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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사도행전 읽기11-12: 첫 신자 공동체의 삶(사도 2,42-47)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4-10 조회수968 추천수0

[사도들의 기쁨과 삶을 담은 사도행전 읽기 11] 첫 신자 공동체의 삶 1(사도 2,42-47)

 

 

명동성당에서 예비자 교리반을 맡았을 때, 예비 신자분들에게 어떻게 세례를 결심하게 되었는지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다양한 나눔 가운데에는, 유럽 여행을 하면서 웅장하고 성스러운 교회 건축물들을 보고 세례를 다짐하게 되었다는 고백도 있었습니다.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신앙을 갖게 하는 성령의 위업에 감탄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사람들 사이의 소문으로 끝나지 않고, 많은 사람을 세례를 통한 회개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오순절 베드로의 설교 후 많은 사람이 세례를 받았음을 삼천 명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로 증언합니다.(2,41) 이렇게 늘어난 신자들은 사도들을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사도행전은 이 공동체가 어떤 신앙의 삶을 살았는지 전해줍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2,42)

 

첫째로, 새 신자가 된 이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이는 사도들을 통해 예수님의 가르침이 전수되었다는 뜻입니다. 루카 복음서 첫 대목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루카 1,2) 루카 복음서에 예수님의 탄생과 행적, 말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등이 담긴 것으로 보아, 사도들의 가르침도 예수님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교리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교리 교육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시작되었던 셈입니다. 또한 지금도 사도들의 가르침은 교황님과 주교단을 통해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최근 몇몇 신자분들 중에는 교회의 가르침을 왜곡하거나 그 가르침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분도 계십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우리 각자의 삶과 가치관을 옹호하는 논거가 아닙니다. 때로는 세상의 흐름과 달라 답답하고 추상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며 실천해야 할 기준입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점은 초대교회 신자들이 친교를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친교는 단순히 우정을 나눈 것 이상입니다. 루카는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2,44)하였다고 전해줍니다. 공동으로 소유하는 모습은 그들이 어떤 친교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이는 욕심은 버리고, 가족 같은 친밀한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나눔과 섬김이 바로 초대교회 신자들의 친교입니다.

 

성령 강림을 통해 설립된 교회는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닙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섬김과 나눔의 친교를 통해 그 가르침을 실천하여, 말씀과 하나 된 하느님 나라였습니다. 이런 초대교회 신자들의 삶은 오늘 우리로 하여금 과연 어떤 신앙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2023년 4월 9일(가해) 주님 부활 대축일 서울주보 8면, 김덕재 안드레아 신부(사목국 성서못자리 담당)]

 

 

[성경12] 첫 신자 공동체의 삶 2(사도 2,42-47)

 

 

지난주에는 첫 신자들의 삶을 가르침과 친교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두 가지 모습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두 가지 모습은 빵을 떼어 나누는 모습과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많은 분이 ‘빵을 떼어 나누었다.’라는 지점에서 성체성사를 떠올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는 지금과 같은 전례적인 형식을 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1코린 11,17~34을 보면 당시 주님의 만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이 행하고 있는 주님의 만찬에 신랄한 비판을 합니다. 비판의 요지는 나눔의 식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순서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주님의 만찬은 두 부분, 음식을 나누는 애찬과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만찬으로 나누어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코린토 신자들은 가난한 이들을 부끄럽게 하려고 애찬 때 나눔을 하지 않은 채 각자 가져온 자기 음식만 먹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바오로는 한데 모여서 먹기만 하는 것은 주님의 만찬이 아님을 지적합니다. 이것으로, 주님의 만찬에는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 주신 그분의 행적과 말씀을 기억하면서, 참여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나눔의 식사가 동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사에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는 말씀 전례와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찬 전례 한가운데, 가난한 이들과 교회를 위한 나눔의 예물 봉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눔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개인의 구원만을 위해 미사를 봉헌한다면, 참된 전례의 정신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초대교회 신자들은 기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의 형식은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2,46)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다 공동체가 바치던 기도, 예배와 동일한 형태였을 겁니다. 이후 교회는 유다인들이 바치던 기도에서 벗어나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주님의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 2767항은 “교회의 최초의 공동체들은 유다인들의 신심으로 바쳐 왔던 ‘열여덟 가지 찬미’ 대신에 주님의 기도를 ‘하루에 세 번’ 바쳤다.”라며 초대교회의 기도의 삶이 어땠는지 알려줍니다.

 

이와 같은 초대교회 신자들의 삶은 온 백성에게 호감을 얻었고,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사도 2,47)” 주셨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많은 신자분이 방황하는 지금, 우리는 다시금 초대교회 신자들의 삶을 되새기며, 참된 신앙의 길을 찾고자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다른 비 신자분들에게 호감을 줄 것이고, 주님께서 성령을 통해 다시금 신앙의 열기를 불어넣어 주실 것입니다. [2023년 4월 16일(가해)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서울주보 5면, 김덕재 안드레아 신부(사목국 성서못자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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