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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이사야서 해설: 복역 기간이 끝나고(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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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5 조회수2,052 추천수0

[이사야서 해설] “복역 기간이 끝나고”(40,2)

 

 

이사야서 40장은 첫머리에서 “위로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40,1-2)라고 말합니다. ‘아니 그런데, 복역 기간이 끝났다고?’ ‘언제 시작했는데?’ 이것이 이사 40,2을 읽으면서 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제2이사야’라는 인물과 그의 시대

 

여기가 이사야 예언서 제2부로 넘어가는 부분입니다. 흔히 ‘제2이사야’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편의상’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참 곤란합니다. 40장부터 시작되는 이사야 예언서 제2부를 한 사람이 썼다는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40-55장을 보아도, 한 시기에 단번에 작성된 것은 아닌 듯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 저자를 가리켜 ‘제2이사야’라는 말을 사용하겠습니다. 40-50장까지 본문에서 ‘제2이사야’라고 일컬어지는 이가 늘 같은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호칭은 어디까지나 ‘편의상’ 사용하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우리가 이사야 예언서 제2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아니라 작성 연대, 시대적 배경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적 배경이, 39장에 이어지지 않습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대충 읽다 보면 감지하지 못할 수 있지만, 39,8과 40,1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차이가 있습니다. “복역 기간”이 시작되었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이제는 그 기간이 끝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빌론 유배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40장부터 바로 귀환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40장을 읽기 전에 먼저 그 빈틈을 메워 보아야 하겠습니다.

 

 

“바빌론 임금 므로닥 발아단이…”(39,1)

 

이야기는 39장부터 시작됩니다. 이사야 예언서 제1부의 마지막인 이 장면에서는, 히즈키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바빌론 임금 므로닥 발아단이”(39,1) 사절단을 보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히즈키야 시대, 아직은 아시리아가 세력을 떨치고 있고, 바빌론은 이에 대적할 만한 강대국이 아닙니다. 그래도 바빌론에서 사절단이 왔을 때 히즈키야는 그들을 환영하며 자신의 창고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 줍니다. 이사야는 그 말을 듣고 히즈키야에게, 사절단에게 보여 준 모든 것이 바빌론으로 옮겨지리라고 말합니다. 궁궐에 있는 모든 것을 바빌론에게 빼앗기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창고를 보여 준 것이 왜 잘못된 것일까요? 이 문제는 지난달의 주제와 연관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히즈키야는 자신의 재산을 과시하며 바빌론과 동맹을 맺으려 했으리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만큼 능력이 있으니 나와 동맹을 맺는 것이 좋으리라고, 은근히 바빌론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이사야가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아시리아와 이집트에게 의지하는 것을 단죄했던 이사야는 여기서도 히즈키야를 꾸짖습니다. 히즈키야가 인간적 세력인 바빌론에 의지하려 했으니 오히려 모든 것을 바빌론에게 빼앗기고 말리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이야기는, 이사야 예언서 제1부와 제2부를 이어 주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40장부터는 이사야 예언자가 쓴 것이 아니라 후대에 다른 사람들이 쓴 것입니다. 그런데 이 39장에서는, 먼 훗날에 일어나게 될 일들을 이사야가 예고합니다. 유다가 언젠가는 바빌론의 침략으로 멸망하게 될 것을, 사람들이 바빌론으로 끌려가게 될 것을 마치 연속극의 예고편처럼 이 마지막 장면에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후에 이루어지는 역사는 이사야를 통하여 선포하신 하느님 말씀이 실현되는 역사입니다. 히즈키야는 멸망의 선포를 들으면서 겉으로는 “그대가 전한 주님의 말씀은 지당하오”라고 응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평화와 안정이 지속되겠지”라고 생각합니다(39,8). 과연, 히즈키야가 살아있는 동안은 아직 바빌론이 유다를 공격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더 흐른 다음에 기록된 이사야서의 뒷부분을 읽는 독자는 이사야가 히즈키야에게 전했던 말씀이 역사에서 실현되어 가는 것을 봅니다.

 

 

“복역 기간”(40,2)

 

이제 “복역 기간”의 문제로 돌아갑시다. 여기서 말하는 복역 기간은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유배를 가서 지낸 기간입니다. 그 복역 기간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히즈키야가 남왕국 유다 임금으로 있던 때, 먼저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했습니다. 그 후 유다에는 아직 여러 임금이 남아 있었습니다. 열왕기를 읽어 보면, 매우 훌륭한 임금들과 전혀 그렇지 않은 임금들이 히즈키야의 뒤를 잇고 있습니다. 히즈키야는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므나쎄는 다윗 왕조에서 가장 나쁜 평가를 받는 임금입니다. 우상 숭배 때문입니다. 열왕기는, 므나쎄가 너무 잘못했기 때문에 하느님은 이제 유다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므나쎄와 다를 것이 없던 아몬이 짧은 기간 왕위에 있은 다음 요시야가 왕위에 올라 개혁을 하고 아시리아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며 주님께 충실하고자 노력했어도, 유다는 이미 멸망의 길로 들어선 것으로 여겨집니다. 요시야는 아시리아를 도우러 오던 이집트와 전쟁을 하던 중에 세상을 떠납니다. 40세였습니다. 아쉽게도 그렇게 끝났습니다.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즈가 왕위에 올랐다가 이집트에 끌려간 후 다른 임금들은 전체적으로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여호야킴, 여호야킨, 치드키야. 이들은 각각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지만, 왕국은 이미 기울어 있었습니다. 어느새 아시리아가 아닌 바빌론이 패권을 잡았고, 유다의 마지막 임금들은 그러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었습니다. 바빌론은 기원전 597년에 1차 유배로 여호야킨 임금을 비롯한 많은 사람을 바빌론으로 끌고 갔고, 그 후에 치드키야가 바빌론에 저항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다시 침입하여 성전을 불태우고 더 많은 이를 끌고 갑니다. 다윗 왕조도 이 때에 무너집니다. 기원전 587년, 이것이 말하자면 “복역 기간”의 시작입니다. 이사야가 부름 받을 때에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성읍들이 주민 없이 황폐하게 되고 집집마다 사람이 없으며 경작지도 황무지로 황폐해질 때까지”(6,11), “주님이 사람들을 멀리 쫓아내 이 땅에는 황량함이 그득”(6,12)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내용이 이사야서에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사야 예언서 제2부의 관심사는 복역 기간의 시작이 아니라 그 끝입니다.

 

 

“끝나고”(40,2)

 

바빌론에 유배 가 있는 이스라엘에게, 국면이 전환되는 것은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가 등장하면서부터입니다.

 

기원전 8세기 이사야의 시대에 위세를 떨쳤던 아시리아도 기울어 기원전 612년에는 수도 니네베가 무너졌듯이, 그 뒤를 이었던 바빌론도 언제까지나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절정에 이른 다음에는 내려가는 것이지요.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을 함락시켰을 때 이미 바빌론은 그 세력의 절정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네부카드네자르가 세상을 떠난 기원전 562년 이후 바빌론은 자주 임금들이 바뀌는 등 불안정한 시기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기원전 555년 왕위에 오른 바빌론의 마지막 임금 나보니두스는, 기록에 따르면 종교적인 문제에 큰 관심을 갖고 개인적 신심에 몰두했으며 국가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는 마르둑이 아니라 달의 신인 신(Sin)을 섬겼기 때문에, 말하자면 바빌론의 기득권층이었던 마르둑의 사제들과 충돌했습니다.

 

그 사이 성장한 페르시아는 이제 바빌론을 공격합니다.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는 영토를 크게 확장했고, 바빌론의 수도에까지 입성합니다. 그 때에, 나보니두스 임금을 지지하지 않던 마르둑의 사제들은 키루스를 승리자로 환영했습니다. 키루스는 전쟁으로 그 수도를 함락시킨 것이 아니라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도성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자,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불태웠던 바빌론이 이렇게 페르시아에게 멸망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유다인들에게 페르시아는 적군일까요, 아군일까요? 조금은 부적절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유다인들에게 키루스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해방자였습니다. 복역 기간이 끝났다고 말하는 제2이사야는 그 해방의 시대가 밝아옴을 알아봅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등을 썼고, 《약함의 힘》,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하늘의 지혜》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7년 2월호(통권 491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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