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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21: 천 년 통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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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1,621 추천수0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천 년 통치

 

 

요한 묵시록은 종말과 함께 그 이후에 오게 될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줍니다. 어쩌면 종말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기보다 그 이후에 올 다른 세상을 위한 과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요한 묵시록 외에 유다교에서 나온 다른 묵시록들 역시 비슷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사라진 이후에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새로운 세상이 오기 전에, 이 세상이나 악한 세력에 대한 심판이 종말 때 이루어진다고 묘사됩니다. 물론 묵시록은 아니지만 노아의 홍수 이야기에서도 이러한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창세 6,5-7). 하느님께서 의로운 이들을 선택하여 새로운 세상을 시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순교자들이 부활해 그리스도와 함께할 천 년

 

20장은 종말 이후에 대한 환시입니다. 하느님의 기사(騎士)를 통해 보인 종말 때의 재림과 심판에 대한 환시 이후, 여기서는 천 년 통치와 사탄에 대한 심판을 보여 줍니다. 종말 때에 하느님의 세력과 맞서 싸운 짐승과 거짓 예언자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졌다면, 이제 그 주동 세력에 대한 심판이 나옵니다.

 

지하에 대한 권한을 가진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옵니다(9,1 참조). 이 천사의 역할은 악의 세력이 더는 세력을 뻗치지 못하게 가두는 것입니다. 묵시록은 악의 세력을 용으로, 그리고 악마이며 사탄으로 소개하고 더 나아가 “그 옛날의 뱀”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이미 12,9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묵시록 저자는 악의 세력을 창세기에 나오는 인간의 죄와 연결합니다. 하와와 아담이 죄를 짓도록 했던 뱀을 악의 세력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세상과 인간의 시작 때부터 죄를 짓게 한 악의 세력은 종말의 때에 비로소 심판을 받습니다. 창조에서부터 시작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종말을 통해 완성에 이르는 것처럼 악의 세력에 대한 심판 역시 그렇습니다.

 

악의 세력은 더는 사람들을 속이지 못하도록 천 년 동안 갇혀 있습니다. 이와 함께 종말 이전에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하느님의 말씀 때문에 목이 잘린 이들”, 곧 순교한 이들은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릴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부활로 소개됩니다. 이 부활은 믿음 때문에 죽임을 당한 이들에게 국한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천 년 통치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았던 다른 신앙인들은 천 년에 걸친 이 통치 이후에 살아나 새롭게 창조된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종말 – 천 년의 통치 – 마지막 심판

 

요한 묵시록에서 보여 주는 종말과 천 년 통치, 그리고 새로운 창조로 이어지는 내용은 종말과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예언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달리 말해 이 환시의 목적은 종말 후에 반드시 이런 모습으로 사건이 진행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천 년 통치로 표현되는 중간 시기가 유다인들이 갖고 있던 기다림을 나타낸다고 이해합니다.

 

유다인들은 구원과 관련하여 두 가지의 기다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임금으로서의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유다인들에게 다윗 임금과 같은 메시아가 나타나 흩어진 이스라엘의 민족을 하나로 모으고 그들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민족적인 종말론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유다인들은 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이 종국을 맞게 될 것이고 하느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종말의 때에 하느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며 이 심판을 통해 하느님은 의로운 이들을 선택하여 새로운 세상에서 살게 하실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이것을 보편적인 종말론이라고 표현합니다.

 

요한 묵시록이 보여 주는 환시에는 이 두 가지 기다림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전체적인 종말에 대한 환시는 보편적인 종말론과 비슷하고 천 년 통치에 대한 환시는 유다인들의 민족적인 종말론과 연관됩니다. 종말 이후에 나타나는 중간 시기는 메시아와 순교한 이들이 함께 다스릴 것이라는 유다인들의 기대에 부합합니다. 이 통치 기간이 지나면 사탄은 다시 풀려나고 심판을 받습니다. 이 기간 이후에 악의 세력은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을 것”(20,10)입니다.

 

20,11-15에서 마지막 심판이 묘사됩니다. 사람들은 생명의 책에 기록된 대로, 자신들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3,5 참조). 이때에 선택받지 못한 이들은 죽음 이후에 다시 벌을 받습니다. 이것을 묵시록은 ‘두 번째 죽음’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제 이들에게 더 이상의 가능성은 없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참여하여 영원히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면에서 요한 묵시록에서 말하는 두 번째 죽음은 하느님과의 영원한 단절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반드시 성취될 하느님의 구원 약속

 

종말 – 천 년의 통치 – 마지막 심판으로 이어지는 요한 묵시록의 환시는 지금 교회에서 말하는 종말에 대한 가르침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교의와 비교해 본다면 천 년 통치라는 환시가 없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요한 묵시록이 종말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종말과 그 이후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마치 요한 묵시록이 묘사하는 환시 내용이 종말 이후의 세상을 알려 주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한 묵시록이 강조하는 것은 종말의 구체적인 모습이기보다 하느님 약속의 성취입니다. 하느님을 충실히 따르던 신앙인들은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생명이라는 상을 얻을 것이고, 악의 세력과 그에 동조한 이들은 죽음과 함께 영원한 벌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종말 이후의 환시 내용은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표현되는, 승리한 이들에게 주어질 상을 생각하게 합니다. 종말 이후의 환시에서 이러한 약속과 성취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의 환시에서 보이는 것처럼 하느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1999년 수품)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며(신학박사),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9월호(통권 486호), 허규 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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