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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 이야기34: 안티오키아 교회의 구호 헌금과 사도들의 시련(사도 11,27-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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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9-10-09 조회수214 추천수0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34) 안티오키아 교회의 구호 헌금과 사도들의 시련(사도 11,27-12,5)


헤로데 왕, 박해의 손 뻗치다

 

 

예루살렘 교회에 박해의 손길이 뻗쳐 야고보 사도가 순교하고 베드로는 감옥에 갇힌다. 사진은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모셔진 스페인 산티아고 대성당 전경.

 

 

유다 지방에 기근이 들었다는 소식에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들이 구호 헌금을 모아 보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야고보 사도가 순교하고 베드로 사도는 감옥에 갇힙니다.

 

 

안티오키아 교회의 구호 활동(11,27-30)

 

예루살렘에서 예언자들이 안티오키아에 내려옵니다.(11,27) 왜 내려왔을까요? 사도행전 저자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안티오키아에 복음이 전해져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과 함께하며 격려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그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하가보스가 온 세상에 큰 기근이 들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그 기근은 클라디우스 황제 때에 일어났다고 사도행전 저자 루카는 전합니다.(11,28) 클라디우스는 기원후 41년부터 54년까지 로마 제국을 다스린 황제입니다. 유다인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37/38~100?)에 따르면, 기원후 40년대 중반에 팔리스티나 곧 유다 지방에서 상당 기간 기근이 있었습니다. 하가보스의 예언은 바로 이 기근과 관련된다고 하겠습니다.

 

유다 지방에 기근이 들었다는 소식에 안티오키아의 “제자들은 저마다 형편에 따라 유다에 사는 형제들에게 구호금을 보내기로 결의”하고 실천에 옮겨 구호 헌금을 바르나바와 사울 편에 원로들에게 보냅니다.(11,29-30)

 

기근으로 어려움에 처한 유다 지방의 형제들에게 구호금을 보낸 안티오키아 교회 제자들의 행위는 헐벗고 굶주린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라는 스승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일 뿐 아니라 가진 것을 서로 나누는 예루살렘 교회 모습(2,44-46)을 본받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유다 형제들에 대한 안티오키아 교회의 구호금 전달은 유다 지방 곧 예루살렘에서 예언자들이 내려와 안티오키아 교회를 격려한 것에 대한 안티오키아 교회의 보답 행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부족함을 채우는 것, 곧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안티오키아 교회를 성령으로 예언의 능력을 지닌 예루살렘 교회 예언자들이 격려하고, 기근에 시달리는 유다 형제들을 안티오키아 교회가 도와주는 것은 진정한 나눔과 통교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안티오키아 교회는 이 구호 헌금을 바르나바와 사울의 편에 예루살렘 교회의 원로들에게 보냅니다.(11,30) 한때는 예수님의 교회를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사울이 다마스쿠스와(9,20-22) 예루살렘에서(9,28-29) 가르친 데 이어 안티오키아에서는 만 1년 동안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습니다.(11,26) 이는 사울이 이제 교회 안에서 상당히 알려져 있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안티오키아 교회가 구호 헌금을 보낼 대표로 바르나바와 함께 사울을 택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사울로서는 다마스쿠스에서 피신해서 예루살렘에 간(9,26-30) 이후 두 번째로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셈입니다. 사울이 조금씩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12,1-5)

 

예루살렘 교회에 다시 박해의 손길이 뻗칩니다. 헤로데 임금이 손을 뻗쳐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합니다.(12,1-2)

 

여기에 나오는 헤로데 임금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때에 나오는 헤로데(루카 23,6-12), 곧 갈릴래아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와는 다른 헤로데로, 헤로데 아그리파 1세를 가리킵니다. 그는 헤로데 안티파스의 배다른 형제의 아들로, 말하자면 헤로데 안티파스의 조카입니다.   

 

예수님 탄생 때에 팔레스티나를 다스렸던 헤로데 임금(대 헤로데)이 죽은 후 팔레스티나는 그의 세 아들이 다스리게 됩니다. 맏아들 아르켈라오스는 유다와 사마리아를, 둘째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는 갈릴래아와 베로이아를, 그리고 셋째 아들 필리포스는 갈릴래아 호수 북동쪽을 다스립니다. 그런데 아르켈라오스는 폭압적인 정치로 기원후 6년에 쫓겨나고 그 지역은 로마 총독들이 다스리게 되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관련된 총독 빌라도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헤로데 아그리파 1세는 여러 가지 계략을 부려서 기원후 41년에 로마 총독이 통치하던 유다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는 임금이 됩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의 환심을 얻으려고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해, 마침내 요한 사도의 형 야고보 사도를 칼로 쳐 죽게 만든 것입니다.  

 

요한의 형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야보고 사도와 구별하기 위해 대(大) 야고보라고도 하는데,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에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멀리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처형돼 순교하지요. 헤로데 아그리파 1세가 기원후 44년 4월에 죽었다는 기록을 감안하면 그전인 44년 초에 또는 42~43년에 순교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전승에 의하면 사도의 유해는 스페인 북서부의 한 평원에서 발견됐고, 사람들은 그 위에 교회를 세우고 그 도시 이름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라고 지었습니다. 이곳이 도보 순례길로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의 종착지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야고보 사도의 죽음을 유다인들이 좋아하는 것을 본 헤로데는 이제 베드로까지 잡아들이게 합니다. 그때는 무교절, 곧 파스카 축제 기간이어서 헤로데는 파스카 축제가 끝나면 끌어내 처형할 작정으로 베드로를 감옥에 가두고 4명씩 4개 조를 짜서 지키게 하였습니다. 교회는 갇힌 베드로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다고 사도행전 저자는 기록합니다.(12,3-5)

 

 

생각해봅시다

 

1. 사도행전 저자는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전하고는(11,26) 바로 이어서 안티오키아의 그리스도인들이 큰 기근으로 어려워진 유다 지방 형제들에게 구호 기금을 전달했다는 내용을 소개합니다. 말하자면 안티오키아 신자들은 단지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믿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이웃 형제들을 도움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답게 믿음을 실천으로 옮겼습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인임을 자처한다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답게 사랑의 실천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 실천은 “저마다 형편에 따라”(11,29)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편에 따라 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리스도인의 덕목일 뿐 아니라 본분이기도 합니다.

 

2. 야고보 사도를 처형한 헤로데 임금은 유다인들이 좋아하자 베드로 사도까지 붙잡아 감옥에 가둡니다.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가두고 한 것입니다. 헤로데 아그리파 임금으로서는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야 임금으로서의 자기 정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결말이 어떻게 됐을까요? 우선 이런 물음을 던져놓고 다음 호에서 계속 살펴봅시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0월 6일, 이창훈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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