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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3,970 추천수0

[성서의 풍속] 젖과 꿀이 흐르는 땅

 

 

- 예루살렘 성전과 키드론 골짜기 전경, 이스라엘. 자료제공=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

 

 

한국 성지순례객들이 이스라엘에 처음 와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는 "어떻게 이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것이다. 성서에서 표현하고 있는 이스라엘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메마르고 척박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 땅이 푸른 풀밭과 아름다운 들꽃으로 뒤덮혀 아름다울 때도 있다. 우기가 거의 끝날 무렵인 3월, 특히 중순께 사해 지역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칠고 메마른 유다 광야조차도 수천송이씩 무리지어 피어오른 푸르고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들꽃들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광경도 4월에 들어서면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면서 급격히 사라진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좋은 땅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부터 버려야 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이 최초에는 목축을 하기에 좋은 땅을 의미하는 관용 표현이었다(민수 16,13 참조). 아브라함이 반 유목민이었음을 생각할 때, 하느님께서 아주 적합한 땅을 약속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아브라함이 벼농사를 짓는 농부였다면 하느님께서는 ’기름이 흐르는 땅’(기름진 옥토)을 약속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은 가나안 땅을 다소 과장시켜 생산성이 좋은 땅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사막 유목민들이나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먹을 음식이 풍부한 땅을 묘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성서에서는 젖과 꿀, 혹은 그러한 것에서 생산된 물품들을 매우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젖과 꿀은 대표적 고단백질 음식이었다. ’젖’이란 성서에서 목축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목축은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경제수단이었다.

 

이스라엘 땅 자체가 사막에 인접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목축은 이스라엘 여건에 적합한 경제수단이 되었다. 그래서 목축에서 대표적 동물이었던 양은 이스라엘 제사 제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제물이었다.

 

젖과 꿀로 만든 음식들은(2 사무 17,28 참조) 고대사회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교역 물품들이었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봉헌되는 물건이기도 했다(2역대 31,5 참조).

 

"무엇이 꿀보다 달겠느냐?"(판관 14,18 참조)는 표현처럼 성서는 달콤한 것을 비교하는 여러가지 표현에 꿀을 사용했다. 잠언에서 꿀은 즐거움과 건강함을 주는 선한 말에 비유되고 있다(잠언 16,24 참조).

 

그런가 하면 꿀은 또한 하느님 말씀(시편 19,10 참조), 지혜(잠언 24, 13 참조) 혹은 연인 사이의 아름다운 감정과 같이 다양한 즐거움과 유익함의 상징적 표현이었다.

 

이처럼 분명히 젖과 꿀은 고대사회에서 높이 평가되는 값진 물건들이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께서 양식으로 주셨던 만나는 그 맛이 벌꿀과자 맛 같다고 표현되고 있다(출애 16,31). 그래서 죄인들에게 젖과 꿀은 허락될 수 없는 양식이기도 했다(욥기 20,17 참조).

 

그러나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비옥한 땅이라 할 때 이것은 이스라엘의 실제 지리적 상황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땅에 관한 대표적 표현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이스라엘의 실제 현실과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의 다양한 역사 경험과 신앙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은 좋은 땅을 의미하는 성서 히브리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가나안 땅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선조들에게 약속하신 거룩한 축복의 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나안 땅의 축복성은 땅의 풍요로움이라는 외형적 차원이 아니라 하느님과 신앙적 관계성이라는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

 

[평화신문, 2003년 10월 26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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