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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 벌거벗은 사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3,796 추천수0

[성서의 풍속]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 벌거벗은 사람

 

 

- '최후의 심판'(부분) 1535~1541년, 미켈란젤로(1475~1564년), 시스틴 경당, 바티칸. 자료제공 = 정웅모 신부.

 

 

오늘날 누가 만약 알몸으로 거리를 나선다면 당장 경찰에 체포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대중에게 자기 알몸을 드러내는 것은 사회적으로 도덕적 수치가 된다. 그런데 파푸아 뉴기니 섬 등지에는 지금도 나체족이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나체라는 의식이 전혀 없다. 이처럼 같은 시대에도 불구하고 문화 차이에 따라 알몸에 대한 개념은 전혀 다르다.

 

르네상스 말기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가인 미켈란젤로는 왕성한 활동을 통해 기념비적 건축물 등을 설계하고 많은 회화, 조각, 장식물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대표적 걸작인 천장화 '천지장조'를 처음에는 완전 나체로 그렸다.

 

그런데 후대 교황 비오 4세 명령으로 그림에 손질을 하여 나체 일부를 가렸다가 일부만 복원작업이 이루어졌다. 또 미켈란젤로는 교회 지도자들에게서 다윗 상 조각을 의뢰받았다. 그는 성스러운 대성당에 설치할 다윗 상을 버젓이 알몸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으로 완성했다.

 

당시로서는 경악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해부학적이고도 근육의 사실적 조각으로 젊은 남성의 육체미를 완벽하게 표현한 미켈란젤로의 다윗 상은 당시에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애석하게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야유와 조롱을 받았다. 심지어는 관람객이 던진 돌에 조각상 팔이 부러지기까지 했다.

 

옛날 그리스에서는 나체를 미적으로 높이 평가했다. 유럽에서도 르네상스 이후 회화, 조각작품 등에는 나체의 육체미를 대상으로 하는 작품이 많이 등장했다. 나체는 지상적, 현세적 속박에서 벗어난다는 뜻을 상징하기도 했다.

 

또한 알몸을 드러내는 것은 초자연적, 신적 힘에 자신의 몸을 내맡기는 의미도 있었다. 옷과 신발은 인간 손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신과 관계를 방해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고대 오리엔트와 그리스, 로마 등지에서 종교적 제사, 기도, 희생물 봉헌, 예언행위 때에는 나체로 행하는 일이 있었다. 또 신비사상에서는 알몸은 정화의 상징이 되었다. 몸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것은 신을 단순하게 닮은 상태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구약성서에서 알몸은 인간이 죄를 지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범죄 이전 아담과 하와는 자연 그대로의 알몸 상태였다(창세 2,25 참조). 그런데 죄를 범해서 이 원초 상태에서 벗어났기에 인간에게는 수치심이 생겼다.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렸다"(창세 3,7 참조). 또한 대중 앞에서 알몸을 드러내는 것은 굴욕과 치욕, 형벌을 의미했다.

 

이스라엘에서는 간음을 범한 여자를 대중 앞에서 벌거벗게 하는 형벌이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이 맨발에 벌거벗은 채라면 그것은 슬픔과 비통의 표시가 되었다(미가 1,8 참조). 알몸은 심한 수치를 나타내기도 하고 가난을 상징하기도 했다.

 

신약성서에서 알몸은 심한 가난의 상징이었다. 사도 바오로 서신에서 헐벗음은 괴로움이나 기근 등을 의미했다(2고린 11,27 참조). 또 알몸은 깨어 있는 정신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를 나타내며, 좋은 행실을 하지 않는 사람을 상징하기도 했다(묵시 16,15 참조).

 

미켈란젤로의 작품 '최후의 심판'에서 묘사된 것처럼 발가벗은 사람들은 하느님 앞에서 거짓의 옷을 벗은 것을 나타낸다. 아무리 외적으로 훌륭한 옷을 입고 있어도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는 벌거벗은 사람이다. 인간은 누구나 알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알몸으로 이 세상을 떠나는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다(욥기 1,21 참조).

 

[평화신문, 2004년 4월 4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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