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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6: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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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1,534 추천수0

[요한 묵시록 바르게 읽기]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 (3)

 

 

사르디스

 

사르디스에는 아르테미스(Artemis)에 봉헌된 신전과 로마식 극장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17년에 발생한 큰 지진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되자, 티베리우스 황제는 5년 동안 세금을 면제해 주면서 도시를 재건했다고 합니다. 26년에 티베리우스 황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셋째 부인인 자신의 어머니를 위한 신전과 원로원을 위한 신전을 세웠다고 합니다.

 

 

사르디스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사르디스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은 ‘깨어 있어라’와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깨어 있어라’는 말은 공관 복음서에서 종말론적 기다림을 나타내기 위해 주로 사용한 표현입니다(마태 24,36 이하; 루카 12,36 이하 참조). ‘회개하라’ 역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에서 선포된 내용과 다르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네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들었는지 되새”기라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표현된 ‘어떻게’는 의미상 ‘무엇’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어떤 가르침을 간직했는지 생각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르디스 신자들에게 약속되는 것은 흰옷을 입고 생명의 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흰옷은 요한 묵시록에서 상징적 의미로 자주 사용됩니다. 그리스도의 흰옷은 승리한 모습을 예시하는데, 이처럼 흰옷을 입게 된다는 약속은 그분의 승리와 영광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의 책은 요한 묵시록에서 중요한 요소로 사용됩니다(13,8; 17,8; 20,12.15; 21,27 참조).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이와 비슷해 보이는 책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탈출 32,32-33 참조). 다니 12장에서도 이러한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종말에 관한 설명에서 “네 백성은,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다니 12,1)는 표현을 찾을 수 있고, 종말에 관한 비밀은 마지막 때까지 봉인되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전합니다(다니 12,9 참조). 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구원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필라델피아는 그리 크지 않은 도시로 현재에도 그 모습이 남아 있습니다(알라 셰히르). 이 도시에는 티베리우스와 칼리쿨라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를 위한 신전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또 제우스와 아르테미스, 그리고 디오니소스에게 예배하기 위한 제단이 있었다고 합니다. 필라델피아는 포도밭으로 둘러싸여 있고 포도주 생산이 주된 산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포도의 수확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디오니소스의 제단이 있었음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필라델피아에 보낸 편지의 “거룩한 이, 진실한 이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3,7)는 이사 22,22의 표현입니다. 여기서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문을 열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의미하고, 그 권한은 구원으로 향하는 문, 다윗의 도성 곧 새 예루살렘을 향한 문을 여닫을 수 있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이 표현은 구원을 새 예루살렘의 환시로 나타내는 묵시 21장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필라델피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강조되는 것은 그들이 보여 준 좋은 모습입니다. 그들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인내로 믿음을 간직한 신앙인이었습니다.

 

필라델피아 신자들에게 약속되는 것은 성전에 머물게 한다는 것입니다. “내 하느님의 이름과 내 하느님의 도성, 곧 하늘에서 내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사람에게 새겨 주겠다”(3,12). 신약성경에서 성전 또는 성전을 이루는 기둥에 대한 비유는 다가올 구원의 시간에 보이는 구원의 모습을 말합니다(1티모 3,15 참조). 성전은 하느님 현존의 상징입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특별히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시에서는 성전이 더는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를 하느님과 어린양이 대신하기 때문입니다. 승리하는 사람이 받는 약속은 곧 구원에 대한 참여입니다.

 

 

라오디케이아

 

라오디케이아에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로가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경제적 발전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지리적 입지 때문에 라오디케이아에 금융업이 발달했다고 전해집니다.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 증인”(3,14)이라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쓰인 하느님에 대한 칭호 “아멘이신 하느님 - 신실하신 하느님”(이사 65,16 참조)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를 통해 요한 묵시록 저자는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그분의 약속은 분명히 실현된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요한 묵시록에서 강조하는 하느님의 성실함은 그분의 계시가 헛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이와 함께 표현된 “창조의 근원”은 요한 묵시록에 자주 등장하는 “처음이며 마침”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칭호와 함께 선재(先在)를 의미합니다. 이미 요한 복음서의 서문(요한 1,1-18 참조)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이 그 내용입니다.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굳은 결단으로 믿음에 대한 열정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3,15)는 것은 믿음을 지니고 살아갈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타협적 자세를 나무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에게 약속되는 것은 어좌에 앉게 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어좌는 요한 묵시록뿐 아니라 복음서에서 다스리는 권한을 상징합니다(마태 19,28; 루카 22,30 참조). 믿음을 열정적으로 지키는 이들은 하느님과 함께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에는 구체적 현실에서 칭찬받고 인정받을 점과 부족한 점이 표현됩니다. 믿음을 지키고 그릇된 가르침을 배격하라는 말씀이 전해집니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믿음을 잃지 않고 간직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구체적 모습이 약속됩니다. 이 약속은 모두 실현될 것입니다. 실현될 모습이 이제 환시를 통해 표현됩니다.

 

*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수학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신약성경을 가르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6월호(통권 471호), 허규 베네딕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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