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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서의 세계: 매장과 무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3,046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매장과 무덤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고운 베로 싸서 바위를 파서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신 다음 큰 돌을 굴려 무덤 입구를 막아놓고 갔다"(마태 27,58-60). 동산에 있던 이곳은(요한 19,41) "아무도 장사지낸 일이 없는 무덤"으로(루가 23,53), 여러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루가 24,3).

 

이 짧은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다 땅의 매장 방식이나 무덤 모양은 우리 나라와 사뭇 다르다. 사실 이런 것들은 민족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바뀔 뿐만 아니라, 사람에 따라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그 밑바탕에는 많은 민족에게 공통되면서 크게 변하지 않는 사고 방식도 볼 수 있다. 성서에 나오는 매장 관습의 구체적 형태들을 우리가 답습할 필요도 없고, 또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다. 다만 성서 이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스라엘인들의 매장 문화를 살펴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을 되새겨보고자 한다.

 

 

사후의 삶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뒷날은 장사지내는 일이 금지된 안식일이면서 과월절이었다(요한 19,31). 그래서 저녁때가 되었지만(마태 27,57과 병행구) 예수님께서는 그날로 묻히셨다.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죽은 이를 당일에 묻는 것이 일반적 관습이었다(요한 11,39; 사도 5,6). 더운 지방이어서 시신이 빨리 부패하고 또 주검과 접촉하면 종교적으로 부정하게 된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민수 19,11-14).

 

이렇게 사람이 죽어 묻히더라도 어떠한 형태로든 생존을 계속한다는 생각을 많은 민족에게서 볼 수 있다. 그러한 사후 생존은 또 주검이 어떤 식으로 처리되느냐에 달렸다고 여겼다. 그래서 제대로 묻히지 못하는 것은 큰 불행이었다(이사 14,19; 예레 22,18-19; 전도 6,3). 그것은 또 패전하였을 때의 가장 큰 불운 가운데 하나이며(이사 34,2-3; 시편 79,2), 하느님께서 큰 죄인에게 내리시는 벌이라고 생각하였다(신명 28,26; 2열왕 9,10; 예레 7,33; 19,7; 34,20; 36,30; 에제 29,5). 그렇기 때문에 원수도 묻어주었고(1열왕 2,31; 2열왕 9,34), 죽은 이들을 장사지내 주는 일을 덕행으로 평가하였다(토비 1,17-18).

 

사후 생존이 매장과 밀접히 관련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이스라엘인들은 본디 화장을 하지 않았다. 몸이나 시신을 불태우는 것은 화형에 처할 때나(창세 38,24; 레위 20,14; 21,9; 여호 7,25) 전염병이 돌 때뿐이었다(아모 6,10). 사울과 그 아들들의 경우는 특별하다. 이들이 전사하자, 사울의 은혜를 입은 야베스-길르앗 주민들이(1사무 11장) 그 시신들을 거두어다가 불에 태우고서는 뼈를 추려서 매장한다(1사무 31,12). 아마도 더위에 시신들이 상당히 부패하였고 성벽에 걸려있었던 관계로 새들이 그것들을 훼손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사울과 그 아들들의 이 화장은 연한 부분만 사르는 특별한 경우로, 나중에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에게서, 또는 인도인들에게서 보게 되는 본격적 의미의 화장과는 다르다. 같은 내용을 전하는 후대의 1역대 10,12에는,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신을 불에 태웠다는 말이 없다. 이는 그 동안 어떠한 식으로든 시신을 태우지 않는 관습이 확고히 자리잡은 표지일 것이다.

 

 

사후 생존의 터

 

예수님께서는 성밖 골고타(마르 15,20; 히브 13,12) 곁의 어떤 동산에 묻히신다. 옛날 유다의 두 임금도 궁전에 딸린 동산에 묻혔다고 전해진다(2열왕 21,8.26). 더 옛적에는 큰 나무 아래에도 사람을 묻었다(창세 35,8; 1사무 31,13). 산처럼 지대가 높은 곳(2열왕 23,16; 이사 22,16), 산이나 동산의 비탈(2역대 32,33), 또는 땅 밑도(2열왕 13,21; 2역대 34,4) 묘지로 이용되었다. 사무엘 예언자(1사무 25,1), 다윗 시대의 유명한 요압 장수(1열왕 2,34), 그리고 유다의 므나쎄 임금은(2역대 33,20) 자기 집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여기에서 이 ’집’이 무덤을 가리키는지, 이 사람들의 집과 붙은 사유지를 가리키는지, 또는 집 안이나 곁에 매장하던 옛 관습의 부활을 뜻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사실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이전의 집 바닥 밑이나 안뜰에서는 정성스럽게 매장된 유골들이 발굴된다. 집이나 부락 안에 죽은 이들의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다. 이스라엘인들 역시 주요 인물들을 성이나 마을 안에 묻는 경우가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임금들의 무덤은 예루살렘 안에 있는 왕궁의 부속지 곧 ’다윗성’에 마련되었다(1열왕 2,10; 11,43 등).

 

구약성서에는 어느 곳에 묘를 써야 한다는 규정이 따로 없다. 그런데 특히 기원전 6세기의 유배 이후에 모든 것을 정(淨)과 부정(不淨)으로 가르는 정결 규정이 강화된다. 그에 따라 주검은 물론 무덤도 부정한 것으로 분류되고, 거기에 몸이 닿으면 부정하게 되었기 때문에(레위 21,1; 민수 6,6; 19,11-13 등), 예수님의 경우처럼 묘지는 일반적으로 성이나 동네 밖에 마련하였다.

 

사후에도 일종의 생존이 지속된다는 생각으로, 무덤을 죽은 이들의 집으로 여겨 준비하였다. 무덤을 ’유택(幽宅)’이라고 부르는 동양과 비슷한 것이다. 이러한 무덤을 어디에 어떻게 마련하는지는, 해당 지역의 지형이라든가 망자의 사회적 신분, 그리고 그 시대의 사고 방식 및 문화와 밀접히 관련된다.

 

이스라엘인들이 살던 팔레스티나 땅은 주로 바위가 많은 산악 지방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자연 동굴이나 인공으로 판 굴을 집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죽은 이들의 ’집’도 이와 비슷하다. 흙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예전의 우리 나라처럼 밭에 매장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처음에는 바위에 자연히 난 구멍 같은 곳을, 다음에는 자연 동굴을 무덤으로 이용하였다. 그 뒤에는 산 비탈이나 땅 밑의 바위에 굴을 팠다. 덜 단단한 바위를 찾아 팠겠지만, 이는 시간도 돈도 많이 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생전에 새 무덤을 마련한다는 것은 보통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처럼 부유한 사람만이 할 수 있었다(2역대 16,14; 마태 27,57; 마르 15,43 참조). 그러나 혼자 묻히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가문이나 씨족이 상당 기간 함께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사들인 동굴에 아브라함과 사라(창세 23,19; 25,9), 이사악과 리브가 부부, 그리고 야곱과 레아 부부가 묻힌다(창세 49,29-32; 50,13). 어떤 무덤에서는 50여 명이 묻힌 것으로 확인된 적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묻히신 곳이 "아직 아무도 장사지낸 일이 없는 무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루가 23,53). 따로 가족묘를 마련할 수 없었던 서민들은 그냥 땅에 묻기도 하고 공동 무덤을 이용하기도 하였다(2열왕 23,6 참조).

 

자연 또는 인공 동굴을 이용한 무덤은 바위의 생김새나 성질,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통상 수직으로나 비스듬히 바위를 파 들어가서 작은 입구를 마련하고(요한 20,5 참고), 사각이나 원형으로 된 널찍한 방을 보통으로 하나씩 만들었다. 이러한 묘실(墓室) 가운데 전형적인 것은 너비가 4,5미터, 높이가 1,2미터 가량 된다. 벽에는 일종의 대(臺)가 생기게 바위를 파고, 때로는 돌베개까지 마련된 대 위에 시신을 안치한다. 입구는 나무나 흙과 돌 또는 바위로 막았다. 마지막 경우에는 바위 하나를 그냥 입구에 갖다놓거나, 예수님의 무덤처럼 바위를 둥그렇게 깎고 입구에다 홈을 파서 굴렸다. 예수님 시대 전후에는 그리스.로마의 건축과 예술을 본받아 무덤 입구를 대문처럼 꾸미기도 하고 여러 가지 기념물로 치장하기도 하였으며(1마카 13,25-30 참조), 기존의 유명 인사들의 무덤을 새로 단장하기도 하였다(마태 23,29).

 

시신을 어떻게 안치해야 한다는 규정은 이스라엘에 없었다. 먼 옛날에는 다리를 구부리는 굴신장(屈身葬)이 없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인들도 통상 다리를 곧게 뻗친 신전장(伸展葬)을 하였다. 매장할 때에는 (아마도 악취를 없애느라고) 무덤 안에도 향을 피우고 향료를 태웠다(2역대 16,14; 21,19; 예레 34,5 참조). 묘실 안에 있던 유골은 얼마의 기간이 지나면 함(函)에 넣고 묘실 벽에 판 구멍에 모셔놓음으로써 다음 사람을 위한 장소를 마련하였다.

 

이렇게 무덤은 땅 위 또는 땅 밑의 바위를 파서 만들었기 때문에 눈에 곧바로 띄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에 몸이 닿으면 부정하게 되므로, 무덤에는 정기적으로 회칠을 하기도 하였다(마태 23,27 참조).

 

옛날 사람들은 사후의 생존을 물질적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인들 이전 시대에는 물을 채운 큰 항아리를 비롯하여 양식과 그릇들, 갖가지 패물들과 화장(化粧) 도구들, 그리고 무기들을 함께 묻었다. 그러다가 아주 작게 만든 그릇들, 부적 같은 구실을 하는 자그마한 조각상들, 그리고 등잔들을 매장하였다. 특히 예수님 시대에는 향이 든 병과 향료와 함께 많은 등잔을 매장하였다. 이는 사후 생존의 방식에 대한 생각들이 바뀌어갔음을 반영한다.

 

 

무덤 너머로

 

구약성서의 대표적인 인물은 모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인들은 그가 어디에 묻혔는지 알지 못하였다(신명 34,6). 그들에게는 그 무덤의 위치보다 그가 선포한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였다(신명 34,9 참조). 신약성서의 절대적인 중심은 예수님이시다. 그분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에게 천사들이, "너희는 어찌하여 살아계신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 하고 말한다(루가 24,5-6). 우리에게도 바로 산 이와 죽은 모든 이의 "부활이요 생명이신"(요한 11,25)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

 

[경향잡지, 1999년 12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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