀 어울릴 수 없다는 의견에 요한 복음은 어울린다고 강변한다. 그래서 혼인 잔치를 제일 먼저 예수님의 충만한 때, 곧 죽음과 생명이 만나고 슬픔과 기쁨이 하나가 되는 때를 위한 표징으로 내세운다. 이 표징을 통해 잔치에만 취하지 말라고 주문한다. 이를테면 흔한 잔칫집의 술에 취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마련하시는 또 다른 술에 취하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물을 포도주로 바꾼 일 너머에 다른 무엇이 있다는 말이다. 그 사건이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카나의 혼인 잔치는 표징 너머의 다른 무엇을 볼 수 있게 우리를 준비시킨다. 어떤 준비일까? 결론을 말하자면, 믿음에 대한 준비이다. 표징은 표징일 뿐, 그것이 가리키는 예수님의 충만한 때, 곧 영광의 때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믿음’이 요구된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지난(至難)하다. 먼저 마리아의 말에 주목하자.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2,5). 예수님께서는 말을 아끼신다. 그저 “물을 채워라”, 그 물을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는 말씀 외에 특별한 것이 없다.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움직였다. 마침내 과방장의 입을 통해 ‘좋은 포도주’가 인정되고 확정된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일련의 과정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의 독보적 초능력만 강조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가득 채우라고 하신 물은 정결례에 사용되는 물독과 절묘하게 조우한다. 잔칫집에 어울릴 좋은 포도주는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유다이즘의 정결례에서 시작한다. 메시아를 만나고, 그분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일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그분의 영광을 보고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기존 가치 체계에 찌든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해체해야 한다. 세속의 논리에 젖어 잃어버린 신앙감을 찾는 데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는지 되묻는 작업이 정결례에 사용되는 물독에 물을 채우는 행위다. 그 물독이 가득 찼을 때, 우리는 메시아를 만나는 참된 잔치의 기쁨을 만끽할 것이다.

 

믿음의 결과는 영광을 보는 눈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발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11,40)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저 구름 위 하늘에, 또는 저 세상에 지으려 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 우리의 변화를 통해 드러내려 하셨다. 다만 우리의 믿음, 우리의 변화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존 가치 체계와의 갈등과 불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을 뿐이다.

 

* 박병규 신부는 대구대교구 소속으로 2001년 사제품을 받은 후 2009년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학교에서 성서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활동과 대중 강연, 방송 진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목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6월호(통권 471호), 박병규 요한 보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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