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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동물] 성서 속의 동물들: 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3 조회수4,023 추천수0

성서 속의 동물들 : 소

 

 

성서처음 부분에 쓰여있는 천지창조에서 네 번째 날에 “물 속에 우글거리는 것” 또"날으는 새"를 창조하신 후, 다섯 번째 날에 “하느님은 땅에 온갖 동물, 온갖 가축,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들을 만드셨다. 하느님은 이것을 보시고, 참 좋다고 하셨다.”(창세 1,25)라고 적혀있다. 즉 가축이 다른 동물들과 함께 창조 때부터 나타나고 있다. 가축은 그 원종이 된 야생동물을 인류가 키우고, 개량되어져온 곳의 지식 면에서 보면, 특히 긴 역사에서 축산과는 거리가 멀었던 일본사람입장에서 보면, 이해를 돕기 위한 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구약성서의 세계 사람들-이스라엘사람들이 얼마나 가축과 깊은 관계의 생활을 해 왔나를 여실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구약성서를 읽어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가축과 어떻게 살았었는가에 대해 생동감 있게 적고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브라함도, 양, 소, 당나귀, 낙타 등의 가축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나이가 든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하느님과의 약속의 아들 이사악이 태어나게 됨을 알리러 오신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은 소 무리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서, 부드럽고 맛있게 보이는 송아지를 골라 하인에게 주어 빨리 요리하게 했다. 아브라함은 엉긴 젖과 우유, 만들어진 송아지 요리를 옮기고, 그들 앞에 섰다.”(창세 18,7-8)라고 적혀있다. 송아지 요리는 고급 요리였을 것이다. 신약성서에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도, 아들이 돌아온 것을 기뻐한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루가 15,23)라 말하고 잔치준비를 시키고 있다. 또 “서로 미워하며 살진 쇠고기를 먹는 것보다 서로 사랑하며 채소를 먹는 것이 낫다”(잠언 15,17)라는 훈계도 있다. 엉긴 젖은 요쿠르트일 것이다. 젖은 낙타, 양에서 얻었을 것이며, 우유도 사용되어졌을 것이다.

 

크며 힘이 강한 소는 사역에 사용되어졌다. 등에 물건을 싣고 나르게 하는 일도 있지만(1역대 12,41), 수레를 끄는 쪽이 많았던 것 같다. 전쟁에서 진 후 페르시아 사람에게 있던 하느님의 계약의 궤가 이스라엘에 돌려졌을 때, “젖을 먹이고 있던 두 마리 어미소를 끌고 와서 수레에 메고 젖먹이 송아지를 우리로 보내어 가두었다. 야훼의 궤를 수레에 싣고, … 소는 벳세메스 쪽으로 똑바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울면서도 오른쪽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았다.”(1사무 6,10-12)라고 되어있다. 젖먹이 소에게 젖을 먹이고 있던 어미 소를 무리하게 끌고 갖기에 젖먹이 소도 울었을 것이다. 이때 야훼의 궤는 무거웠다. 다윗은 하느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지만 도중에 “일행이 나단의 타작마당을 지날 때 소가 뛰었다.”(2사무 6,6)해서 야훼의 궤를 붙들었던 우짜가 하느님의 노여움을 사서 죽었다고 되어있다.

 

소는 농경에도 사역되어졌다. 엘리야가 예언자 엘리사를 만난 것은 황소 열 두 쌍에 겨리를 지워 밭을 갈고 있었을 때이며, 엘리사는 그 소를 버리고 엘리야를 따라 가려고, 황소 두 마리를 잡고 쟁기를 부수어 그 고기를 구워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1열왕 19,19-21)

 

탈곡에도 쓰였다. 옛날에는 펼쳐놓은 곡물을 소가 밟아 탈곡하게 했었다. 모세의 규정이 적혀있는 신명기에는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신명 25,4)고 되어있듯이, 가축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가 있다. 같은 신명기에 “너희는 동족의 소나 양이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고 모른 체해서는 안된다. 반드시 그 동족을 찾아 그에게 끌어다 주어야 한다.”(신명기 22,1) “동족의 나귀나 소가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모른 체해도 안된다. 반드시 동족을 도와 거들어 일으켜 주어야 한다.”(신명 22,4)라고 적혀있다.

 

放牧도 행해지고 있었다. “또 그날, 너희 가축은 넓은 목장에서 풀을 뜯으리라. 밭일을 거드는 황소와 나귀도, 키와 풍구로 부쳐 낸 고운 겨에 간을 맞추어 만든 사료를 먹으리라.”(이사야 30,23-24) 그러나 메뚜기 떼가 초목을 다 먹어치우면 “목장이 없어져 가축들이 울부짖고 소 떼들이 요란하다. 양떼라고 그 벌을 면할쏘냐?”(요엘 1,18)라는 것도 일어날 수 있다.

 

그때쯤 소는 고대 이집트 벽면에서도 보였고, 현재 아프리카에서 키워지고 있는 큰뿔소처럼 축우 원종인 오오록크-라는 이름을 남긴 뿔이 긴 소가 많았었다. 1959년에 일본의 上野動物園(우에노 동물원)에 큰뿔소가 사들여져서 얼룩말 옆에 가두어져 사육되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에 얼룩말도 뛰어오른 적이 없는 높이인 150cm정도의 울타리를 큰뿔소는 도움도 없이 간단하게 넘어버렸다. 이렇게 야생성을 버릴 수 없는 소이지만 특히 숫소를 다루는 데에도 위험이 함께 따랐다. “가련한 이 몸을 사자 입에서 살려 주시고…”(시편 22,21), 사자 입에 그 뿔이 무서웠을 것이다. 방목되던 소도 풀이 꺽여있었을 것이다. “으르렁대며 찢어 발기는 사자들처럼 입을 벌리고 달려듭니다.”(시편 22,13)처럼 무서움에 떨기도 했었을 것이다. 다루는 것도 무서웠을 것이다. “소가 없으면 구유는 말끔해져도 황소의 힘을 빌어야 소출이 많아진다.”(잠언 14,4) 난폭한 소 사육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소몰이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속담으로도 볼 것이다.

 

욥기에서는 야생 소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가 있다.

 

“들소가 어찌하여 네 일을 거들어 주며, 네 구유 옆에서 밤을 새우겠느냐? 네가 그것을 잡아 굴레를 씌워 밭갈이를 시킬 수 있겠느냐? 네 뒤를 따라 골짜기를 갈게 할 수 있느냐? 그것의 억센 힘을 믿고 네 힘든 일을 그에게 맡길 수 있겠느냐? 그것이 밭의 소출을 싣고 타작마당으로 돌아 와 주리라고 믿을 수 있느냐?”(욥기 39,9-12)

 

가축소의 원종인 오오록크-는 팔레스티나에는 살고 있지 않다. 여기에서 말하는 야생소는 아마도 아프리카에서 야생되어지고 있는 아프리카 물소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방목에서 야생화 되어진 숫소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욥기에서는 구약성서의 다른 곳을 보면 아프리카산 동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전자일 것이라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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