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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일치와 계약의 상징인 반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4,017 추천수0

[성서와 풍속] 일치와 계약의 상징인 반지

 

 

- '투트멘스 3세의 인장반지', 루브르 미술관 소장. 자료제공 = 정웅모 신부.

 

 

최근 몇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열풍을 일으킨 영화 '반지의 제왕'은 원작이 1954년 출간된 이래 1억권 이상 팔린 초 베스트셀러이다.

 

내용은 악의 군주 사우론(Sauron)과 호빗족(Hobbit)의 영웅 프로도 배긴스(Prodo Baggins) 사이에 절대반지를 놓고 벌이는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이 친구인 인간, 마법사, 난쟁이, 요정 등으로 구성된 원정대를 이끌고 악의 군주 사우론이 만든 절대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불의 산'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반지에 신비로운 능력이 있다는 설정이 서양인들 사고를 대변하는 듯하다.

 

서양에서 반지를 쓰기 시작한 것은 고대 이집트 때부터이며, 금 외에도 조개껍데기나 부드러운 돌 또는 자수정 등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보석류의 절정기를 맞은 15∼16세기에는 반지가 남녀간에 유행하였으나 이후부터는 장식용으로서 주로 여성이 착용하게 되었다.

 

반지는 원의 상징적 의미와 비슷하다. 영원성을 나타내는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도 일종의 반지로 하나의 끈을 맺어서 매듭을 만들어 고리 모양 형태를 하고 있다. 근동 지방에서 마법 반지는 인간을 병이나 재앙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그리스에서는 반지를 끼는 것은 자유 신분의 남자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었다. 로마에서도 반지는 지위를 나타내는 특별한 징표였다. 그래서 원로원 의원은 금, 일반 귀족은 은, 노예는 철을 사용하여 만든 반지를 끼었다.

 

많은 장신구들 중에서 유독 반지만이 계약의식의 상징물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결혼반지, 약혼반지는 중세 때 유다인들 관습에서 비롯된 것인데, 그것이 그리스도교 예식의 관행이 되면서 점차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결혼 반지는 정절의 징표, 진실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중세 시대 대관식에서 반지는 왕과 그 나라의 결합을 나타냈다. 오늘날에도 주교가 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는 교회의 신랑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주교 반지는 주교 품위의 상징으로서, 또 신앙의 모범을 보여 주는 상징으로서 9세기에 처음 사용되었다. 반지는 주교 품위와 관할권의 표지로서 주교 수품식 때 받으며, 주교와 자기 지역교회의 영성적 일치와 계약을 의미한다.

 

고대세계에서 인장이 딸린 반지는 모든 권리, 지배권을 나타내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성서시대에도 인장, 혹은 봉인과 인장이 딸린 반지는 접촉해서는 안 되는 불가침의 의미와 크게 존경을 받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였다.

 

이집트 왕 파라오는 요셉에게 "내가 너를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운다"며 손에서 옥새 반지를 빼어 요셉 손에 끼워주고는 고운 모시옷을 입혀준 다음 목에다 금목걸이를 걸어주었다(창세 41,41-42 참조).

 

이처럼 전권을 위임할 때 인장 반지를 빼어 손에 끼워주었다. 페르시아 왕 아하스에로스는 심복 하만에게 유다인 박해의 전권을 위임할 때 그 표시로서 자신의 인장이 달린 반지를 하만에게 넘겨주었다(에스 3,10 참조).

 

신약성서에서도 반지는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의 징표로 사용되었다. 미리 받은 유산을 탕진하고 아버지에게 돌아온 탕자는 비천한 노예로 취급되지 않고, 반지를 받음으로써 아들의 권리를 회복한다(루가 15장 참조). 또 금반지를 낀 사람은 부자라는 표시로 받아들여졌다(야고 2, 2 참조).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반지를 약속의 표시나 중요한 기념품으로 이용한다. 그래서 반지 안에 사진이나 기념 문구를 새겨 넣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반지에 독을 넣거나 칼을 넣어 암살용으로까지 이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평화신문, 2004년 3월 21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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