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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로마서 이야기: 로마서는 신학문서라기보다 사목편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14 조회수3,599 추천수1

레지나의 로마서 이야기 - 로마서는 신학문서라기보다 사목편지



로마서를 어떻게 읽을까?

로마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이탈리아의 바오로 대가 로마노 펜나 신부님께서 로마서 강의에서 하신 말씀을 떠올립니다. “로마서를 읽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두 가지 권고를 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이 서간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인내를 가지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용기를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내와 용기는 바오로 서간 전체를 읽을 때 필요하지만 특히 로마서를 읽을 때 지녀야 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로마서가 오늘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서간이기는 하지만 인내한 만큼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에서는 특히 성경에 자주 나오는 ‘복음’의 의미에 대한 가장 명확한 설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로마서를 같이 읽어가면서 자주 말하는 ‘복음’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한다면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확실한 길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이야기 첫 주제는 로마서를 읽는 데 필요한 배경과 구조입니다.


어떤 상황에서 로마서를 썼는가?

로마서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양 철학에 미친 영향에 못지않게 교회 역사에서 그리스도교 신학과 영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마서를 정말 진지하게 읽고 많은 사람들이 삶을 바꾸었지요! 말씀의 힘이 같은 사람으로 남아있을 수 없게 그들을 뒤흔든 것이지요. 대표적인 인물이 아우구스티노와 루터입니다. 로마서가 역사 안에서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한 서간이라면 이 서간을 쓴 바오로 자신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서간이었습니다. 사실 바오로는 자기 사도생활에서 중요하고 미묘한 순간에, 인생에서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하는 시기에 로마서를 썼습니다.

외적으로 내적으로 바오로는 생애 전환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먼저 공동체와 관련된 외적 상황을 보면 바오로는 세 번째 선교 여행을 마칠 무렵에 코린토에 머물고 있었는데 아마도 기원후 54년 말이나 55년 초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지 20여 년이 지났고, 바오로는 이미 몇 통의 서간을 쓴 상태입니다(테살로니카 전서, 코린토 전,후서, 필리피서, 필레몬서, 갈라티아서). 바오로는 특히 갈라티아 지역 교회에서 매우 힘든 체험을 한 후였습니다. 유다계 그리스도교 설교자들이 공동체에 들어와서 바오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전한 복음과 아주 다른 복음, 바오로가 설교한 것과 반대되는 복음을 전하면서 공동체를 뒤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은 율법 없이 믿음으로 하느님 자녀가 된다고 한 바오로 복음의 본질을 왜곡했습니다. 바오로는 갈라티아서에서 논쟁하는 어조로 자신이 전한 ‘복음의 진리’(갈라 2,14)를 변호합니다. 로마서에는 자신이 창설하지 않은 로마 교회에 차분한 어조로 같은 주제를 더욱 체계적으로 다룹니다.

공동체와 관련된 외적인 문제 외에 바오로는 당시에 자신의 삶과 관련된 내적 도전을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다마스쿠스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뒤로 바오로는 넒은 지역을 여행하면서 이방인의 사도로 일하면서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공동체들을 창립했습니다. 이제 바오로는 지금까지 해온 자신의 광범위한 선교 활동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나는 예루살렘에서 일리리쿰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였습니다.”(15,19) 남이 닦아 놓은 기초 위에서는 선교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가졌던 바오로는 이곳에서는 더 이상 일할 곳이 없다고 여기고 새로운 선교 계획을 세우는데 스페인 선교입니다. 지중해 지역의 서쪽 끝인 스페인으로 가기 전에 바오로는 이방인계 그리스도인들의 모금을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한 이들에게 전하고 로마를 가고자 합니다(참조. 15,23-28).

그러므로 50년대 중반경 바오로가 로마서를 쓸 때 그는 아직 개인적으로 로마를 방문하지 않은 상태였고 로마 교회는 아직도 바오로와 구체적인 접촉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가 로마 신자들에 대한 소식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참조. 로마 1,8; 16,19) 어떤 로마 신자들과 접촉하기도 했다는 단서들을 서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서간 마지막 장인 16장에서 스물네 명이나 되는 로마 신자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각자에게 안부를 전하는데(참조. 로마 16,3-15) 다른 서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긴 명단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오로가 임박한 예루살렘 여행을 앞두고, 기도로 지원해 달라는 부탁을 한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신변을 위협하는 상황이 일어날 것임을 예견하기 때문입니다(참조. 15,30-32).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바오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체포되고 맙니다(참조. 사도 21,17-39).

로마 교회 편에서 바오로의 로마 방문을 갈망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제국의 수도 로마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바오로에 대해서 사람들이 하는 말들을 들었을 뿐 아니라, 바오로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 곧 인간이 자기 힘으로 하는 윤리적 행위보다 하느님의 은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바오로의 말을 와전시키면서 바오로를 비방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참조. 로마 3,8). 신자들에게 배운 가르침을 거슬러 분열을 자극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참조. 로마 16,17-19). 바오로가 성령 안에서 깊은 성찰을 통해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의미를 정리한 이 심오한 서간은 로마 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말로만 듣던 바오로를 더 잘 알게 하고 신뢰를 갖게 하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로마 공동체는?

바오로가 이 서간을 쓰기 전에 로마에는 이미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존재했습니다(참조. 로마 1,8; 15,23; 사도 28,15). 로마에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탈리아의 뽀주올리에서 로마로 통하는 고대 상업 도로를 통하여 로마에 들어온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최초의 확실한 근거지를 많은 회당에서 찾았을 것입니다. 초세기에 로마 유다 공동체는 아주 규모가 컸는데 대략 20개에서 50개 정도의 회당이 로마에 있었으리라 추정합니다. 40년대 말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때문에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들 사이에 많은 소요가 일어나자 로마 권력층은 이 소요에 책임이 있다고 여긴 유다인 대표자들을 로마에서 추방해 버렸습니다. 이 사건의 결과로 결국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유다교 회당과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오로가 언급하는 교회 공동체는 바로 이런 구조에서 살아가던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로마서 전체에 ‘교회’라는 용어가 나오지는 않지만 그리스도인들끼리 모이는 구체적인 그룹들, 가정공동체들이 로마에 있었다는 것을 16장에서 알 수 있습니다(16,1.4.5.16.23).


왜 로마서를 썼는가?

로마서의 저술 목적에 대해 학자들이 연구를 많이 했으나 지금까지 의견 일치에 도달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주제에 대한 연구가 어려운 것은 바오로 자신이 로마서에서 여러 가지 이유들을 제공하기 때문인데 대략 세 가지로 저술 목적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선교목적으로 이방인들의 사도로서 바오로는 로마에서 더 많은 신자들을 얻기를 원했다는 것,

2) 호교론적 목적으로 바오로가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적절한 개념을 변호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것,

3) 사목적인 목적으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것. 여기에 로마에 복음을 전하여(1,15), ‘복음의 힘’을 신자들이 일상 안에서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덧붙일 수 있습니다.

로마서의 저술 목적에 대한 만족할 만한 해결은 어느 한 가지만 선택하지 않고 이런 여러 가지 목적을 함께 놓고 보아야 로마 공동체의 상황과 연결해서 서간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로마서는 바오로 신학의 체계적인 요약으로만 간주해 왔으나 현재에 많은 바오로 학자들은 로마서가 추상적으로 정교한 신학문서라기보다는 특별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구체적인 공동체에게 서간, 사목적 차원에서 의사전달을 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로마서의 구조는?

로마서 전체의 틀에 해당하는 서문(1,1-15)과 소식(15,14-33)과 인사와 영광송(16장) 안에서 들어 있는 본문은 크게 가르침(1,16-11,36)과 권고(12,1-15,13)로 구분됩니다. 이 구분을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표시는 12,1에 나오는 “나는 권고합니다.”라는 동사 사용입니다. 1,16에서 11,36까지 설명한 모든 것의 결과로서 바오로는 이제 로마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권고합니다. 가르침과 권고에서 가르침에 해당하는 1,16-11,36이 더 중요한데 그리스도인 행실의 토대가 되는 요소를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구조에서 바오로가 로마서를 쓸 때 중요하게 여긴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지상에 세워진 집 건물이 아니라 그 집을 받쳐주는 보이지 않는 기초, 나무가 아니라 뿌리, 그리스도인의 행위가 아니라 존재양식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신자들에게 “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이러한 행위를 해야 한다.”고 말하기보다는 “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사람이다.”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적으로 더욱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훌륭한 교육자 바오로는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적 요소를 명확하게 설명해 주면, 그 지식의 토대 위에서 신자들이 자연스럽게 스스로 풍요로운 결실을 거두며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오로 이야기, 우리들 이야기

바오로는 로마서에서 당대 학자와 설교자들이 사용하던 수사학적 기법을 많이 사용하지만 자신의 인간성과 학문을 분리하면서 가르치는 차가운 학자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둘에 둘을 더하면 넷임을 말하는 것과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로마서를 읽을 때 정제된 지식인의 메시지가 아니라 말과 기록 안에 자신의 삶을 녹여낸 바오로의 하느님 체험 이야기로 보고 로마서를 함께 읽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로마서는 바오로를 사로잡았던 ‘복음’의 주인공인 예수님 이야기이자 그분을 따랐던 초대 교회 이야기, 그분을 거절한 이스라엘 이야기,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힘’에 의해 새롭게 변화되고 성장해야 할 ‘나의 이야기’입니다.

[평신도, 2014년 겨울호(VOL.46), 임숙희 레지나(엔아르케 성경삶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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