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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 인물 이야기: 요나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16 조회수1,215 추천수0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요나 (1)

 

 

이제부터 예언자 가운데 한 인물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는 가장 유명한 성경 인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나는 초대 교회 신자들의 모임 장소였던 로마 지하 무덤 카타콤바의 벽화에 예수님 다음으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며, 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문학에도 영향을 미쳐 모비 딕, 피노키오 등의 탄생에도 이바지했습니다. 요나의 인기는 매우 오래된 것이며 그의 매력은 종교의 영역을 넘어서까지 발산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외에도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요나 예언자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가 더 있습니다. 첫째는 대부분의 예언서가 예언자 본인이 아니라 그가 선포한 메시지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요나서는 요나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요나가 너무도 특이한 예언자이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동방교회에서는 성인으로까지 공경받는 예언자입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요나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적극적으로 거부한 불경한 예언자입니다. 그리고 대도시의 모든 사람뿐 아니라 짐승까지 회개시킨 유일한 예언자임에도 자기가 이룬 그 경이로운 업적을 두고 기뻐하는 대신 토라진 희한한 예언자입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죄악으로 가득한 도시 니네베에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언자 요나는 자신의 사명을 거부합니다. 모세나 예레미야처럼 무거운 사명을 제대로 수행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일까요?(탈출 4,10; 예레 1,6) 혹은 니네베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그들의 큰 죄악을 지적하는 말을 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니네베 사람들에게 거부당할 위험이 있는 하느님의 영예를 지키고자 했을까요?

 

요나가 하느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진짜 이유는 이야기의 마지막에 가서야 밝혀집니다.

 

어쨌든 불순종하는 예언자의 모습은 참으로 당혹스럽습니다.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분하는 기준 가운데 하나가 ‘하기 싫은 일을 하느냐’이기 때문입니다. [2023년 4월 16일(가해)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요나 (2)

 

 

요나는 하느님을 피해 도망을 칩니다. 목적지는 고대 유다인들에게 세상의 끝으로 여겨지던 타르시스입니다. 요나의 이 행위는 각자 고유한 영역이 있던 이방의 신들처럼 하느님도 이스라엘에만 머무신다는 생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온 세상의 주님이신 하느님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죠. 요나가 이스라엘 땅을 벗어나 배를 타고 바다로 나왔지만, 하느님께서는 거기도 계십니다.

 

하느님은 폭풍을 보내십니다. 그리하여 요나가 탄 배는 전복될 위험에 처합니다. 이 위기의 순간에 보인 요나의 모습은 얼핏 보면 영웅적으로 보입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시오. 그러면 바다가 잔잔해질 것이오. 이 큰 폭풍이 당신들에게 들이닥친 것이 나 때문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 (요나 1,12) 요나가 죄 없는 선원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사실 요나의 진정한 목적은 이방인 선원들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요나가 줄곧 견지하는 이방인들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헛된 우상들을 섬기는 자들은 신의를 저버립니다.” (요나 2,9). 요나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한 어디에서도 하느님을 피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감에 자살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원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요나 1,6), 하느님께 기도하는 대신 차라리 바닷물 속에 던져지기를 원한 것입니다.

 

비록 요나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지만, 막상 죽음이 실제로 닥쳐오기 시작하자 삶에 대한 열망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제가 곤궁 속에서 주님을 불렀더니 주님께서 저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요나 2,3)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요나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구렁에서 제 생명을 건져 올리셨습니다.”(요나 2,7)

 

하느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시켜 물속에서 익사해가던 요나를 삼키게 하십니다. 오랫동안 많은 이가 이 물고기를 고래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야포의 광장에 가면 고래 형상의 분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물고기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한 유다 전승은 하느님께서 먼 훗날 요나를 구하기 위해 이미 창조 6일째에 창조하신 특별한 물고기라고 합니다. [2023년 4월 23일(가해) 부활 제3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함신부가 들려주는 성경 인물 이야기] 요나 (3)

 

 

성경의 기록에 따르면, 요나를 삼킨 물고기는 한 마리가 아닙니다. 2장 1절의 물고기는 수컷입니다. 2절의 물고기는 암컷이고, 3절의 물고기는 다시 수컷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히브리어 단어의 남성형과 여성형이 번갈아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합리적 설명은 참 어려운데요, 랍비들의 흥미로운 해석 하나를 소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처음에 수컷 물고기를 보내셨다. 그런데 이 물고기의 배 속은 넓고 안락하여 요나는 마치 잠수함을 타고 해저 여행을 하는 것처럼 즐겼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365,000개의 알을 품은 암컷 물고기를 보내셨다. 비좁고 악취가 나는 이 물고기 배에 들어가 고통을 겪은 요나는 그제야 회개의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다시 수컷 물고기를 보내주셨다.

 

요나는 물고기의 배 속에서 하느님께 회개와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나와 공감할 수 있습니다. 요나는 하느님께 때로는 반항하지만 회개하여 다시 그분을 찾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회개하는 죄인인 우리와 닮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듯이, 완전한 회개는 단번에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 사흘 밤낮을 머뭅니다. 고대 근동인들은 죽음을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의 여행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 여행은 사흘 동안 지속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사람의 심장이 멎는 순간 즉시 죽음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흘이 지나야 완전한 죽음을 맞이한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는 자신이 ‘저승의 배’(요나 2,3) 속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 맥락에서 요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요나의 이 신비로운 체험에 비유하십니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마태 12,40)

 

물고기 배에서 나온 요나는 하느님께서 주신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니네베로 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요나의 회개가 아직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도시입니다(요나 3,3). 하지만 요나는 하룻길만 걸은 뒤 이렇게 한 번만 외칩니다: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네베는 무너진다!” (요나 3,4) 요나는 하느님의 명을 따르기는 하지만, 아주 소극적으로 실행하고 있습니다. [2023년 4월 30일(가해) 부활 제4주일(성소 주일) 가톨릭안동 3면, 함원식 이사야 신부(갈전마티아 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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