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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이사야서 해설: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이사 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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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2,306 추천수0

[이사야서 해설]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이사 56,3)

 

 

이방인 문제, 성경에 자주 등장하지요? 구약성경의 느헤미야기에서는 이방 여인들을 배척하지만, 요나서에서는 니네베인들이 구원되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 주고, 룻기에서는 배척받던 모압 여자가 하느님 백성으로 들어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 이방인들이 생기면서 바오로 서간, 특히 로마서에서 유다인과 이방인의 관계에 대해 깊이 논합니다. 이방인들도 구원되는가? 이방인들 가운데에서도 원수였던 민족들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이방인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교회 공동체로 들어올 수 있는가? 이 문제를 생각할 때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입니다. 자, 이제 좀 다른 각도에서 이방인 문제를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이방인들을 받아들이는 이스라엘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으로 받아들여진 이방인들입니다.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56,1)

 

먼저 이스라엘에게서 시작합니다.

 

“너희는 공정을 지키고 정의를 실천하여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로움이 곧 드러나리라”(56,1).

 

이사야 예언서 제3부에 나오는 하느님의 첫 말씀이며 이 부분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유배에서 돌아와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 구원이 지체되는 이유를 물었던,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대답입니다. 주님의 손이 짧아서, 그분의 귀가 어두워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59,1 참조). 구원은 가까이 와 있습니다. 말하자면, 구원은 바로 문 앞까지 와 있는데 이스라엘이 문을 막고 못 들어오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장벽을 허무는 것이 바로 정의와 공정입니다.

 

“정의와 공정”은 사실 이사야서 1장부터 되풀이되던 주제입니다. ‘정의’와 ‘공정’ 두 단어를 굳이 구별해 본다면 ‘정의’는 ‘의로움’과 연관되고, 이사야서에서는 구원과도 연관됩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의로움’이라는 측면 때문입니다. 한편 ‘공정’은 ‘재판, 심판, 법칙, 법’이라는 의미도 가진 단어입니다. 어쩌면 두 단어를 구별하는 것보다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 두 단어를 함께 씀으로써 더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의와 공정’이 거의 매번 함께 쓰이는 것을 보면 이사야서의 신학적 특징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되짚어 보면, 과거에 예루살렘은 충실한 도성이었고 “공정이 가득하고 정의가 그 안에 깃들어 있었는데”(1,21) 그 정의와 공정을 잃어버리고 ‘창녀’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심판을 선고하는 것이 이사야 예언서 제1부였습니다. 하느님은 “공정을 줄자로, 정의를 저울로” 삼아(28,17) 시온을 심판하고, 그 정의와 공정으로 예루살렘을 구원할 것입니다.

 

“시온은 공정으로 구원을 받고 그곳의 회개한 이들은 정의로 구원을 받으리라”(1,27). 이사야 예언서 제1부에서는 메시아 임금도 정의와 공정으로 통치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9,6; 11,4).

 

이사야 예언서 제3부에 이르면 이미 그 심판은 이루어졌습니다.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지 않아 정의와 공정으로 심판받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구원의 길도 역시 정의와 공정입니다. 먼저, 이사 56,1에서 말하는 것은 인간이 실천해야 할 정의와 공정입니다. “행복하여라, 이를 실천하는 사람!”(56,2) 그런 사람에게는 구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사 59,9.11에서는 이렇게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구원을 가리켜 ‘정의와 공정’이라는 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폭력과 불의를 저지르는 이들에게 공정과 정의는 멀리 있고 또한 미치지 못합니다(59,9). 빛을 바라고 공정을 바라고 구원을 바라지만(59,11), 모두 그들에게서 멀리 있을 뿐입니다.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지 않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은 실현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빛을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정의를 원한다고 하면서 불의 속에 머물고 있다면 어떨까요? 그 사람이 빛을, 정의를 누릴 수 있을까요? 제3이사야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의 구원이 실현되기를 원한다면 인간 편에서 그 구원을 향해 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에게 요구되는 정의와 공정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56,3)

 

여기서 이방인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모두 구원되고 다른 민족들이라고 해서 모두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스라엘이라 하더라도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는 사람은 구원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구원되지 못한다면(65,8-16 참조), 이방인이라도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는 사람은 구원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방인”(56,3)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위치에 있는 이들을 지칭합니다. 유다인의 핏줄이 아니면서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이지요. 유배에서 돌아온 이스라엘은 특히 에즈라-느헤미야 시대를 거치면서, 자신들의 민족적·종교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에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방 여인들과 결혼해서 살고 있던 유다인들이 그 여인들을 쫓아내기까지 했지요. 이유는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을 순수하게 보존하지 않는다면 다시 멸망하고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되리라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왕국이 무너지고 유배를 갔다가 50년 만에 돌아왔으니, 한편으로는 약간 국수주의적으로까지 기우는 열성이 일어났던 것도 그들 나름대로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요나서의 주인공 요나가 그러한 태도를 대표합니다. 그는 니네베 사람들의 구원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느님이 니네베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줄을 알았기에(요나 4,2), 하느님의 도구가 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하느님을 피해 도망갔던 요나에게 하느님은, “오른쪽과 왼쪽을 가릴 줄도 모르는 사람이 십이만 명이나 있고, 또 수많은 짐승이 있는 이 커다란 성읍 니네베를 내가 어찌 동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요나 4,11) 하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그들도 구원하고자 하십니다.

 

이사 56장에서도 하느님은 이방인들이 구원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방인은 “주님께서는 나를 반드시 당신 백성에게서 떼어 버리시리라”(56,3) 하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은 그들을 떼어 버리지 않으십니다(느헤 13,3과 대조). 이스라엘인이면서도 전례에 참여할 수 없었던 고자도 마찬가지입니다(신명 23,2 참조). 그들은 후손이 없어도 성전에(56,5 참조) 기념비가 남을 것입니다. 이방인이나 고자라 하더라도, 그들이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이름을 사랑하며 주님의 종이 되려고”(56,6) 한다면, 그들은 주님의 종이 됩니다.

 

주님의 종(들). 우리말에서는 단수와 복수를 굳이 구별해서 쓰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사야서에서 ‘종’과 ‘종들’은 각각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사야 예언서 제2부에는 “주님의 종”이 있습니다(‘주님의 종의 노래’ 참조). 그 종은 죽었습니다(53,8 참조). 하지만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고, 그의 뒤를 이어 ‘종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54,17 참조). 이어서 이사야 예언서 제3부에서는 여러 차례 “주님의 종들”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충실한 백성이고, 구원될 이들이며, 주님의 종의 뒤를 잇는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도 그런 주님의 종들이 됩니다. 그들이 정의와 공정을 실천한다면, 또 주님을 따른다면, 그들은 하느님 백성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거룩한 산 시온으로 모여 와 하느님께 제사를 바칠 것이고, 하느님의 성전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56,7)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도 주님의 백성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유다인이 아니어도, 주님을 섬기고 사랑한다면 하느님은 우리를 당신 집으로 초대해 주십니다. 어느 누구도 하느님께 나를 당신 백성에게서 떼어 버리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누가 하느님의 집에서 우리를 배척하려 할지라도, 그 집의 주인이신 하느님은 흩어 버리는 분이 아니라 사람들을 모아들이는(56,8 참조) 분이십니다.

 

“나는 그들을 나의 거룩한 산으로 인도하고 나에게 기도하는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하리라. …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리리라”(56,7).

 

[성서와 함께, 2017년 9월호(통권 498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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