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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이방인의 상징인 돼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4,132 추천수0

[성서와 풍속] 이방인의 상징인 돼지

 

 

- '회개하는 탕자', 1520년 께, 동판화, 뒤러(1471~1528), 대영박물관, 영국런던. 자료제공 = 정웅모 신부.

 

 

어떤 사람이 간밤에 커다란 돼지 한 마리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면 아마 십중팔구 그 다음날 출근길에 복권판매소 앞을 그냥 지나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돼지꿈은 재물운의 대표적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예로부터 돼지는 우리에게 부를 가져오며 다산과 건강함을 상징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고대 여러 민족들에게도 돼지는 풍요의 상징이었다. 이집트에서 돼지는 달과 특별한 관계에 있어 달에게 제사 지낼 때 항상 돼지를 제물로 바쳤다.

 

그러나 또한 돼지처럼 인간 의식 구조 속에서 이중적 대접을 받는 동물도 드물다. 왜냐하면 돼지는 복과 재물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럽고 불결한 짐승으로서 하대를 받고 탐욕과 멸시의 상징으로도 자주 쓰이기 때문이다.

 

성서에 보면 예수님 일행이 호수 건너편 게라사 지방에 이르렀을 때 무덤에서 나오는 더러운 악령 들린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밤낮으로 묘지와 산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짓찧었다.

 

예수님께서 이름을 묻자 "수효가 많아서 군대이다"라고 대답했다. 마침 그곳 산기슭에는 돼지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더러운 악령들을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그러자 거의 2000마리나 되는 돼지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을 내리달려 물속에 빠져 죽고 말았다(마르 5,1-20 참조).

 

예수님은 악령을 왜 하필이면 돼지 속으로 보내셨을까? 성서에서 돼지는 금기의 상징이며, 이방인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신명 14,8 참조).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마라'(마태7,6)는 말씀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느끼는 돼지 이미지가 잘 담겨 있다.

 

유다인들은 돼지라는 말조차 입에 담기를 꺼려해서 '흰고기'라고 돌려서 부를 정도로 돼지를 싫어한다. 유다인 정결법의 큰 특징 중 하나는 돼지고기를 아주 금기시하는 것이다. 유다인들은 정결법을 육체뿐 아니라 영혼과 관련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래 팔레스타인 지방에는 돼지가 없었다. 사실 돼지는 중동 기후와 유목생활에 부적합한 동물이라 할 수 있다. 돼지는 인간이 먹는 곡식과 같은 것을 먹이로 하기 때문에 곡물이 부족한 사막 지형에서는 기르기에 마땅하지 않은 동물이다.

 

또한 돼지는 체질적으로 체온 조절을 위해 물이 필요한데 마실 물도 부족한 사막에서 돼지를 기르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돼지를 보게 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이 기르던 돼지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바빌론에 노예로 잡혀간 유다인들은 이방인의 부정한 음식을 먹는 것은 영혼을 더럽히는 일로 생각했다.

 

지금도 열심히 율법을 지키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돼지기름으로 튀긴 스낵까지도 먹지 말라고 널리 광고를 할 정도이다. '돼지는 불결한 동물이기 때문에 이를 먹거나 손을 대면 부정하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돼지는 더러운 흙탕에 뒹굴거나 더러운 오물을 내놓기 때문에 자연스레 부정한 동물로 여겼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예쁜 여자가 단정하지 못한 것은 돼지 코에 금고리다"(잠언 11,22 참조)라고 한 것처럼 돼지의 외적 더러움을 인간 내면의 더러움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부정한 동물의 이미지를 하느님 가르침을 더럽히는 인간들에 비유하기도 하셨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말고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그것들이 발로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 뜯을지도 모른다"(마태 7,6 참조).

 

또한 몸을 씻겨주어도 곧 더러운 진창으로 다시 들어가는 돼지(2베드 2,22 참조)는 과거의 죄를 반복해서 저지르는 부정적 인간상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재물과 복의 상징인 돼지가 유다인들에게는 반대로 죄와 불결의 상징이라는 사실은 재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어떤 생각을 하고 받아들이냐'하는 인간 마음이 아닐까.

 

[평화신문, 2004년 3월 14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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