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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리]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21: 예루살렘의 성문들 (1)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17 조회수4,195 추천수1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21) 예루살렘의 성문들 - 1



오늘날 예루살렘 구시가(Old City)의 성벽에는 닫혀있는 황금의 문(Golden Gate)을 포함하여 총 8개의 성문들이 있다. 북쪽의 가장 멋진 성문으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열거하면, 다마스쿠스의 문(Damascus Gate), 헤로데의 문(Herod’s Gate), 성 스테파노의 문(St Stephen’s Gate), 황금의 문, 오물의 문(Dung Gate), 시온의 문(Sion Gate), 야포의 문(Jaffa Gate), 새 문(New Gate)이다. 기원후 16세기 술탄 슐레이만 2세에 의해 예루살렘 성벽이 완성될 당시에는 총 6개의 성문들이 존재했다. 그는 동일한 형태로 성문들을 만들었고, 모든 성문에 공식적인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그 후 성문들의 이름은 여러 언어와 종교적 공동체에 따라 다양하게 불려진다. 오늘날의 성문들 중에서 오스만 터키 제국 당시의 L자 형태 통로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다마스쿠스의 문, 헤로데의 문, 시온의 문, 야포의 문이다. 이 성문들에는 수평 혹은 약간 굽은 상인방과 아랍어 명각(inscription)이 있었다. 성문의 통로를 L자 형태로 만든 것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방어를 용이하게 한 것이다. 영국의 신탁 통치(British Mandate)하에서 헤로데의 문과 성 스테파노의 문이 직접적인 출입구가 되었다. 오물의 문은 본래 일종의 뒷문이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넓혀졌다. 1887년에 다마스쿠스의 문과 야포의 문 중간 지점에 새 문이 만들어졌다.
 

① 다마스쿠스의 문
 
다마스쿠스의 문은 예루살렘 북쪽 성벽의 중앙에 있는 것으로, 성문들 중에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답다. 이 지역에 현존하는 오스만 터키 제국의 건축물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다. 다마스쿠스의 문은 성문들 중에서 유일하게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것이다. 1938~1939년과 1965~1966년 두 차례에 걸쳐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곳에 성문이 처음으로 세워진 것은 헤로데 아그리파 1세(기원후 41~44년) 때의 일이다. 그 후 기원후 13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다시 세워진 성문은 독립적인 구조를 가진 기념비로 당시 예루살렘의 새 이름인 아엘리아 카피톨리나(Aelia Capitolina)로 들어가는 출입구로의 역할을 하였다. 현재 다마스쿠스의 문 밑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서쪽으로는 십자군 시대의 성당을 볼 수 있고 동쪽으로는 성안으로 통하던 옛 문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마스쿠스의 문의 명칭은 히브리어로 샤아르 스켐(Sha’ar Shechem), 즉 “스켐의 문”이다. 그 이유는 이 성문이 예루살렘의 북쪽에 위치한 스켐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스켐을 거쳐 다마스쿠스 도시로 가는 길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 성문의 이름이 다마스쿠스의 문이다.

그리고 아랍어로 이 성문은 바브 엘-아무드(Bab el-Amoud), 곧 “기둥의 문”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이곳에 원주형 기둥을 세웠기 때문이다. 사실 로마인들은 도로를 만들면서 거리를 측정하는 이정표를 세웠던 것이다. 기원후 6세기의 마다바 지도(Madaba Map)에는 이 기둥이 성문 바로 뒤에 위치해 있다. 로마 시대에는 이 성문에서 시온의 문까지 중심 도로, 즉 카르도 막시무스(Cardo Maximus)가 있었다.
 

② 헤로데의 문

이 성문은 예루살렘 북쪽 성벽의 동쪽에 위치한다. 헤로데의 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16~17세기의 순례자들이 근처에 있던 마멜루크의 집을 헤로데 안티파스(Herod Antipas)의 궁전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 성문은 히브리어로 샤아르 하페라힘(Sha’ar Haperachim), 아랍어로 바브 에즈-자르(Bab ez-Zahr), 곧 “꽃으로 장식된 문”, “꽃의 문”으로 불린다. 그 이유는 성문에 꽃의 문양이 있었거나 성문 근처에서 상인들이 꽃을 팔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성문은 예루살렘 구시가의 북동쪽에 위치한 이슬람인 지역으로 통하기 때문에 아랍인들의 출입이 많다.
 

③ 성 스테파노의 문
 
이 성문은 예루살렘 동쪽 성벽에, 곧 올리브 산을 마주보며 위치해 있다. 이 성문을 통하여 올리브 산, 베타니아, 예리코, 요르단 강으로 갈 수 있다. 슐레이만 2세는 이 성문을 바브 엘-고르(Bab el-Ghor), 즉 “요르단의 문”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명칭은 실제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이 성문이 성 스테파노의 문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사도 7,54-8,1의 스테파노 순교와 관련된다. 비잔틴 시대의 순례자들에 따르면, 6세기의 성 스테파노의 문은 북쪽에 있는 것으로써 오늘날 다마스쿠스의 문이라고 부르는 성문이었다. 그런데 1187년에 라틴 제국이 멸망한 이후 아랍인들은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이 군사적으로 가장 취약한 북쪽 성벽 근처를 통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올리브 산과 예리코를 방문하기 위하여 동쪽 성문을 이용해야만 했다. 비잔틴 시대와 십자군 시대에 예루살렘 북쪽에 있던 여러 중요한 장소들이 동쪽으로 옮겨지게 되었는데,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이 동쪽 성문을 성 스테파노의 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성문은 매우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사자의 문”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성문 바깥쪽 벽 좌우에 사자의 부조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슐레이만 2세의 꿈에 두 마리의 사자가 나타나 성문을 다시 세우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1540년에 성문은 보수되었고 사자의 부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 성문 근처에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의 집이 있다고 해서 “안나의 문”이라고도 불리고 근처에 마리아의 무덤이 있다고 해서 “마리아의 문”이라고도 불린다. 유다인들은 여호사팟 계곡으로 통하는 문이라고 해서 “여호사팟의 문”이라고도 부른다. 이 성문을 “양 문(Sheep Gate)”이라고도 한다.
 

④ 오물의 문

오물의 문은 예루살렘 남쪽 성벽의 동쪽에 있으며 성문들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다. 이 문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안의 오물들이 키드론 계곡과 티로포에온 계곡에 버려졌다. 유다인들은 이 성문을 느헤 2,13에 나오는 “거름 문”에 따라 오물의 문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나는 밤에 ‘계곡 문’으로 나가 ‘용 샘’을 지나 ‘거름 문’까지 가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과 불에 탄 성문들을 살펴보았다.” 이 성문은 아랍어로 바브 엘-마가르베(Bab el-Magharbeh), 곧 “무어인들의 문”이라고도 불린다. 그 이유는 16세기경에 북아프리카에서 이주한 이슬람 무어인들이 이 성문 근처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1958년에 요르단인들은 자동차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이 성문을 넓혔다. 오늘날 많은 유다인들은 이 성문을 통하여 그들의 거룩한 장소인 통곡의 벽으로 출입한다.

  

* 송창현 신부는 1991년 사제수품 후 로마성서대학원에서 성서학 석사학위(S.S.L.)를, 예루살렘 성서·고고학연구소에서 성서학박사학위(S.S.D.)를 취득하였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과 성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빛, 2013년 9월호, 송창현 미카엘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성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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