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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22: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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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1,846 추천수0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

 

 

“나는 또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 하늘과 첫 번째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습니다”(21,1). 이 표현과 함께 요한 묵시록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환시를 시작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사 65,17; 66,22; 2베드 3,13) 그리고 첫 번째 하늘과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다는 것은 새로운 창조를 나타내는 직접적인 표현입니다. 특히 바다는 고대 사회에서 악의 세력이 머무는 장소를 나타낸다는 것을 생각하면 악의 세력이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새로운, 완전한 세상에 대한 표현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창조

 

새로운 창조는 크게 두 부분, 새로운 창조에 대한 선포와 새로운 예루살렘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로 나뉩니다. 가장 먼저 새로운 창조를 통해 강조되는 새로운 관계가 선포됩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21,3-4).

 

새로운 창조의 핵심은 하느님의 거처가 사람들 안에 있고, 그 안에 하느님께서 함께 머무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새 하늘, 새 땅이라는 물질적인 새로운 세상을 넘어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시작되는 새로운 관계입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지속적으로 예언되었던 것처럼 악의 세력에 맞서 승리한 이들이 바로 이 새로운 관계의 주체입니다. “다 이루어졌다.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나는 목마른 사람에게 생명의 샘에서 솟는 물을 거저 주겠다. 승리하는 사람은 이것들을 받을 것이며, 나는 그의 하느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21,6-7). 새로운 창조와 관계는 새로운 계약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구약성경에서처럼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내용은 전형적인 계약 문구입니다. 이제 이 계약은 하느님과 백성의 관계에 머물지 않고 하느님과 아들의 관계가 됩니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이들, 곧 악의 세력에 동조한 이들은 두 번째 죽음을 맞습니다(2,11 참조). 이것은 영원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예루살렘

 

21,9부터는 새로운 예루살렘에 대한 환시를 전합니다. 새 예루살렘은 ‘어린양의 신부’로 소개됩니다. 하느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은 신부의 이미지로, 그리고 어린양인 그리스도는 신랑의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이 혼인 관계가 의미하는 것은 새로운 계약입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의 약속은 이렇게 이루어집니다(19,5-10).

 

새로운 예루살렘에 대한 환시는 마치 저자가 천천히 도시를 향해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그렇기에 외형을 먼저 보여 준 후 내부의 모습을 전해 줍니다. 새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습니다(21,11). 그리고 이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습니다. 열두 성문에는 열두 지파의 이름이 적혀 있고, 성벽은 열두 사도의 이름이 기록된 열두 초석 위에 자리합니다. 외형적인 모습에서 가장 지배적인 것은 ‘열둘’이라는 숫자입니다. 성문을 지키는 열두 천사, 열두 사도의 이름 위에 세워진 성벽, 열두 지파의 이름이 새겨진 열두 성문. 이것들은 모두 구약과 신약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또한 구약과 신약의 모든 약속과 예언이 이 새로운 도성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12라는 숫자와 관계된 표현인 14만 4000명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외형 묘사 이후에 요한 묵시록 저자는 도성의 크기를 이야기합니다. 이 도성은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모두 1만 2000 스타디온인 정육면체입니다. 이것 역시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정육면체는 가장 완전한 도형으로 여겨졌고, 이미 솔로몬 성전의 성소 역시 이러한 모습이었다고 전해집니다(1열왕 6,20). 실제로 이 도성의 모습이 네모 반듯한 정육면체라기보다 이 도성의 완전함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성벽의 두께는 144 페키스입니다. 도성의 크기나 성벽의 두께 역시 모두 12라는 숫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실제 길이를 계산해 본다면 1만 2000 스타디온은 약 2400km 정도고, 144 페키스는 70m 정도입니다. 이러한 크기와 성벽의 두께는 하느님 도성의 완전함을 의미하며, 그 안에 머무는 이들이 하느님의 완전한 보호 아래 있음을 뜻합니다. 게다가 이 도성은 열두 보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이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는 모습입니다.

 

요한 묵시록의 특이한 표현 중 하나는 성전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21,22). 유다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성전이 없었다는 표현은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성전에 관해 지녔던 독특한 이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성전은 특정 장소에 있는 성전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리스도께서 몸소 성전이 되시어 신앙인들과 함께 머무시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해하는 하느님에 대한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이 첫 창조 때의 해와 달처럼 도성 전체를, 신앙인들을 모두 비추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도성에는 밤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도성을 차지하는 이들은 어린양의 생명의 책에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생명의 책에 기록된 이들, 박해 속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지킨 이들,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의 신앙을 간직한 이들이 바로 요한 묵시록에서 말하는 승리하는 이들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시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과 어린양과 함께 머무는 완전한 상태를 이야기합니다.

 

*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1999년 수품)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며(신학박사),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10월호(통권 487호), 허규 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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