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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20: 하느님의 기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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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2,019 추천수0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하느님의 기사 (2)

 

 

지난달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하느님의 기사(騎士)에 관한 환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느님의 기사를 묘사하는 19,11-16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이 기사의 명칭입니다. ‘명칭’은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알려준 이후에(탈출 3,13-14) 성경에서 다루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특별히 요한 묵시록은 그리스도를 “성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이들의 맏이이시며 세상 임금들의 지배자”(1,5), “알파요 오메가”이며 “시작이며 마침”(1,8; 21,6; 참조 22,13)으로 표현합니다. 이런 명칭들은 요한 묵시록의 그리스도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실하시고 참되신 분”(19,11)

 

성경에서 ‘성실하다’와 ‘참되다’는 표현을 함께 사용한 책은 요한 묵시록이 유일합니다(3,14; 19,11; 21,5; 22,6). 이 두 단어는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아멘’이라는 표현에서 왔습니다. 원래 히브리어인 이 단어의 의미를 칠십인역 성경(그리스어로 된 구약성경)에서는 ‘참되다’와 ‘성실하다’는 두 가지 표현으로 사용합니다.

 

‘참되다’는 용어는 구약성경에서 지속적으로 하느님을 이야기할 때 사용됩니다. 이것은 하느님께 사용된 이름인 동시에 하느님의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 용어는 신약성경에서도 비슷하게 사용됩니다. 특별히 ‘진리’를 강조하는 요한 복음이 이 용어를 많이 사용하며, 하느님 또는 예수님께 적용됩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참되다’는 표현은 주로 재판과 관련된 언급들(3,14; 6,10; 16,7; 19,2.11)이나 ‘말씀’과 함께 사용됩니다(3,7; 19,9; 21,5; 22,6). 이러한 용례는 하느님으로부터 종말에 대한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어린양, 곧 그리스도가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고 또 완성에 이르게 할 것임을 보여 줍니다. 정의로운 심판을 내리는 참된 하느님의 모습은 종말 때에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업적을 통해, 특히 그분의 심판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될 것입니다.

 

‘성실하다’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과 그 백성 사이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사용됩니다.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그러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2티모 2,13). ‘성실하심’은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는 그리스도의 특성이라고 표현됩니다. 그리스도는 성실함의 모범이십니다. 여기에는 구약성경에서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온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인간과 세상의 구원을 위해 성실하신 분입니다. 성실함의 바탕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성실하심은 구원 역사의 시작과 완성이 그분의 주도권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그리스도의 업적입니다. 요한 묵시록에서는 신앙인들이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본받아 죽음에 이르기까지 성실해야 한다고 표현합니다(2,10). 특히 묵시록 저자는 성실하다는 것을 세 번에 걸쳐 ‘증인’이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합니다(1,5; 2,13; 3,14). 구체적으로 신앙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박해의 힘든 상황에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고 그 믿음을 살아가는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분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19,12)

 

“그분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름”은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표현되는 ‘새 이름’과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습니다(2,17; 3,12). 이 숨겨진 이름은 신비로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이름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약속이 성취되기 전까지 드러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 이름, 곧 숨겨진 이름은 종말의 때, 곧 그리스도께서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하여 구원을 완성하시게 될 때, 사람들에게 밝혀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당신 자신을 스스로 계시하기 전까지, 믿는 이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그 이름이 숨겨진 채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19,13)

 

“하느님의 말씀”은 요한 묵시록에서 ‘그리스도의 증언’과 함께 표현됩니다(1,2.9; 6,9; 20,4). 하느님의 기사의 이름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구약성경의 하느님과 종말에 오시는 그리스도께서 다른 분이 아님을 암시합니다. 특히 예언과 관련된 이 표현은 요한 묵시록에서 황제숭배 의식을 전파하던 거짓 예언자(16,13; 19,20; 20,10)와 상반된 관계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기사를 통해 진정한 하느님의 말씀이 계시되고 이것을 통해 거짓 예언자의 선포가 거짓이라는 사실이 폭로됩니다. 이제 하느님의 기사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악의 세력을 심판하고 진노의 처벌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임금들의 임금, 주님들의 주님”(19,16)

 

구약성경에서 하느님께 사용되던 이 이름은 이제 그리스도에게 부여됩니다(신명 10,17; 시편 136,2 참조). 이것을 통해 세상에 대한 진정한 통치권을 가진 분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임금들의 임금, 주님들의 주님”은 로마의 황제권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몸에 새겨진 하느님을 모독하는 이름’(13,1; 17,3)이란 표현과 상반되는 것으로, 세상에 대한 권력을 잠시 가졌던 로마의 힘은 끝이 났음을 암시합니다. 하느님의 진정한 통치권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보여지고 악의 세력을 누르고 승리할 것이라는 약속 역시 성취됩니다.

 

하느님의 기사에게 부여된 이름은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그리스도가 다른 분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며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구원 역사가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에 이른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1999년 수품)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며(신학박사),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6년 8월호(통권 485호), 허규 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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