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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암브로시오를 만나 영적 눈을 뜬 아우구스티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6,008 추천수0

[성경과 그리스도교 문화] 암브로시오를 만나 영적 눈을 뜬 아우구스티노

 

 

많은 청년이 어린 시절 친숙하게 다녔던 교회를 떠나고 있다. 그중 일부는 교회에서 만난 신자나 성직자에 대한 부정적인 체험 때문에, 다른 이들은 세속화된 사회와 학교에서 배운 과학적 지식이나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성경 내용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냉담 상태에 빠진다. 이들의 의심이나 실망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으면, 신심 깊은 부모의 강한 권유도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황실 수사학 교사가 되어 밀라노에 도착한 청년 아우구스티노도 회의론에 빠져 그리스도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에 대한 관심이 차갑게 식어 가고 있었다.

 

그러다 밀라노에서 로마제국 최고위층 자녀들을 새로 만나 교류하면서 굳어 버린 아우구스티노의 마음이 따뜻하게 녹았다. 향락적인 문화가 널리 퍼져 있던 당시의 분위기와 달리 이 최상류층의 자녀들은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라는 매우 심오한 철학적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정신적인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이 철학 사상을 통해 아우구스티노는 영원불변한 진리에 대한 열망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고차원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에 맛들인 아우구스티노가 이미 크게 실망했던 그리스도교로 돌아오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밀라노 대주교 암브로시오와의 만남

 

당시 밀라노에는 서방 그리스도교의 최고 지성이라 불릴 만한 암브로시오(St. Ambrosius, 340-397년)가 대주교직을 맡고 있었다. 그는 집정관의 아들로 태어나 당대 최고의 인문교육을 받은 상태로 밀라노의 집정관을 맡았으며, 아리우스파와의 분쟁을 해결한 후 밀라노 대주교로 추대된 인물이었다.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황제의 잔혹한 학살 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하여 참회를 끌어낸 암브로시오 주교는 밀라노 대중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 있었다. 한편 아우구스티노는 황제의 대변인 역할을 겸했던 황실 수사학학교 교사로 봉직하면서 정치적으로 그와 대립하는 위치에 서 있었다.

 

어느 날 신플라톤주의를 함께 공부하던 동료들이 암브로시오 주교의 감동적인 설교와 놀라운 수사학적 능력을 칭송하자, 수사학에서는 최고임을 자처하던 아우구스티노는 질투심과 호기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결국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심정으로 아우구스티노는 밀라노 대성당을 찾았다. 그는 거만하게 다리를 꼰 채 암브로시오의 강론을 기다렸다. 강론대에 선 암브로시오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고요한 밀라노 대성당을 가득 메운 신자들이 알아듣기에 충분했다. 그가 강론을 시작하면서 자유롭게 인용한 키케로, 베르길리우스 등의 로마 사상가들은 아우구스티노도 무척이나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어느새 아우구스티노는 자세를 바로 한 채 암브로시오 주교의 매혹적인 강론을 경청하고 있었다.

 

 

성경에 대한 영적 해석의 발견

 

아우구스티노가 감명 받은 암브로시오 주교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암브로시오 주교의 남아 있는 설교집과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의 내용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아우구스티노가 카르타고에서 성경을 본격적으로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으로 보이는 내용에 실망한 바 있었다. 그러나 암브로시오는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바치러 떠나는 장면에서 자녀가 아팠을 때 느끼는 부모의 마음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녀를 잃은 경험이 있는 부모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신자들의 감정이 고양되고 있을 때 암브로시오는 그들의 감정을 어루만진 후, 모리야 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죽이려고 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다. 그 순간 천사가 와 멈추라고 해서 이사악이 생명을 보존했을 때, 경청하던 신자들은 안도했다. 그러나 설교는 곧바로 암브로시오가 의도한 본격적인 주제로 연결되었다. “이제 같이 생각해 봅시다.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실제로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바친 분이 계십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아우구스티노를 비롯한 많은 신자가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이야기 등을 들을 때 문자적 의미에만 집중해 왔는데, 암브로시오는 구약의 사건은 신약에서 일어날 사건을 미리 보여 주는 ‘예표豫表’라고 일깨워 준 것이다. 아우구스티노는 암브로시오 주교의 강론을 통해 처음으로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영적 의미’를 찾아야 함을 깨달았다.

 

암브로시오 주교는 이러한 성경의 영적 해석 방식을 ‘빵과 포도주의 본질 변화’ 등의 다양한 신학 주제에 적용하여 가르쳤다. 예를 들면, 엘리야 예언자가 사렙타의 과부에게 행한 기적(1열왕 17,8-24 참조)을 토대로 성체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힘을 그리스도의 창조적 전능으로 설명했다.

 

“인간(엘리야)의 축복 기도가 자연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녔다면, 주님이며 구원자의 말씀 자체가 효력을 미치는 신적 축성에 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 그러므로 엘리야의 말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오게 하는 힘(1열왕 18,36-38)을 지녔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기본 요소들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지니지 못했겠습니까?”(《신비론》 52)

 

암브로시오는 성경을 이해할 때 문자적 의미가 가장 기본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만일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있다면, 그것은 다양한 영적 의미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음을 멋진 강론을 통해 보여 주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사랑

 

암브로시오의 많은 가르침 중에서도 사회에 만연한 빈부 격차를 고발하는 내용은 매우 인상적이다. 아합 임금 시대 때 아합과 그의 표독한 아내 이제벨에게 죽임을 당하고 포도원을 뺏긴 나봇(1열왕 21,1-19 참조)을 주제로 한 강론에서, 그는 부유해질수록 더욱 탐욕을 부리는 부자들을 꾸짖는다.

 

“그대는 가질수록 더 원하고, 벌어들일수록 여전히 그대에게는 부족하기만 합니다. 돈 욕심으로 타오른 탐욕은 꺼질 줄을 모릅니다. … 덜 가졌을 때는 자신의 재산을 가늠하여 절도 있게 벌어들일 줄 알았지만, 재산이 늘어날수록 탐욕도 커집니다. … 그리하여 탐욕스러운 부자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시기하고 자신의 가난을 탄식합니다”(《나봇 이야기》 2,4-5).

 

암브로시오 주교는 탐욕스러운 부자들을 질타했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는 가장 좋은 실천 방법도 알려 주었다. 그는 “하느님을 빚쟁이로 만드십시오”라고 가르쳤는데, 예수님께서 가장 헐벗고 어려운 자들에게 해 주는 것이 바로 당신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내용(마태 25,31-46 참조)을 응용한 것이었다. 곧 부자들의 경우 자신의 돈을 먼저 가난한 이들에게 쓰기로 선택한다면, 그것이 곧 하느님을 빚쟁이로 만드는 것(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암브로시오 덕분에 목에 가시처럼 걸린 의문들이 제거되자, 아우구스티노는 성경을 열정적으로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이 성경 공부를 통해서 아우구스티노는 극적으로 회개하게 되었고, 8개월간 세례를 준비한 후 암브로시오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후에 히포의 주교가 된 아우구스티노는 죽을 때까지 암브로시오 주교의 가르침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가령, 그는 이에 따라 감옥에 갇힌 자들과 숱한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 자기 교회의 성구(聖具)들을 팔거나 처분할 정도였다.

 

교회의 많은 청년이 젊은 아우구스티노처럼 이해되지 않는 성경 구절 때문에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암브로시오 주교처럼 의심에 사로잡힌 이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영적 눈을 뜨게 해 주어 다시 주님의 품 안으로 이끌어 들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성직자, 수도자는 물론, 오랜 성경 공부를 통해 충분한 지식을 갖춘 평신도 모두의 소중한 과제이다.

 

* 박승찬 님은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와 가톨릭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신학부에서 석사 ·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공 분야는 중세철학이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11월호(통권 476호), 박승찬 엘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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