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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성서의 세계: 초상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3,043 추천수0

성서의 세계 : 초상

 

 

장례 준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창세 3,19). "어제는 그의 차례요 내일은 네 차례다"(집회 38,22). 이러한 말씀에 따라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음을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이라 하였고(여호 13,14; 1열왕 2,2), 저승을 "산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라고 불렀다(욥 30,23). 그래서 때가 되면 나름대로 죽음을 준비하였는데, 그 가운데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유언이었다. 성서에서는 야곱(창세 47 49장), 요셉(창세 50,24-25), 모세(신명 31,2-8; 33,1-29), 여호수아(여호 23장), 사무엘(1사무 12장), 다윗(1열왕 2,1-9), 예수님(요한 14 16장) 등 몇몇 주요 인물의 유언만 전해진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도 죽기 전에 자기의 장례라든가 재산 문제 같은 것들을 부탁하거나 결정하는 말, 그리고 자손들에게 당부하거나 그들을 축복하는 말을 남겼음에 틀림없다.

 

사람이 죽으면 상주가, 특별한 경우에는 고인이 총애하던 상제가 눈을 감겨주었던 것 같다(창세 46,4). 이어서 유족들이 돌아가신 이에게 입맞춘다(창세 50,1). 또 이미 옛날부터 돌아가신 이의 몸을 씻었으리라고 판단되지만, 신약성서에 가서야 그리하였다는 말이 직접 나온다(사도 9,37). 야곱과 요셉의 시신은 방부 처리되는데(창세 50,2.26), 이는 이집트의 관습을 따른 것으로써, 이스라엘에서는 본디 시신에 향유를 바르지도 않고 미라로 만들지도 않았다.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평소의 옷을 입혀 묻었던 것 같다(1사무 15,27과 28,14에 나오는 사무엘의 "겉옷"과 에제 32,27에 나오는 전사(戰士)들의 매장 참조). 신약성서 시대에는 우리 나라처럼 본격적인 수의(壽衣)를 입힌 것은 아니지만, 일반 아마포 또는 특별히 장례용으로 마련된 아마포 한 장 또는 여러 장으로 시신을 쌌다(마태 27,59와 병행구; 요한 19,40). 거기에다 손과 발을 띠로 묶고(요한 11,44) 얼굴을 수건으로 덮었다(요한 11,44; 20,6). 그러면서 가루로 된 향료도 많이 뿌렸다(요한 19,40). 이렇게 준비를 한 뒤에 시신을 합당한 방에 모셔놓고(사도 9,37) 유족과 친척과 친지들이 곡꾼들과 함께 곡을 하였는데 곁에서 피리를 불기도 하였다(마태 9,23).

 

이집트와 달리(창세 50,26) 성서의 땅에서는 관을 따로 이용하지 않고,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상여’나 ’관’으로 번역하지만 본디는 그냥) ’들것’에 시신을 모셔서 묘지로 갔다(2사무 3,31; 2열왕 13,21; 루가 7,14 참조).

 

이스라엘인들은 모든 것을 정(淨)과 부정(不淨)으로 나누었다. 시신과 무덤은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것들과 접촉하는 이도 일정 기간 부정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필요한 사람들만 시신에 손을 댄다(레위 21,1-4; 22,4; 민수 19,11-16). 이러한 배경에는 특히 무더운 가나안 땅에서 시신이 빨리 부패한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민족들과 달리 사자(死者)를 신이나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지 않는다는 교리(敎理)가 한몫을 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검을 아무렇게나 처리하였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성서의 사람들 역시 죽은 이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 속을 가지고 시신을 다루었다. 그들은 정상적인 장례 절차에 따라 묻히지 못하는 것, 무덤에 매장되지 못하고 새나 짐승의 먹이가 되는 것을 가장 큰 저주로 생각하였다(예레 16,4; 시편 79,2).

 

 

애도 의식과 애가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은 먼저 입고 있던 옷을 찢고(창세 37,34; 2사무 1,11), 발에서는 신을(2사무 15,30; 에제 24,17), 머리에서는 터번을 벗는다(에제 24,17.23). 그리고 ’자루옷’을 맨몸 위에 입는다. 거친 천으로 자루처럼 만든 이 옷을 허리에 걸치는 것이다(창세 37,34; 2사무 3,31). 이어서 수염을 덮거나(에제 24,17.22) 얼굴을 가린다(2사무 19,5). 그리고 머리에 손을 얹기도 한 것 같다(2사무 13,19 참조).

 

애도의 몸짓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머리를 풀고 그 위에다가 흙이나 먼지를 뿌리고(욥 2,12; 에제 27,30), 재 위에 앉거나 드러눕거나 뒹군다(에스 4,3; 이사 58,5; 예레 6,26). 또 애도 기간이 끝날 때까지 몸을 씻지도 않고 몸에 향유를 바르지도 않는다(2사무 12,20; 유딧 10,3). 심지어 머리털과 수염의 일부나 전부를 깎고 몸에 상처를 내기까지 한다(욥 1,20; 이사 15,2; 예레 48,37; 에제 7,18; 아모 8,10). 이 두 행동이 이스라엘에서는 율법으로 금지되었지만(레위 19,27-28; 21,5; 신명 14,1) 완전히 근절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행동들 가운데 어떤 것은 현재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에 지나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을 비롯한 고대 근동인들은 감정이 매우 풍부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지를 잃고 마음에 느끼는 슬픔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드러낸 것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애도할 때만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커다란 수치를 당하였을 때, 민족이나 국가의 지도자를 잃었을 때, 나라가 큰 곤경에 빠졌을 때,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과거의 죄를 뉘우치면서 하느님께 용서와 자비를 청할 때에도 이러한 몸짓들을 하였다. 이스라엘에서도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애초에는 무의식적인 행동들이 정형화(定型化)하여 일종의 의식(儀式)이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곡(哭)을 하는 데에서도 볼 수 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곡을 매우 중요한 애도 의식으로 여겼다. 곡의 가장 단순한 형식은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로 그냥 울부짖는 것이다. 미가 1,8에서는 이러한 울부짖음을 늑대와 타조의 울음에 비유한다. 특히 외아들을 잃었을 때에는 더욱 구슬프게 통곡한다(예레 6,26; 아모 8,10; 즈가 12,10).

 

우리 나라의 곡소리가 ’아이고 아이고(에고 에고)’나 ’어이 어이’로 굳어져있듯이, 이스라엘인들도 일정한 소리로 곡을 하였다. 곧 ’호 호’ 또는 ’호이 호이’이다(아모 5,16; 1열왕 13,30). 여기에다 덧붙여 죽은 이를 부르기도 한다. 형제가 죽었을 때에는 "호이, 형님!" 또는 "호이, 내 동생아!" 하고, 임금이 죽었을 때에는 "호이, 임금님!"이라고 한다(1열왕 13,30; 예레 22,18).

 

이스라엘 사람들은 곡을 하였을 뿐 아니라 만가(輓歌) 또는 애가(哀歌)도 지어 불렀다(2역대 35,25; 예레 9,19; 에제 19,14). 일정한 운율을 지닌 이 애가 가운데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것은,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을 기리며 부른 노래이다(2사무 1,19-27. 2사무 3,33-34도 참조).

 

옛날 우리 나라의 대곡제(代哭制)와 비슷하게, 이스라엘에서도 직업 곡꾼들이 있어서 이들이 곡도 하고 애가도 지어 불렀다(2역대 35,25; 아모 5,16). 중국에서 유래하는 상엿소리는 일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스라엘의 애가는 죽은 개인을 기리면서 그의 덕행이나 운명을 노래하였다. 물론 운율은 늘 같고, 표본이 되는 내용들이 있어서 그것들을 본받아 직업 곡꾼들이 그때그때 애가를 지었다(1마카 9,21과 2사무 19.27 비교). 주로 여자들이 이 일에 종사하여 자기의 기능을 딸에게 전수해 주었다(예레 9,16-19; 에제 32,16).

 

애도 의식이 초상만이 아니라 다른 슬픈 일에도 행해진 것과 비슷하게, 특히 예언자들은 애가를 나라나 임금, 때로는 적국의 불행을 노래하는 데에도 적용하였다(예레 9,9-11; 16-21; 애가 전체; 에제 19,1-14; 26,17-18; 27,2-11.25-36; 28,12-19; 32,2-8; 아모 5,1-2).

 

 

금식과 상가(喪家) 음식

 

이스라엘의 상례(喪禮)에는 금식도 포함되어 있었다. 요나단과 사울, 그리고 아브넬이 죽었을 때에 다윗은 하루 동안 금식한다(2사무 1,12; 3,35). 사울의 고향 주민들은 그의 장사를 지내고 이레 동안 금식한다(1사무 31,13). 그러나 정확히 누가 며칠 동안 금식을 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장사는 그날 지낸 것이 거의 확실한데(요한 11,39; 사도 5,6 참조), 그 뒤에 얼마 동안 곡을 하며 애도하였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야곱이 죽었을 때에 이집트인들은 칠십 일 동안 애도한다(창세 50,3). 아론과 모세가 죽었을 때에는 이스라엘인들이 삼십 일 동안 애곡한다(민수 20,29; 신명 34,8). 일반적인 애도 기간은 칠 일이었던 것 같다(창세 50,10; 1사무 31,13; 유딧 16,24; 집회 22,12). 야곱의 경우에는, 이집트인들이 그에게 거의 파라오에 준하는 예우를 하였다는 뜻이다. 아론과 모세의 경우에는, 그들이 민족의 영도자였기 때문에 오래 슬퍼하였다. 죽은 이의 지위나 집안 형편에 따라 애도 기간이 달라지기도 한 것이다. 집회 38,17은 하루나 이틀을 권장하기도 한다(유딧 8,5-6도 참조).

 

주검만이 아니라 죽은 이의 집도 부정(不淨)한 곳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음식을 장만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웃이나 친지들이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음식과 술을 상가로 가져갔다(예레 16,7; 에제 24,17.22). 특히 상주 또는 위족들에게 건네는 술잔을 "위로의 술잔"이라고 부른다(예레 16,7).

 

이스라엘인들은 다른 민족들과 달리, 본디 죽은 이나 무덤 앞에 음식을 차려놓지 않았다. 그래서 바룩 6,26이나 집회 30,18은 그러한 행동을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한다(토비 4,17은 단순히 외국의 경구를 인용하는 것인지, 장지에도 음식을 풍부히 가져다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말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러한 관습이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죽은 이를 신이나 신적인 존재로 모신다는 뜻은 아니었다. 단순히, 죽은 이도 어떠한 형태로든 삶을 지속한다는 믿음, 그리고 죽은 이와 끊이지 않는 사랑의 연대감을 드러내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이윽고 부활이 계시된 뒤에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와 속죄의 제사를 바치기 시작한다(1마카 12,38-46).

 

[경향잡지, 1999년 11월호, 임승필 요셉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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