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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쪽지 캡슐 작성일2022-08-20 조회수1,275 추천수0 신고

 

아랫글은 2021년 10월 12일  게시판 우리들의 묵상글 150298번  로마서 1장 18절-25절을 토대로 

설명된 글입니다.

성경 말씀에는 천주교, 개신교가 없어요.

공부 차원에서는 간혹 비교할수 있지만 오로지 성경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본 의지를 보셨으면 합니다.

글이 길지만 천천히 음미하면서  보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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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란도란글방/ 하느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커밍아웃 (로마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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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10-12 ㅣNo.150298

  

(공동번역성서 2021. 10. 12.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도란도란글방

 

하느님이 원하시는 성도의 커밍아웃 

   

(로마1,18-25)

18 하느님의 진노가 불의한 행동으로 진리를 가로막는 인간의 온갖 불경과 불의를 치시려고 하늘로부터 나타납니다. 19 사람들이 하느님께 관해서 알 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밝히 보여 주셨기 때문에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20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 21 인간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으로 받들어 섬기거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황해져서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22 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체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습니다. 23 그래서 불멸의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에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새나 짐승이나 뱀 따위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24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 욕정대로 살면서 더러운 짓을 하여 서로의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25 하느님은 사람들의 진리를 거짓과 바꾸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예배하고 섬겼습니다그러나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분은 창조주 이십니다아멘.

 

엄청난 헌신과 열심으로 자신의 실체를 감추어 오던 사도 바울로가그 후에 가서어떻게 커밍아웃을 했죠나는 죄인 중에 죄인입니다.’ 이렇게 커밍아웃했죠그것처럼우리도 결국 그 자리로 밀려 내려가고 있는 거예요오늘 본문이 거기에 관한 겁니다.

대부분의 신학자(神學者)들과 주석가들이 오늘 본문의 내용을자연계시(自然啓示)와 일반계시(一般啓示속에 나타난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한 자들의우매(愚昧)함을 질책(叱責)하는 것으로 해석을 해요.

여러분은 자연(自然)과 우주(宇宙속에서진짜 하느님을 발견하세요솔직히. 그러면 여러분도 마찬가지잖아요이게 그런 걸 질책하는 거라면자연과 우주 속에 하느님이 계시(啓示되어 있는데그걸 못 알아보는 놈들그 놈들은 하느님의 진노 아래에 있는 거야.’ 바로 이 내용이라면모든 주석가가 다 그렇게 주석하고 있잖아요그러면 여러분은 보냐고요진짜전 잘 안 보여요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그렇게 표피적(表皮的)으로만 보게 되면우린 그 속에서, ‘너희들 그러면 다 지옥 간다그러니 조심해!’라는 협박(脅迫)의 메시지만을 받게 되는 거예요그렇게 되면요우리는 곧 자기 방어에 돌입을 하게 되죠. ‘난 그렇지 않아 다행이다.’ 그런데 진짜 현실은 어때요나도 못 보잖아요보는 척하고 있는 거지.

여기에 나열된 죄의 목록이예수를 믿는다는여러분과 정말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입니까저는 아무리 읽어 보아도다 제 얘기인 것 같아서 씁쓸한데요여러분이 로마서가 불신자에 대한 경고가 아니라교회에게 주어진 복음서신임을 잊으면 안 돼요.

 

바울로는 교회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하느님의 진노의 대상들을 꺼내어제시하고 있는 거예요우리 안에 남아 있는내 안에 남아 있는그리고 그걸 올바로 직시한 교회에게, ‘그래서 너희에게 하느님의 ()’가 필요한 거야!’를 주지시키기 위한 거예요. 지금 그 얘기하고 있는 거잖아요하느님의 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그 하느님의 그들을 어떠한 방법으로믿음만을 붙드는 자로, ‘믿음으로 믿음에라고 이야기 했잖아요어떠한 방법으로믿음만을 붙드는 자로만들어 내는 지에 관해서아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따라서 오늘 우리는 본문을 읽으면서내 안에 들어 있는 그것들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지다른 이들을 단죄하고심지어 측은하게 여기는데 오늘 분문을 끌어다 쓰면 안 돼요.

제가 단언(斷言)하건데로마서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의 모든 내용은전부 우리들 겁니다나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바울로는 지금왜 성도는 하느님이 준비하신 하늘의 ()’로만 살아날 수 있는가를설명하고 있는 중이에요. 17절에 그 로마서 대 주제를 설명하고 있단 말이에요그래서 가장 먼저 하느님의 를 오해(誤解)해서불의로 진리를 막는 이들의 실상(實像)묘사하고 있는 거잖아요.

 

바울로가 교회에게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은너희 안에 그런 경향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똑바로 보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지적하는 거예요그래야만 하느님의 ()’만을 보고 의지할 수 있으니까요. 18절의 불의로 진리를 막다에서, ‘막다라는 단어가 카테코인데그 단어는 진리를 덮다덧씌워 억누르다예요아예 원천봉쇄하다가 아녜요.

하느님의 의()우리의 그러한 우매의 껍질에 메스를 대셔서그 껍질을 벗겨 내시는 능력인 거예요거기에 대해서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게본문 19절입니다본문 19절을 보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에게하느님께서 하느님을 알만한 것을 보이셨다’ 그러죠?

 

1,19 사람들(성도)이 하느님께 관해서 알 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밝히 보여 주셨기 때문에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지금 불의로 진리를 막는 이들에 대한 묘사란 말이에요그런데 그들에게 하느님이하느님을 보이셨다 그래요이게 중요한 거예요여러분하느님은하느님을 알만한 것을아무에게나 다 보이시나요아니죠하느님은 하느님을 알만한 것을성도에게만 보이세요그 나머지에게는가린단 말예요.

 

(루가복음 8:10) 10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 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비유로 말하는 것이다.'

 

(이사야 6:9-10) 9 주께서 이르셨다.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일러라. '듣기는 들어라그러나 깨닫지는 말아라보기는 보아라그러나 알지는 말아라.' 10 너는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귀를 어둡게 하며 눈을 뜨지 못하게 하여라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 와서 성해지면 어찌 하겠느냐?'

 

못 알아먹게 비밀(祕密)로 가리신단 말예요 다른 이들에게는하느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만 하느님을 알만한 것을 보이세요.

신학자들이 일반계시니자연계시니 하면서이름을 붙여 놓는 바람에자연에도우주(宇宙)에도 하느님이 계시되어 있다는 게 정설(定說)처럼 되어 버렸는데여러분 계시(啓示)라는 단어 자체가하늘의 백성들에게만 제시되고 감지(感知)되는 거예요. 그 계시라는 단어 자체가 불신자들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 단어란 말이에요물론 자연과 만물에 하느님의 능력(能力)과 신성(神性)이 나타나 있죠하느님이 창조(創造)하신 거니까그러나 그걸 감지할 수 있는 이는 성도(聖徒밖에 없어요.

그런데 본문 19절에서, ‘하느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였다’ 그러잖아요여기에서의 저희는’ 멸망 받아 죽어야 할이미 결정이 난 어떤 무리를 가리킨다고 하기 보다는멸망(滅亡받아 죽어야 할 자들이 갖고 있는 걸여전히 남겨 안고교회 안에서 행하고 있는 성도들을일차적으로 지칭하고 있는 거예요.

19절에 사람들이란 어구에 쓰인 전치사, ‘는 ‘in’이라는 뜻도 갖고 있지만 ‘among,’ ‘with’라는 뜻으로 더 자주 쓰여요그러니까 하느님은 알만한 것이 성도 안에,’ ‘성도 가운데,’ ‘성도에게’ 주어졌다는 거예요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라고 하셨을 때그때 쓰인 단어거든요.

그리고 보이셨다라고 번역이 된, ‘과네로란 단어가과거시제란 말이에요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알만한 게 그들에게 이미 주어졌다 그래요이미 주어졌다그 단어는 명백하게 선언(宣言)하다,’ ‘명백하게 선포(宣布)하다,’ 그래요보이지 않는 하느님을무언가가 보이도록 명백하게 선포를 해버렸다는 뜻이에요보이게그리고 알만한이라고 번역이 된, ‘그노스토스는 잘 알려진이란 뜻의 형용사예요이미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어떤 무리에게 알려졌다라는 거예요.

그들이 누구예요성도(聖徒)란 말입니다성도 이외의 다른 이들에게는해당이 안 되는 일이에요그러면 거기에서 하느님을 알만한 게 뭐겠어요보이지 않는 하느님을보이게알만하게계시한 게 ~ ‘예수지 뭐예요.

 

(요한복음 14:9) 9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들어라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니 무슨 말이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알만한 것어떤 것이 성도들에게 주어졌는데그 알만한 것으로 온 분이 예수란 말입니다이렇게 19절에, ‘하느님을 알만한 것, 18절에, ‘진리정확히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는 거예요그게 무시되고 왜곡(歪曲되는 걸잘못 오해(誤解되는 것을불의에 의해 진리가 막히는 것이라 표현을 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알만한 것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그것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그게 우리 안에 전부 들어 있는 것들이라 말입니다하느님이 그걸 깨는 걸역사(歷史)와 신앙생활(信仰生活)이라 그러는 거예요.

그리고는 20절로 이어지는 거요. 20절 맨 앞 단어가, ‘가르’, ‘왜냐하면이에요왜냐하면하느님을 알만한 것을 받은 자들이불의로 진리를 막게 되면하느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게 되는 이유(理由)가 나오는 거죠?

로마서에는히브리서에도 마찬가지인데, ‘가르’, ‘왜냐하면이란 이 단어가거의 다 생략이 되어 있어요번역가들이 그걸 빼버려서여러분이 성경을 이해하는데 좀 더 불편한데그건 제가 다 찾아서 넣어드릴 거예요잘 들어보세요.

 

1,20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

 

오늘 본문에는특별히 보기 드문 단어들이 많이 나오는데이 20절에는 특히나 많이 나와요이 구절에서 창조물이라고 번역이 된 포이에마라는 단어는여기와 에페소서 2딱 두 번 밖에 안 나와요그리고 영원하신이라고 번역이 된, ‘아이디오스란 단어도이곳과 유다서 1장에서 딱 두 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그리고 특성(신성)이라고 번역이 된, ‘데오이 테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로가 이렇게 특수한 단어들을 어떤 경우에일부러 골라서 성경을 기록할 때에는이 내용이 보편적인 의미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어떤 특수한 의미가 있는 것이니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니주의를 기울여서 해석하라는 의도를 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로가안 쓰는 단어들을 간혹 끌어다가 쓴다는 말이에요그 때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서엑세스(access)를 해야 되는 거예요성경을 연구(硏究)하는 사람들은요.

먼저 영원(永遠)하신 능력(能力)과 신성(神性)’이라는 어구에 쓰인그 영원한이라는 단어 아이디오스유다서 1장 6절과 여기 딱 두 번 쓰인 단어예요이 단어를 서둘러서, ‘이터널(eternal),’이나 에버 래스팅(ever-lasting)’ 등으로 번역하면 안 돼요왜냐하면 성경 전체에 영원이라는 단어가 수백 개가 나오는데그 때 쓰이는 단어는 아이디오스가 아니라, ‘아이오니오스라는 단어예요그런데 사도 바울로가 특별히이곳과 유다서 딱 두 곳에서만 다른 단어를 쓰고 있단 말입니다유다서는 바울로가 쓴 게 아니지만,

 

여기에서 쓰인 아이디오스란 단어는, ‘eternal’(영원)이라는 의미보다는, ‘always’(항상)란 의미가 더 강해요그 의미로 주로 쓰이는 단어예요따라서 본문 20절에영원하신 능력과 특신성이라는 어구는, ‘항상 계신 능력과 신성이라고 번역을 하는 게훨씬 더 적확(的確)한 거죠. 그 항상 계신 능력과 신성이 뭘까요여기서 특성능력(能力)’이라고 번역된, ‘듀나미스와 신성이라고 번역된 데오이 테스가 똑같이 나오는 곳을제가 하나 찾아드릴게요.

 

(베드로후서 1:3) 3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가지신 하느님의 능력으로 우리에게 경건한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그래서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영광과 능력을 누리게 하신 그분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그에게 있는 능력과 영광예수에게 있는 능력과 영광(신성)! 그러니까 능력과 영광은예수 안에 있는 어떤 것그리고 그것으로 성취해 내는 어떤 것을능력과 영광이렇게 이야기를 해요힘과 인성(人性)에 반대되는 신성(神性)이란 뜻이 아니란 말입니다그래서 제가 항상, ‘성경을 국어사전을 펴놓고 보면 안 된다라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럼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항상 계신 능력과 신성을 해석해 보세요항상 계신 능력과 신성은예수를 지칭(指稱)하는 거예요그 예수가 창조물만물(萬物)’에 나타난다그러죠대부분의 신학자들이 여기서 이 만물을, ‘자연(自然)’ 혹은 우주(宇宙)’로 해석을 합니다만여기서 쓰인 창조물이란 단어는보통 천지 만물을 나타내는 단어로 쓰이는, ‘파스와 다른 단어예요여기에 쓰인 포이에마라는 단어는예페소서 2장 10절에 딱 한 번 사도가 더 썼어요거기로 가보면사도가 오늘 본문 20절에서이 단어를 어떤 의미로 썼는지보다 선명(鮮明)해지죠.

 

(에페소서 2:10) 10 우리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곧 하느님께서 미리 마련하신 대로선한 생활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창조하신 작품입니다.

 

여기서 마련하신 대로라고 번역이 된 단어가 포이에마예요그러면 마련하신 대로지금 받고 있는 대명사가 뭐죠우리잖아요그럼 우리는 누구예요교회(敎會)! 성도를 가리키는 거예요따라서 포이에마여기서 지금 교회를 가리키는 거란 말예요. 교회는예수 안에서 선한 일, (선한 일이 무엇이라 했죠?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 .’ 하느님의 구원 사역새 창조 사역! ‘아가도스!’ 그 선한 일즉 예수 믿는 일과예수님이 그러죠?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의 일을 합니까?’ ‘하느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게 하느님의 일이다.’ 그랬잖아요선한 일이란 말예요그게예수 믿는 일과그 새 창조의 일에 쓰시기 위해지어진 존재라는 뜻이에요.

 

여기서 생활 하도록이라고 번역이 된, ‘페리파테오란 단어는, ‘어떤 착한 일을 행하게 하려고이런 뜻이 아니라하느님만을 숭배(崇拜)하는 자로 살다라는 뜻이에요. ‘하느님 절대의존자로 살다라는 뜻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런 뜻이에요교회는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드신 바인데그들의 존재 이유는그들이 예수 안에서새 창조의 일에 쓰임을 받으면서예수만을 믿는 자로 지어져 가는 길에예수 그리스도와 새 창조의 현실이 어떤 건지를 드러내는 자로지어졌다는 거예요.

그 결과그들은 예수 안에서그 과정을 통과하면서예수 안에서, ‘페리파테오’ 하느님만 숭배하는 자로 완성(完成)이 된다는 뜻이에요그래서 그 페리파테오를 목적으로 하여 이들이 지어졌다라고 이야기하는 거란 말입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하게 하려고가 아니란 말이에요. ‘하느님만 숭배하게 하려고,’ 자기 자신이 아니라이 세상의 힘이 아니라하느님만 숭배하게 하려고 지어진 자만드신 바그게 교회란 뜻이에요그게 에페소서 2장 10절의 정확한 해석이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이제 다시 본문 20절로 돌아와서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란 어구를 풀어 보세요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 즉 예수님과 예수님이 하신성취하신 그 사역이그 만드신 창조물포이에마,’ 교회에게 나타나서분명히 알게 된다는 뜻이에요여러분의 인생 속에 예수님의 십자가와 자기부인의 삶이 드러난단 뜻이에요.

그런데 그 결과가 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 이 단어 나풀로게토스단순히 핑계치 못하다란 의미가 아니라방어할 수 없다저지할 수 없다저항할 수 없다방호할 수 없다란 뜻이에요. 이걸 핑계라고 번역해 놓는 바람에그 어구가 마치심판대 앞에서빼도 박도 못하게 된 어떤 자들의저주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처럼 오해(誤解)되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20절을 다시 번역하면 이러해요창세 때에 첫 창조 때부터, (이게 아포크티세우스거든요) 창세 때부터창세로부터바로 창조 때에 첫 창조로부터예요. ‘크티세우스가 첫 창조란 뜻이란 말이에요보이지 않는 하느님이예수 그리스도로능력과 신성, ‘뒤나미스 카이 데이오테스’ 예수 그리스도로그 분의 백성들에게, ‘만물포이에마’, 그 분의 백성들에게분명히 타나나게 되므로그들이 절대그 분의 일을 방어하거나저지하거나방해하거나저항할 수 없다는 말이 되는 거예요. ‘나풀로게토스라는 뜻이 되는 거예요.

왜 이 얘기를 여기다 붙이느냐 하면불의로 의()를 막는 유대주의인본주의가 교회 안에 있는데하느님께서 그들의 삶 속에 예수와 예수의 하신 일을 알게드러냄으로 말미암아그들이 아니구나인간들은 거기에 보탤 수 있는 게 없구나!’라고거기에 저항하거나방해할 수 없는 자로 완료될 것이라는 걸써 놓은 거란 말이에요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거예요오늘날 사람들이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하느님의 작정 속에서창세 전 언약(言約)을 근거로 진행 되어지는 역사는빈틈없이 완벽(完璧)하게 그 시나리오창세 전 그 언약이라는그 시나리오대로 진행된다는 거예요그러니까 방해가 안 되는 거예요저항(抵抗)이 안 돼요그것을 피조물이인간이 어떤 방법으로든 절대로 그 일은 저지하거나변개(變改)시켜 나갈 수 없다는 거란 말입니다그게 핑계치 못 할지니라예요.

보이지 아니하는 하느님의 능력과 신성이교회즉 성도들 안에서직접 일을 해 나가시기 때문에절대로 그 일은 방해되거나저지(沮止)되거나저항될 수 없어요그게 항상 계신 능력과 신성이하느님께서 만드신 교회에게 분명히 보여 나타난다는 뜻이에요그 말은 침 삼킬 동안도 틈을 주지 않고예수와 예수의 하신 일그 분의 십자가가여러분에게 붙어 다닌다는 뜻이에요자기 부인의 삶과 십자가의 삶이여러분의 삶 속에서 재연(再演)되어 나타난다는 뜻이에요그게 창조물에 보여 알게 된다.’는 뜻이에요교회에게 나타나게 된다는 뜻이에요그건 하느님의 열심에서 나오게 되는 일이므로절대 인간이 방해(妨害)하거나저지(沮止)하거나피해 갈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18절부터 20절까지를 연결하여 이해를 하면이러합니다제가 설명을 좀 붙여서 의역을 해 드릴게요불의로 진리를 막는 것진리가 무엇이라 그랬어요구약에서 그림자와 모형으로 예표된 것이신약의 실체로 온 것리얼리티(reality)! 그게 진리라 그랬죠? ‘true thing!' 이게 진리라는 말이에요그 예수와 그 분의 사역을 불의로 막는 건그게 하느님의 진노(震怒)를 받아 멸망(滅亡)하는 건데교회 안에도 그런 경향이 너무 많다, 맞죠우리에게도 그게 있잖아요많다!

그래서 하느님은 교회 안에보이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알만한 것즉 창세 때부터 항상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시던 예수예수를 심으셔서그 예수로 하여금그들의 악을불의로 진리를 막는 악을 부수실 것이다그러므로 그들은 저항하거나방해하거나제지를 하거나 하지 못하고하느님의 능력과 신성에 의해해체(解體)되고부인되며결국 하느님이 정하신 목적지로 끌려가게 될 것이다.

이게 행간(行間)에 들어 있는 메시지란 말이에요이게 18절부터 20절까지의 내용이에요그리고는 다시 불의로 진리를 막는다는 게 무엇인가를 설명하고하느님께서 그 분의 능력과 신성으로당신의 백성들의 삶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멸망의 대상을어떠한 식으로 멸()해 가실 것인지를 설명한단 말이에요.

이렇게 오늘 본문은단순히 인간들의 죄악(罪惡)을 나열(羅列)하는 게 아니라그 속에 하느님의 처방(處方)까지 담고 있는그야말로 복음(福音)의 메시지란 말이에요그래야 복음이죠나열만 하면검사의 논고장이죠그건요따라서 그냥 단순하게,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는이방인과 유대인의 죄를 지적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시면 안 돼요그 속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의()의 행하실 일그걸 함께 볼 수 있어야 돼요그래야 우리에게 복음(福音)이 돼요.

 

분명 1장 18절부터 3장 20절까지의 내용은하느님의 진노(震怒)에 맞아 멸망당해야 할세상의 모든 악의 나열이 맞아요그러나 그러한 죄의 목록의 단순 나열로만 이 단락을 보게 되면그러한 죄의 경향과 성향을 여전히 갖고 있는 우리의 지금 현재의 상태가멸망(滅亡)으로 종결(終結)된다는, ‘희망 없음의 메시지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굳이이걸 그렇게 표피적으로 보면서도, ‘나는 아냐나는 아냐!’ 이렇게 고개를 젓고 있는 거예요. ‘나는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다 여러분의 거지이게!

우리는 그러한 논고 속에서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우리 안에도여전히 그러한 죄의 경향(傾向)과 성향(性向)이 존재하고 있는지그리고 하느님은 그러한 가운데서도어떻게 우리를 완성해 가시는지 까지꺼내 볼 수 있어야 하는 거란 말이에요우리는 그렇게 하느님의 의 행하심에 의해서우리의 실체를 폭로당하고그리고 하느님의 (),’ 살아서 운동력이 있는 그 의()에 의해하느님이 원하시고 정해 놓으신 목적지로 끌려가는 거요우리가 뭘 하는 게 아니라.

계속 오늘 본문을 보죠바울로 사도는 1장 21절부터 23절까지에서다시 한 번 불의로 진리를 막는 행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부연을 해줘요.

 

(로마서 1:21-23) 21 인간은 하느님을 알면서도 하느님으로 받들어 섬기거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황해져서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둠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22 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체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습니다. 23 그래서 불멸의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에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새나 짐승이나 뱀 따위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도 상당히 오역(誤譯)이 되어지고 있는 구절들인데먼저 21절을 보면, ‘하느님을 알면서도라는 어구가 나오죠과거분사거든요과거부터 하느님을 아는 어떤 무리를 말하는 거예요그런데 그렇게 하느님이 당신의 능력과 신성으로 당신을 계시하심으로그 하느님을 감지하게 된 자들이하느님을영광스럽게도 하지 않고하느님께 감사하지도 않더라는 거예요속으로 아이나쁜 놈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 사람이 가짜예요우리가 그렇잖아요이게 딱 우리의 모습이 아녜요?

여러분정말 하느님의 은혜가 눈물 나도록 맨날 감사하세요잊고 살 때가 훨씬 많죠지금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고 계십니까아니잖아요나의 영광을 위해 살고 있잖아요여전히이런 모습이 에페소 교회에도 똑같이 있었어요.

 

(에페소서 4:17-20) 17 그러므로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간곡히 권고합니다이제부터 여러분은 이방인들처럼 살지 마십시오그들은 헛된 생각을 하고 18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지 못할 사람이 되었습니다그것은 그들이 무지하고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입니다. 19 그들은 도덕적인 감각을 잃고 제멋대로 방탕에 빠져서 온갖 더러운 짓을 하고 있습니다. 20 그러나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게 바울로가 이방인의 현실만을 지적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세요지금 에페소 교회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거예요사도는 지금,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않았는데왜 그들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니?’라고 일갈하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도 너희들 절대그러면 안 되는 거야라고 일갈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아직 일어나고 있는 않은 일을 경계의 의미로 제시하고 있는 게 아니라지금 에페소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이방인들의 행세를 예를 들어 지적하고 있는 거란 말입니다그래서 마지막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했잖아?’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렇게 배웠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 똑같은 이야기가 본문 21절에 기록되어 있는 거예요사람들은구원을 얻은 이후에도자기를 창조물만물(萬物)의 척도(尺度)()으로 삼아 살고 싶어 해요그렇게 되면요창조물의 실체! reality가 왜곡(歪曲)이 되어 인식이 되게 되어 있어요원래 창조물의 척도요 근간은 하느님이시거든요그렇게 봐야, ‘야 이게 진짜구나이게 창조물이구나!’라고 알 수 있는데그 축()에다 자신을 끼워 넣으면어그러져서실체를 못 보게 되어 있어요이게 마음이 어두워지고 허망(虛妄)해진다는 거예요.

하느님을 모르는 모든 자연인의 상태가생각이 허망하고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진 상태인데하느님을 알면서도그러한 자리에 앉아 있는 이들이 있다는 거예요아니우리 모두에게 그런 경향이 마쿨라오염의 형태로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다 나만을 위해’ 살잖아요그게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 무리들의 교만이죠? ‘히브리스자기 이탈(離脫)!’ 자기들의 판단을 믿고 싶은 겁니다인간은 하느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거예요선악구조에 의해서선악과를 따먹고 획득한 선악구조에 의해서아무리 생각을 해봐도그건 옳지 않은 것 같아내가 소중하거든요.

그래서 하느님을 안다고 하는 자들도쉽게 자신의 행위를 포기하지 못하는 거예요그리고는 그렇게 사는 게내 행위에 의지하여내가 뭔가 내 구원과이 사회정화 등에 기여하는 걸현명하고지혜롭고정의롭고착하게 사는 것이라고 믿는 거죠그걸 사도바울로가 22절에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스스로 지혜 있다고 하나 어리석은 상태굉장히 깨끗한 것 같고굉장히 무슨 대단한 개혁(改革)들을 이루어 가는 것 같고, ‘저런 건강한 교회가 다 있어!’ 세상 일간지로부터도 칭찬받는예수님은, ‘너희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거라’ 하셨는데세상 일간지들이중들이막 칭찬을 해 줘요.

그런 교회가 다 있다니!’ 심지어 강남에 있는 어떤 큰 절그 절에서 대단한 부흥을 이루었는데절의 주지 스님이 뭐라고 했는가 하면, ‘강남에 있는 어떤 대형교회지금 큰 건물 짓고 있는 대형교회의 그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했더니절이 이렇게 부흥이 되었다고 인터뷰를 했더라고요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다 한 편이 된 거죠.

여러분 그건 성경이 지적하는 것처럼지혜 있다고 하나어리석은 거예요우리는 예수의 은혜하느님의 를 꼭 붙드는 자왜 십자가가 이 세상에 설 수 밖에 없는 가를 깨닫고 가는 거지착한 일을 많이 하고 가는 게 아니라니까요제발 좀 알아먹으세요. 그건 천국 가서 영원토록 할 거예요.

그걸 이 세상에서 몇 개 더 하고 오고덜 하고 오는 걸이걸 카운트해서 벌주고상 주려고 역사를 창조 하셨겠냐고요좀 생각을 하시란 말이에요머리로영원히 할 건데영원토록 할 걸이 역사 속에서 몇 개 더 하고 오고덜 하고 오는 거이걸 카운트해서하느님이 상주고벌주고 하겠냐고요그리스도교를 세상 종교와 똑같이 두고 보니까 그러는 거예요그럼 뭐하려 예수 믿어요절에 가지.

 

많은 이들이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결국은 자기 욕망의 '투사(投射), 프로젝션(projection)!' 그 투사로 제조가 된 엉뚱한 신을 믿어요그걸 우상(偶像)’이라고 그래요신을 믿기는 믿는데자기 욕망(慾望)의 투사로 조작(操作)한 신을 믿는 게, ‘우상 섬기기예요. 그런데 우리 안에그런 성향이 조금도 없냐고요우리도알게 모르게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조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하느님일 거야이래야만 돼!’ 이렇게그게 우상이란 말이에요자기 자신이 신앙생활을 비롯한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거그리고는 그 안에 있는 아담 족 욕망을 투사하여 신을 조작해 내는 거죠.

 

그런 조작된 그리스도교의 중심(中心)은 항상 인간(人間)이에요그래서 그들에게 있어 인간들의 행위는지고(至高)의 가치가 있는 게 되는 거예요내가 중심이니까그들의 행위 또한 대단한 가치가 부여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연히 하느님을 영화롭게도 하지 않고하느님께 감사도 않죠나도 뭔가를 했고하고 있으니까그런데 왜 하느님을 영화롭게 해야 돼요나도 지금 뭔가를 기여하고 있는데그런데 왜 감사해요나도 뭔가 하고 있는데이게 문제인 거예요다른 것 없어요그게 바로 우상 숭배란 말입니다.

 

내 문제 해결해 주는 신내 소원을 들어 주는 신내 병 고쳐주는 신내 자식을 지켜 주는 신이건 인류가 조작해 낸 신입니다심지어 착하게 살면상 주는 신열심히 헌신 봉사하면복 주는 신내가 내 힘을 보태서 나의 구원에 기여하겠다고 나서면기특하다고 머리 쓰다듬어 주는 신이게 다 인류가 조작해 낸 신이라니까요.

인본주의가 조작해 낸 신이란 말입니다그 중심에는 항상 가 있다니까요내 머리 쓰다듬어 주고나에게 상주고내가 거할 천국 만들어 주고. ‘!’ ‘!’ ‘!’란 말입니다그게그게 금송아지라고 그랬잖아요출애굽기에서그래서 바울로가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1,23 그래서 불멸의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에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새나 짐승이나 뱀 따위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여기서 썩지 아니하는이라고 번역이 된 헬라어 압달토스, ‘변하지 않는변개될 수 없는()해질 수 없는이란 뜻이에요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이라는 건하느님의 본질과 내용이가시적으로 드러난 상태를 말하는 거라 그랬죠? ‘독사(doxa)’란 단어 자체가, ‘어떤 존재의 본질이 밖으로 드러난 상태충만하게 가감 없이 드러난 상태를 독사!’ ‘영광이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문맥상여기에서의 하느님의 영광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느님의 영광하느님의 의()! 하느님이 예수를 통해서 하신 일예수이야기하는 거예요. 그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느님의 성품과 능력과 본질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하느님의 능력과 사랑과 은혜이런 하느님의 성품그게 십자가에서 나타났죠그것을 인간들이 변하는썩어지는 어떤 것으로 바꾸어서이것의 가치를 폄훼(貶毁)하는 거예요이게 바로 하느님의 진노 아래에 놓여 있는 거란 말입니다이것이!

인본주의율법주의유대주의성공주의물질주의실용주의다 마찬가지예요다 똑같아요한 범주(範疇안에 다 들어가 있는 거예요그게 자연주의(自然主義)이고요결국 신을 인정하지 않는 거니까.

따라서 23절에하느님의 영광은하느님 홀로예수의 십자가를 통하여 시작하시고 완료하신 언약성취의 현실을가리키는 거란 말이에요.

 

(요한복음 17:4) 4 나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일을 다 하여 세상에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아버지 하느님 영광을 드러내다예요. 독사(doxa)! 영광!’ 똑같은 단어예요어떻게 하심으로 예수에게서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났다고 그래요아버지가 시킨 일을 다 이루어서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었을 때그 뜻이 어떤 이의 삶에서 담겨 나타날 때그게 영광이 되는 거란 말이에요.

 

이렇게 본문 23절에불멸의 하느님의 영광예수 그리스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하느님의 언약성취의 일을 말하는 거예요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성취된 하느님의 일이하느님의 의()잖아요그 썩어지거나변개(變改)하거나()하거나부족(不足)하거나 한 게 아니죠완료(完了)된 거예요그것만으로 충분한 거예요.

 내적(內的치유(治癒)뭐니개소리들 하지 말라고 그러세요그게 십자가가 완료해 놓은 걸왜 다시 무슨 치유니무슨 치유니 하면서십자가를 왜 모독(冒瀆하냐고요그게 다 못 이루어 놓은 게 있어요그런데 복음을 안다고 하는 이들이그런 치유의 현장에 가서또 무슨 치유를 받겠다고 하는 거예요십자가에서 (치유를받으셔야 돼요여러분은요!

사람들이 그러한하느님의 영광(榮光)을 변하기도 하고부족하기도 하며썩어지기도 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거예요그 자체가 완료이며 완전한 것임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거죠그러니 자꾸 인간들의 행위(行爲)뭔가를 보태려고 하는 거예요.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새나 짐승이나 뱀 따위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가 바로 그 내용을 담고 있는 거예요.

원어 성경에 보면, ‘우상(偶像)’이란 단어가 없어요우상이라고 하면보통 에이돌론이거든요여기서 아이돌이 나온 거예요요즘 아이돌 스타많이 하죠우상이에요제가 머리를 길렀다고 아이돌이라 그래서 제가 깜짝 놀랐어요너무 좋아했더니잘못 들었어요. ‘아이 둘이라 그랬대요. (하하하그래서 제가 아이 셋이라 그랬어요. (하하하)

여기에 에이돌론이란 단어가 안 쓰였어요여기에 쓰인 단어는, ‘호모이오마란 단어예요여기서 우상이라고 번역이 된 호모이오마어떤 대상의 대표적 특징을유사하게 흉내를 내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예요그 단어가 쓰인 곳을두 군데 찾아드릴게요.

 

(로마서 8:3) 3 인간의 본성이 약하기 때문에 율법이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룩하셨습니다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어 그 육체를 죽이심으로써 이 세상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여기서 쓰인 모습모양(模樣)’이란 단어가 호모이오마입니다.

 

(필리피서 2:7) 7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 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여기서 쓰인 단어가 똑 같이 호모이오마입니다어떤 대상의 특징을 유사하게 동절성으로 갖고 있는 것그게 호모이오마예요사람들이 썩지 않고 변개되지 않는 하느님의 영광을썩어질 어떤 것들의 특징과 같은 것으로유사한 것으로 오해(誤解)를 한다는 그런 뜻이에요그런데 여기에 사람버러지禽獸그들의 대표적 특징이 뭐죠썩어지고변하고제한적(制限的)이며유한(有限)하다는 거죠결핍(缺乏)이며변개(變改)란 말입니다.

하느님의 영광(榮光)을 그렇게 정의하고 이해해 버리면하느님처럼 되어 버린 이 세상의 아담들이곧바로 어떤 반응을 하겠어요썩어지지 아니할이미 완료 되어 있는 하느님의 그 영광하느님의 일하심예수가 성취해 놓은하느님이 하라고 예수에게 주신 그 일이 십자가에서 성취되었잖아요그 완료된 것이썩어지는 어떤 것으로 그렇게 오해되면인간들이 곧 어떤 반응(反應)을 보이겠느냐고요? ‘내가 도와주어야지.’ 그러죠? ‘내가 도와줘야지.’ 이게 불의(不義)로 의()를 막는 거란 말이에요.

 

그렇게 인간중심의 그리스도교! ‘내가 가치가 있는 존재이고가능한 존재이며능력 있는 존재이고나도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살 수 있다라는요 인간중심의 그리스도교를 우상 섬김이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성경 번역가들이 굳이 여기에다가 우상이라는 단어를 집어넣어서그 내용을 함축(含蓄)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그 단어는 없어요그것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거고 하느님을 알만한 걸 가졌음에도하느님을 오해하는 거란 말이에요거기에 하느님의 진노가 떨어진다 말이에요.

그렇다면세상은그렇게 자기중심적 가치관으로 살다가영원히 하느님의 진노(震怒아래에서 멸망을 받는다고 한다고 해도우리는 그렇게 멸망(滅亡)당하면 안 되잖아요그런데 우리 안에 동일한 자기중심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이 존재하지 않습니까그런데 하느님은한 번 택하신 당신 백성들을 절대 놓지 않으세요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됩니까?

이 역사 속에서하느님의 택한 백성들 속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그 진노의 대상들을부수고 깨야 그 딜레마가 풀릴 것 아닙니까그래야 영원 속에 하느님의 진노에 멸망당하지 않을 것 아녜요?

인간들은 자신의 연약함이 드러나거나 추악함이 폭로가 되면자동적으로 방어기제(防禦機制)를 발동(發動)시켜요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들의 연약함과 더러움을 감추려고 하죠묻어 버리려고 해요그런데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은혜가 절실히 필요하겠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위장(僞裝)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하느님의 은혜와 자비가 필요하겠어요그들의 관심(觀心)은 오로지인간의 체면(體面)과 가치(價値)와 영광(榮光)일 뿐입니다거기에 하느님의 진노(震怒)가 떨어진다 말입니다그렇다면 하느님께서당신 백성들을 그 진노의 불길 아래에서 건져내기 위해선어떤 조치(措置)를 취해야 되겠어요? ‘내가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조작(操作)하고 위장(僞裝)하려고 내어놓는 방어기제를 원천 봉쇄를 해버려야 되겠죠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위장할 수 있는 그 방어막을하느님께서 거두어 가 버리신다는 말이에요.

어떤 방법으로도자기 자신을 위장하지 못하게 만들어요자기 자신에게또 세상에게그래서 결국에는, ‘내가 죄인 중에 죄인이요예수 죽인 자 맞습니다.’라는 이 커밍아웃의 고백을 받아내고야 마는 거예요당신의 백성들에게인간들이 처음 자리를직시(直視)하게 만들어버리시는 거란 말입니다그게 바로 하느님의 의()의 행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의()는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성도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그랬잖아요하느님의 의()아버지의 믿음이즉 언약과 실행과 완료의 일이성도를아버지만 믿는 자로 만들어 내신다는 말이에요하느님이 하신 일이자기 자신과 인간에게 가 있던 그 믿음이아버지에게로만 돌려진다는 거예요인간에게 실망하고나에게 실망하고, ‘내가 붙들 수 있는 건 아버지 밖에 없구나!’ 이리로 밀려 내려간다는 뜻이란 말입니다.

그 일을 하느님의 의()오늘날 무엇으로 작동(作動)하고 있어요하느님이 행하신 하느님의 의()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책이말씀(성경)이잖아요그 말씀이 여러분을 부순다 말입니다.

 

(히브리서 4:12) 12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 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드러내다는 분별(分別)하다구별(區別)해내다란 뜻이에요하느님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영혼과 정신 및 관절과 골수뿐 아니라마음의 생각과 뜻까지도 구별하여, ‘발라낸다는 뜻이에요하느님의 은혜가 가입하지 않았을 때에인간의 처참(悽慘)한 실체를성도 본인에게낱낱이 발라서 다 보여준다는 뜻이에요.

나 자신과인간들과세상의 실체를 낱낱이 포를 떠서마음의 생각과 뜻까지도 포를 떠서그것까지도 죄()라는 걸알려 준다는 뜻이에요말씀이하느님의 의()그 때 하느님의 의()만 의지해야 되겠죠. ‘아이고더러워서 못 먹겠다 이거.’ 이렇게 되는 거란 말입니다.

본문 20절에서하느님의 능력과 신성이 항상 그 만드신 만물에 보인다그랬죠그 능력(能力)과 신성(神性)이 바로 예수님과 예수님께서 하시는 사역이지 않아요자기 부인과 십자가그것이 하느님이 만드신 창조물만드신 바! ‘포이에마!’ 즉 성도에게 늘 붙어 다닌단 말이에요붙어 다니면서그를 부인(否認)시켜 가는 거예요.

그리고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는데 까지()가 쫓아다닌다 말입니다. ‘나 아니구나!’ 그 자리까지요그리하여 성도는 아무리 저항(抵抗)을 하고 부인을 해도하느님의 뜻을 저지(沮止)하거나 변개(變改)시킬 수 없는 거예요그게 핑계치 못 할지니라!’라 그랬잖아요?

아무튼 그렇게하느님의 의()가 성도의 삶에 가입을 하게 되면성도 안에서자동적으로 실행이 되는 인간 자기방어기제들이폭격을 당하게 되고요성도는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인지하고 인정하게 돼요그리고 거기서 하느님 앞에 항복하는 자기부인의 삶이나오게 되는 거예요그래서 사도 바울로가 자신을, ‘죄인 중에 죄인이라고 정의를 내린 거예요. ‘난 안되네요내가 예수 죽인 자 맞네요.’ 이렇게!

그동안 자기가 기특하다고 생각했던자신의 모든 행위가율법이 부정되면서다 쓰레기 됐잖아요율법(律法)너희들에게 지키라고 준 게 아니라예수의 필연성(必然性)너희들에게 깨닫게 해 주기 위한몽학선생(蒙學先生)이었다고 그러잖아요, 학교까지 데려다 주는 선생이 몽학선생이에요.

왜 너희들에게 예수가 필요한 지 가르쳐 주는 것그게 절기예요그런데 왜 오늘날 교회가 또다시 절기들을 만들어요마틴 루터존 칼빈이 목숨 걸고 없애 버린 사순절을교회가 왜 다시 만들었느냐고요예수님이 금요일에 돌아가신 것 맞아요성금요일은 무슨 말이에요도대체어느 달력이에요유대력이에요양력이에요그렇게 무엇을 정해서그것 하나 하고나머지는 놀겠다는 심보예요.

자기 안의 구약이 ‘,예수님의 다 이루심’ 안에서완전히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어 버린 것을 안바울로가, ‘내가 죄인 중에 죄인 맞습니다.’ 고백(告白)한 거예요내가 부인되고 나니까, ‘라는 존재가 한 행위가 다 쓰레기가 된 거잖아요그 때 그 사람이 붙들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하느님이 준비하신 그 의()! 그것도 없으면 먼지니까그거 붙들어야죠그걸 그리스도교라 그래요어줍잖은 다른 종교와 섞지 마세요그리스도교를그게 성도가 이 세상에서 하고 가야 할 유일한 일예요.

 

예수님이하느님의 일이뭐라고요? 하느님이 보내신 자 예수를 믿는 것!’ 그것 말고또 다른 일예수님이 말하신 것 있으면말 좀 해 주세요그것만 이라 그랬어요하느님의 일성도가 해야 하는 하느님의 일예수만 믿는 거!

너 믿는 것세상의 힘 믿던 것다 하느님께 폭격당하고예수만 믿는 게하느님의 일이란 말이에요그 길로 행하는모든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해서 하느님의 일!’이에요.

본문 24절은그렇게 썩어지지 않는 하느님의 영광을 인간이 도와주어야만 하는부족하고 유동적이며변질 가능한피조물의 것으로 오해하는 자들을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다루시는 지를 기록(記錄)하고 있어요.

 

(로마1,24-25) 24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 욕정대로 살면서 더러운 짓을 하여 서로의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25 하느님은 사람들의 진리를 거짓과 바꾸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예배하고 섬겼습니다그러나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분은 창조주 이십니다아멘.

 

만일 이 구절을 동성애(同性愛)를 설명하는 구절로 오해(誤解)를 하는데전혀 아녜요여기서 욕정이라고 번역이 된, ‘에피뚜미아는 육체적 욕망이나그 중에서도 성적 욕망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녜요그냥 디자이어(desire)’, 보편적 ‘desire’입니다그리고 마음이라고 번역이 된 톤 카르디안도 생각하는 자리란 말이에요.

그러니까마음의 정욕이라는 건인간이 자기 소견(所見)에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그대로 하게 놔 두신다는 뜻입니다불타는 정욕(情慾)어쩔 줄 모르는 욕정(慾情)그냥 발휘하라고 방치(放置)했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그들의 디자이어(desire), 사람들이 선악과 먹고 선악 판단을 자기들이 하여왕이 없으므로 자기들이 소견대로 행하는 이스라엘의 그런 행사대로 놔두었다는 거예요. 하느님이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자들을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하느님이이미 천상에 완료되어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에게그걸 경험하도록하느님의 은혜가 가입하지 않으면피조물은 어떤 존재인지를경험하도록 놔두었다는 뜻이에요이렇게!

거기에는 하느님의 의지(意志)’가 개입(介入)되어 있어요여기에 내 버려두셨다라는 단어는, ‘방치(放置)’라는 의미가 아녜요. ‘방치하셨다가 아니라, ‘핸드 오버(hand over)’란 뜻이에요. ‘파라디도미라는 단어는! ‘넘겨줬다는 뜻이에요하느님이요하느님이 예수님을 세상에게 넘겨줬다아들을 넘겨줬다그 단어가 똑같은 단어예요하느님의 의지가 들어가 있는 단어라니까요.

 

우리는 하느님의 의지에 의해이 역사 속에 내려온 거예요그것 경험하라고그리고는 하느님께서 천상에 완료해 놓은하느님의 힘으로만 완료해 놓은그 나라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거기서 절대 담장 밖으로발 한 짝도 안 내놓은 자가 되라고이 역사 속에 보낸 거라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착한 일 많이 하고여기를 개발하여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서여기서 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그거 배우고 오라는데뭐 윤리 실천을 하여그리스도교 윤리가 뭡니까하느님이 그것 실천하라고 했나요오히려 그런 일들로, ‘하느님의 의()’를 막는 거란 말입니다귀 있는 이만 들으세요제발!

 

24절에는요, ‘서로라는 단어가 없어요. ‘서로 욕()되게 했다.’ 그러니까 그냥 떠오르는 생각들이 전부 지저분한 것들이니까이게 동성애다. ‘서로라는 단어가 없어요. ‘욕되게 하다라고 번역이 된그 아티마조, ‘부끄럽게 하다부끄럽게 대하다라는 뜻이에요그러니까 24절을 보다 원문에 맞게 번역을 하면,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저희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하도록 더러움에 넘겨주셔서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부끄럽게 하셨다라는 뜻이에요.

 

난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성도를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desire에 그냥 맡겨 버렸더니성도가 깨닫더라는 거예요. ‘나는 부끄러운 자구나죄인 중에 죄인 맞구나’ 그걸 동성애라고 어쩌구 저쩌구 해석을 해 놓아서하느님이유독 그것만 미워해서 그랬겠어요그러면 여기에다 다른 죄도 다 적지왜 굳이 그것만.

그러니까 동성애를 합법적으로 인정해야 된다 해요여러분 그건요정말 하느님 앞에서패역(悖逆)한 짓이에요우리의 죄를 법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 아녜요그건 안 되는 거예요그러나 그것 하나만 갖고그걸 단죄하므로 말미암아나의 가치와 의로움을 챙기려 하지 말라는 뜻이에요법으로 그걸 왜 정해 줘야 해요살인하는 것 법으로 정해 주어야 돼요그러면거짓말하는 것 법으로 법제화해야 합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은 자들을하느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만드셨다는 말이 아니라이미 천상(天上)에 완료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에게완료 이전의 불완전의 상태를 경험하도록 넘겨주셨다는 그런 뜻이에요그게 역사잖아요거기에서 하느님의 백성들은하느님의 은혜가 가입하기 이전에자신들의 처참한 처음자리를 보게 되는 게고그 자리를 벗어나고자 분투를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불가능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하느님의 요구 수준이 점점 말씀 속에서 확고하게 드러나니까아무리 노력해도나는 그 수준에 안 된다는 것 알아요그 모습을 보면서하느님의 은혜와 자비와 능력만을간절히 열망하는 자가 되는 거예요그렇다고 분투가 없어진다는 말이 아녜요. ‘그냥보고서 알면 됐지 뭐.’ 이건 영지주의예요이게 이단(異端)입니다여러분제 설교를 듣고,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어!’ 이 사람들이 영지 주의자들이에요속지 마세요분투가 나와요분투해서 완료지점으로 가란 말이 아녜요아파하면서고민하면서예수께로 가란 뜻이에요그런데 분투가 안 나온다고요천만의 말씀우울증도 걸리고정신병도 걸리고 그러는 거예요.

마틴 루터신경쇠약 환자였어요이불 속에서 검은 개 보고장롱 속에서 눈물 흘리는 여자애 보고이런 거 정신병이에요마틴 루터예수 믿은 사람이 그런 정신병 걸리면 돼요사람들이 정신병 걸리면전부 귀신들렸다 하는데천만의 말씀입니다여러분이 세상에서 맨 정신으로 사는 게 정신병자입니다. (하하하하)

이 실체를 보고도아무런 이상함을 못 느끼고그냥 재미나게 사는 게 정신병이에요여러분의 삶 속에서는반드시 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분투(奮鬪)가 있어야 돼요. 성공(成功)과 실패(失敗)는 차후의 문제예요여호수아서 23장 11절 이하를 보면하느님께서 가나안을 다 쫓아내지 않는다그러죠판관기에서도 마찬가지예요그런데 왜 안 쫓아낸다고 그래요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되게 하기 위해서!

하느님이 우리를 이 역사 속에 보내셔서그러한 것들이 우리 안에서 발견될 때마다우리가 얼마나 고통스러울 걸 아세요그런데 그걸 경험(經驗)하라고 보내는 거예요그래서 놔두시는 거예요그래서 그걸 감지한 이들이성도가, ‘도대체 저들과 함께 못 살겠다!’고 부르짖게 되죠이 부르짖음을 분투(奮鬪)라 그래요.

부르짖어서성취해 내는 걸 분투라 하지 않고그렇게 부르짖는 것! ‘안 돼여기서 나가야 돼저들과 저렇게 함께 한 가치관한 세계관으로 이렇게 살 수는 없어!’ 이걸 분투라 한다니까요인본주의자들은 절대로 인간을 부끄러운 존재로 인정하지 않습니다선악과를 따먹고하느님처럼 된 인간들이 왜 부끄럽겠어요자랑스럽죠그런데 하느님께서 모종의 조치를 취하시므로그들이 부끄러운 존재라는 걸 자인(自認)하게 만든다는 거예요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왜 당신을 알고 있는그러나 오해하고 있는 이들을 부끄럽게 만드시는가그게 25절입니다여기까지 하고 마칠게요.

 

25 하느님은 사람들의 진리를 거짓과 바꾸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예배하고 섬겼습니다그러나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분은 창조주 이십니다아멘.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 것이거 예수죠예수와 예수가 하신 일진리를 거짓 것즉 엉뚱한 것으로 바꾸어창조주 하느님의 영광보다 인간들의 행위나 세상 힘의 가치를 더욱 의지하는당신 백성들 속의 악()을 제해 버리기 위해서부끄럽게 만드는 거다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그게 25절이에요.

하느님은 당신 백성들의 올바른 복음 이해를 위해서당신의 자비와 은혜를 드러내시기 위해서당신 백성들을()에게 내어 주시는 거예요역사 속에 이렇게 던져 놓으시는 거란 말입니다하느님은 당신의 은혜와 자비영광과 의()를 드러내시기 위해서가장 먼저 세상에게자기 아들을 넘겨주셨잖아요똑같은 단어 파라디도미

 

(로마서 8:32) 32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hand over', '파라디도미.’) 하느님께 그 아들과 함께 무엇이든지 다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의 아들 예수는하느님이직접 악에게 넘겨주신 거예요예수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냈다고 그랬어요하느님의 능력과성품과자비사랑은혜를 드러내기 위해서예수가 세상에 넘겨진 거잖아요바로 그러한 하느님의 하실 일하느님이 누구신가를 드러내기 위해여러분이 세상에게 또 넘겨져서, ‘저런 악당들도하느님의 은혜가 가입하니까구원받고 살아나는구나!’ 악당처럼 살라는 게 아니라여러분 자신이 성령 받은 자라면여러분 자신 안에서 바로 그러한 자각(自覺)이 일어난단 말이에요.

하느님의 백성은하느님의 은혜와 자비를 드러내고오직 하느님의 ()’에 의해서산자가 되기 위해서악에게 잠시 넘겨지는 거예요거기에서인간의 육적자아가 죽고하느님의 의에 의해서새롭게 창조되는 하느님 나라의 아들들이살아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 바울로가 거기까지 이야기한 후에갑자기 찬송(讚頌)을 하는 거요여러분이 이런 대목을 읽으면서이런 부분이 궁금하셨어야 돼요다른 거엉뚱한 거질문 좀 하지 마세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서로 욕되게 하려고 세상에게 내어줬어’ 이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하느님 찬양하고 찬송한단 말입니다이게 어떻게 이어지냐고요그리고는 아멘으로 확인도장까지 찍어요그렇게 해야 우리가 살아난다는 걸사도 바울로가 알고 쓰는 거잖아요쓰다 보니까 갑자기 격해진 거예요내가 바로 그렇게 해서 살아난 자라는 걸사도 바울로가 찬송으로 한 번 여기서 보여주는 거예요우리에게다시 한 번 본문 24절과 25절을 보죠.

 

(로마1,24-25) 24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 욕정대로 살면서 더러운 짓을 하여 서로의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25 하느님은 사람들의 진리를 거짓과 바꾸고 창조주 대신에 피조물을 예배하고 섬겼습니다그러나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분은 창조주 이십니다아멘. (이 안에 복음이 들어 있다는 뜻이에요.)

 

여기와 똑같은 이야기가 로마서 11장 말미에 나와요거기에서도 사도 바울로가 찬송합니다.

 

(로마서 11:32-36) 32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불순종에 사로잡힌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그러나 결국은 그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33 하느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은 심오합니다누가 그분의 판단을 헤아릴 수 있으며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34 '주님의 생각을 잘 안 사람이 누구였습니까주님의 의논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35 누가 먼저 무엇을 드렸기에 주님의 답례를 바라겠습니까? 36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위하여 있습니다영원토록 영광을 그분께 드립니다아멘.

 

보세요지금 우리가 로마서 서두에서 읽었던 이 모든 죄의 목록이 다 내 건데그런데 거기에 하느님의 자비가 부어져서우리가 그러한 검사의 논고장을 읽으면서도이렇게 편안하게, ‘그런데예수님이 다 가져가셨다니이거 어떻게 하냐고맙다감사하다!’ 이러고 앉아 있는 것 자체가이게 지금 찬송할 일이죠이것이 그리스도교란 말입니다이게 복음이란 말이에요.

왜 꼭 그러한 방법을 하느님이 쓰셔야 하는지우리는 몰라요그러나 섣불리 인간들의 철학과 지식지혜이런 것으로 하느님의 모사(謀士)가 되려고 하지 마세요. ‘하느님은 그렇게 일하시면 안 되잖아요?’ 하느님을 가르치려 하지 말란 말이에요.

 

우리가 확실하게 알아둘 것이 있어요.

하느님은당신의 백성들이 역사 속에서사건화 되어 밖으로 발생되는 몇 가지 종류의 죄들을얼마나 많이 짓고혹은 얼마나 줄여 내는 가에 일차적으로 관심이 없으세요죄의 정의(定義)부터 모르는데요온 세상은하느님은 거짓말도 시켜요나라도 팔아먹게 한다니까요또 짐승까지도 다 죽이게 해요집단 학살(虐殺)을 명령하신다니까요.

그럼 하느님이 우리에게 죄를 지으라고 명령하신 거예요보세요죄의 정의조차도 제대로 못 내려요이 세상은그런 사건화 되어 밖으로 나타난그런 율법에 의해사회법도덕과 윤리에 의해 규정된그런 몇 가지 죄덜 짓고 더 짓고 하는 것에 하느님은 일차적 관심이 없어요.

하느님은 오히려 인간들 스스로, ‘그러한 죄의 세목(細目)들을줄여 갈 수 있다라고 하는 거기에 진노(震怒)하세요그게 여러분의 의지와 노력으로 줄어진다고생각하는 것 자체가하느님의 (),’ 썩지 않은 하느님의 ()’를 썩어질 피조물의 것으로 바꾸는 거예요그게다른 게 아니라자기의 행위를 조금이라도 보탠 사람들은 절대로 하느님만을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어요.

그런데 피조물은하느님 절대의존적 존재가 되지 못하면존재일 수조차 없어요그게 피조물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예요그래서 피조물(被造物)이에요그런데도 자신들의 가능성과 능력과 가치에 근거한 행위를 앞세워서하느님의 ()’를 마치 부족하거나 변개(變改)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건피조물의 자기자리 이탈(離脫)’인 것이며, 하느님은 그러한 걸 절대로 간과(看過)하지 않으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하느님은 당신 백성들을이 역사 속을 내 몰아서더러움에 넘겨주시는 거예요그리고는 당신 백성들이 그 역사 속에서자신들의 실체를 올바로 자각하게 하시고결국에는 하느님의 ()’만을오롯하게 붙드는 자로만들어 내시는 겁니다그렇게 자신은 불순종(不順從)에 갇혀 있는 이라는 걸 자각하고하느님의 의()만이 나의 살 길임을 알게 된 자에게서순종(順從)의 몸부림이 나오게 되는 거예요그게 지향성(指向性)이라는 거예요.

 

성도는 그러한 불순종의 삶이 얼마나 부끄러운 삶인 지를 처절하게 경험하게 돼요그 안에 성령이 들어가 계시거든요그리고 자신의 힘으로는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인지하게 돼요그때 하느님 앞에 그분의 도우심과 자비와 은혜를 구하게 되는데그 상태를 순종(順從)’이라 그래요.

내가 뭘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당신이 시키시는 걸 해 낼 게요가 아니라, ‘하느님저는 하느님 절대의존자로 살아야 비로소 존재이고그때 가치 있는 자네요!’하고 항복(降伏)하는 걸그걸 순종(順從)이라 합니다똑바로 정의하세요그게 하느님 절대의존자예요그래서 하느님은 세상을 가리켜, ‘불순종의 아들들이라고 하는 겁니다.

세상에서성경에 나오는 그러한구체적인 도덕과 윤리를행하면서 살려고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아요대표적인 사람이 간디였잖아요그런데 왜 분순종의 아들이라 그래요그 사람을그건 순종이 아니란 뜻이에요그들은 끝까지 자기들의 힘으로 순종을 해 보겠다고 하는인본주의자들이에요그걸 불순종이라 그래요그건 어떻게 보면 굉장히 기특한 발상인 것 같죠그래서 자연인들은 절대로죄를불순종의 상태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요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하느님의 백성들은자신들의 그 불순종의 상태가얼마나 더럽고 부끄러운 상태인 걸 절절하게 깨닫게 됩니다그걸 성도의 고난(苦難)’이란 그래요아파요그러나 그러한 과정 속에서 점점 더 하느님만을 의지하게 되며하느님 절대의존자로서의 삶을 희구(希求)하게 되는 게성도의 인생(人生)인 거예요.

하느님은 반드시이 역사와 인생 속에서성도의 커밍아웃을 받아내시는 분이에요나중에 인(맞아요. ‘내가 예수 죽인 자 맞습니다.’ 부지중(不知中), ‘아니 내가 뭐 그렇게 큰 죄인(罪人)이라고 저렇게 호들갑이야?’ 이 사람은 큰일 날 사람이에요그들에게도 하느님의 은혜가 임()해서자신들의 실체가밝히 보이게 되기를그야말로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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