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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4,895 추천수0

[성서의 풍속]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

 

 

- '유프라테스 강가의 일몰 광경', 이라크. 자료제공=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감독).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은 어디였을까?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은 노아의 10대손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리고 노아의 맏아들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의 고향을 갈대아의 우르라고 가르쳐주고 있다(창세 11,28 참조). 그러다가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 땅을 향해 길을 떠난다.

 

당시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위험한 행위였다. 창세기는 아브라함의 가족이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하여 길을 떠나다가 하란에 이르러 자리잡고 살았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의 우르는 어떤 곳이었을까? 일부학자들은 갈대아의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인 '텔 엘 무카이야르'로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분명한 것은 갈대아의 우르는 현재 이라크 영토에 속한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위치한 수메르와 바빌론의 대도시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따라서 우르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메르를 먼저 잘 알아야 한다. 수메르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으로 형성된 지방으로 B.C 5000년께부터 농경민이 정착하기 시작한 곳이었다. 수메르 사람들은 두 강의 중, 상류 지역 또는 엘람 지방에서 이주하여 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지역은 B.C 3000년께 세계 최고의 문명을 창조했다. 특히 이 지방에는 늪과 연못이 많고 두 강에서 일어나는 홍수나 페르시아만의 높은 조수로 인하여 일찍부터 간척, 배수, 관개 등의 토목공사가 발달했다.

 

그러나 수메르인의 민족이나 언어, 원주지에 관해서는 분명하지 않은 점이 많다. 그리고 이 무렵의 정치에는 대략적으로 촌락 공동체 시대의 평등한 원리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일반 시민의 성년 남자로 구성되는 민회(民會)와 씨족장들의 장로회가 민주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쟁과 같은 도시의 사활에 직결되는 상황에서는 일시적으로 도시의 전권을 위임받는 왕이 선출되어 나라를 통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초기 왕조시대에는 500년간 각 도시국가가 난립하여 서로 싸움을 벌였다. 이때 각 도시는 신의 소유라고 생각되어 성벽으로 둘러싸인 신전을 중심으로 한 중심 지역과 주위의 농경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도시에서는 정치, 경제, 군사 생활 등이 모두 신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당시의 나라는 신전공동체 또는 신전국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초기 왕조시대에 우루크, 우르, 키시, 니푸르 등의 유력한 도시국가가 서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패권을 다투었다. 수메르 문화는 세계 최고의 문명으로서 오리엔트 역사에 많은 공적을 남겼다. 그들은 그림문자로부터 독특한 설형문자를 발명하여 고대 오리엔트에서 널리 사용했다. 또한 12진법과 태음력을 사용하였고, '수메르 법'이라는 법전도 만들어 높은 문화적 발전을 과시했다.

 

그런데 우르는 일찍부터 지형 특성상 무역을 통해 크게 번영하였다. 수메르에서는 점토 이외의 원료가 산출되지 않아 석재나 광석, 귀금속은 모두 무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일찍부터 동쪽은 인더스 유역, 서쪽은 아나톨리아, 시리아, 이집트 등과 원격지 무역을 시도했다. 또한 그 무역을 통하여 수메르 문명은 오리엔트 각지로 전파되었다.

 

그런데 수메르는 역사의 부침을 거듭하다가 한때 다시 번영하여 우르 제3왕조를 일으켰으나 결국 동방 엘람인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메르는 셈족에게 동화되었고, 이후 수메르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지방에 해당하는데 남부 유프라테스강 가까운 곳에 있던 수메르의 발달된 도시국가였다. 따라서 우르가 오늘날로 치면 세계적으로 가장 발전되고 세련된 뉴욕이나 파리와 같은 도시라고 하면 너무 지나친 과장일까. 그런 도시를 떠나 미지의 척박한 땅으로 떠난 아브라함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의 성조로 추앙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신문, 2003년 7월 6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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