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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성경산책: 잠언 - 스승들의 삶의 지혜를 가르치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4-29 조회수3,840 추천수2

[성경산책 구약] 잠언


스승들의 삶의 지혜를 가르치다

 

 

잠언이라는 하나의 책 안에는 여러 시대에 걸쳐 수집된 잠언 모음집들이 여럿 들어 있습니다. 저자가 솔로몬이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잠언 1,1), 오랜 경험이 누적되어 생겨난 잠언들에 대해 저자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요.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지혜를 대표하기 때문에 그를 저자로 내세우는 것입니다. 잠언 25,1에는 솔로몬의 잠언들을 히즈키아의 신하들이 수집했다는 구절이 나오기도 합니다. 

 

잠언의 내용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인생의 지혜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내용이 다양하다 보니 좀 더 세속적이어서 ‘인생의 성공 비결’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부분도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부지런한 사람과 게으른 사람, 겸손한 사람과 오만한 사람 등을 대비시키면서 바른 인생길을 알려주는 가르침들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주목할 것은 1-9장입니다. 이 부분에서는 지혜가 번잡한 길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부르며 초대하는데, 임금들이 세상을 잘 통치하는 것도, 하느님께서 세상을 질서있게 창조하고 섭리하시는 것도 바로 그 지혜를 통해서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다.”(잠언 1,7) 이런 전제들이 앞에 붙어 있음으로써, 단순한 인생 성공 비결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는 부분마저도 신앙생활의 가르침으로 변모됩니다. 축적된 인생의 경험만을 바탕으로 처세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 되기 때문입니다. 

 

잠언에서 크게 강조되는 것이 인과응보의 원칙입니다. 잠언은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원칙을 믿는, 고전적인 지혜를 대변합니다. 더구나 그 복과 벌은 모두 현세에서 이루어집니다. 초기의 지혜문학에서는 아직 내세에 대한 희망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나요? 더구나 현세에서 그 원칙이 정확하게 성립되나요? 우리는 이미 욥이 이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리라는 것을 압니다. 욥은 바로 잠언에 표현되어 있는 전통적인 가르침이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고, 그래서 지혜문학에서 잠언보다 더 늦은 시기의 단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잠언의 저자라고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역설하려 하는 것은 이 세상의 질서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그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기 때문에 세상은 혼돈과 무질서일 수 없고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이 끝까지 잘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잠언의 저자를 보고 너무 순진하고 현실을 모른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제멋대로 굴러가게 내맡겨 두지 않으시고 자연 질서와 이 세상의 정의를 지켜 가시는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는다면 과연 어떤 삶이 가능할까요. 

 

잠언의 신앙은 우리가 딛고 서 있는 땅과도 같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라도, 발밑에 땅이 있다는 믿음이 우리의 발걸음을 가능하게 합니다. 

 

[2014년 4월 27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이민의 날) 서울주보 5면, 안소근 수녀(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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