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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마태오 복음서: 마태오 복음, 교회의 복음서 - 교회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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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2,395 추천수0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마태오 복음서] 마태오 복음, 교회의 복음서 : 교회는 누구인가

 

 

수년 전 학생들에게 어느 복음서가 맘에 드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가장 많은 대답은 루카 복음이었다. 그들은 루카 복음을 읽으면 왠지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돌아온 탕자를 맞아들이는 아버지의 비유(15,11-32),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10,30-37) 등 무엇인가 힘들고 상처 받은 사람들을 아끼시는 자상한 하느님이 손에 잡힐 것 같기 때문이다. 루카 복음 다음으로는 요한 복음, 마르코 복음이었고, 마태오 복음은 꼴찌를 차지했다.

 

마태오 복음의 꼴찌는 의외였다. 초대 교황 베드로에게 열쇠를 쥐여 주는 장면이 마태오 복음(16,17-20)에만 나오고, 하느님 나라의 윤리(5-7장)와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원칙들(18장), 족보로부터 시작되는 빈틈 없는 구성과 일사불란하게 정렬한 도덕률 등이 있는데, 이런 소중한 가르침들을 무시하듯이 어떻게 꼴찌일 수 있는가.

 

지난 호에서 우리는 스승 예수님과 제자들의 인격적인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서 성서신학의 기술적인 문제를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겠다.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으로 확정된 것은 역사의 예수님이 직접 물려주신 것이기보다 1세기 그리스도 교회의 유산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여러 증거가 있는데, 이를테면 배신자 유다 자리에 보궐 선거로 마티아를 보충해 12라는 숫자를 완성한 점(사도 1장), 10,1-4와 마르 3,16-19의 12사도 명단이 일치하지 않는 점, 루카 10,1에 나오는 72사도단, 그리고 예수님을 밀착 수행했던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존재가 이를 알려 준다. 예수님의 측근에 열두 제자가 아니라 세 제자가 있었다는 말이다. 마태오는 특히 ‘12제자’의 입지에 대해 굳건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네 복음서 중에서 오직 마태오 복음에만 나오는 구절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10,5-6).

 

마태오에게 12사도의 파견은 길 잃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염두에 둔 것이고 이는 분명 12부족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전체를 모으시겠다는 예수님의 의지가 십분 들어 있는 제자 선발이 이루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G. 로핑크). 그렇게 모인 이들로 이스라엘의 구원이 성취되고 나면 이제 세계를 향해 복음이 전파될 차례다. 복음의 세계화 전망은 마태오 복음의 대단원인 28,16-20에 등장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치 하느님의 현현처럼 산에 올라 12제자에게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제자로 삼으라는 사명을 주신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28,19).

 

마태오는 그렇게 열심인 제자들로 구성된 공동체의 확장을 ‘교회’(에클레시아: 16,18; 18,17)로 보았다. 말하자면 교회란 옛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새 이스라엘’, 혹은 ‘진정한 이스라엘’인 셈이다. 유다인이라는 민족적인 기준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라는 새로운 기준으로 ‘하느님의 백성’이 구성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제자들의 모임인 교회는 어떤 모습을 지녀야 할까?

 

마태오는 18장에 교회 설교를 실어 놓았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데 지침이 될 만한 가르침들을 취사선택하여 집중적으로 실어 놓은 것이다. 그중 압권은 단연 18,15-18이다. 만일 교회 공동체 내의 어떤 형제가 죄를 지으면 단둘이 만나 잘못을 타이르고, 그 말을 듣지 않으면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설득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전 교회에 사안을 공지하여 설득하고, 만일 교회의 말까지 듣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내보내도 된다는 것이다. 이어서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18,18).

 

예수님은 교회의 판단에 그렇게 엄청난 힘을 실으셨다. 그분이 베드로에게 열쇠를 주는 장면에도 18,18과 똑같은 말씀이 나온다(16,19). 베드로 개인에게도 교회 전체의 결정과 맞먹는 권한을 준 셈이다.

 

마태오에 따르면 12제자는 예수님을 근거리에서 모시는 친위 집단이고(5,1) 이들은 예수님과 군중 사이에 가교 역할을 담당한다(14,13-21). 마태오의 ‘12제자’ 이해는 1세기 그리스도 교회에 12사도 집단 지도 체제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에 대한 증거가 부활 발현 목격자 명단인 1코린 15,5에 나오고, 예루살렘 모교회에서 일곱 봉사자를 선택하는 사도 6,1-7에도 등장한다(특히 6,2). 말하자면 마태오 복음이 제시하는 ‘12사도 집단 지도 체제’는 1세기 교회 조직의 이정표였던 것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마태오 복음은 수백 년간 미사에서 가장 친숙한 복음서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마태오 복음은 거의 매 주일 읽혔다. 마태오 복음은 교회 중심적이고, 신앙교리서 형태를 띠며, 가톨릭교회의 요구에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교회 어르신들이 좋아하실 법한 복음서이다.

 

어르신들의 취향에 따라 교회는 예수님에게서 건네받은 전권(全權)을 유지하기 위해, 또한 그에 맞는 몸집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해 왔다. 그러나 교회는 단지 존재하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이 필요했고, 영향력을 갖기 위해 좀 더 많은 것이 요구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졌다는 생각이 들 때, 마태오는 의문을 제기한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25,42-43).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의 경계를 없앤 인물로서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다.

 

‘베드로와 교회에 하늘의 전권이 주어졌다’는 말에서 전권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교회가 짊어진 무거운 짐에 집중해야 한다. 전권을 가진 교회이니만치 모름지기 이 세상에 정의가 넘쳐 흐르도록 할 책임이 있고, 그 책임감에 하늘의 무게를 담아내야 한다. 교회여, 당신은 고통당하는 사람들 속에 계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까?

 

* 박태식 신부는 대한성공회 소속으로 월간 <에세이>로 등단, 월간 <춤>을 통해 영화평론가로 입문했고, 현재 서강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공회대학교에 출강하며, 대한성공회 장애인 센터 ‘함께사는세상’ 원장으로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10월호(통권 487호), 박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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