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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성경과 신들23: 모세와 길가메쉬의 가시나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20 조회수4,056 추천수1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23) 모세와 길가메쉬의 가시나무

가시, 예수 수난으로 직결되는 신학적 상징


지금까지 성경 속 하늘ㆍ달ㆍ바람ㆍ강ㆍ피ㆍ나무에 관해 알아보았다. 이번 시간은 가시나무다. 가시나무는 고대 근동 종교와 구약성경을 꿰뚫는 상징이자 신약성경의 핵심 상징이다. 유다교 랍비들과 교부들의 성찰에도 핵심적 자리를 차지한 나무다.


가시가 있는 떨기나무

'떨기나무'와 '가시나무'의 종교적 상징성은 서로 통한다. 두 나무는 성경에서 '거룩한 나무'의 종교적 상징성을 가장 잘 드러내며, 둘 다 가시가 달렸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인물인 모세는 탈출기 맨 처음에 출생한다. 탈출기는 모세가 이집트를 탈출하고 계약을 맺은 이야기다. 민수기는 탈출한 백성이 광야에서 생활한 이야기다. 레위기는 모세가 전한 법전이며, 신명기는 처음부터 모세가 불러준 것을 그대로 쓴 것이다. 신명기 맨 끝에서 모세는 유언을 남기고, 하느님이 직접 장사 지내셨다.

탈출기부터 신명기에 이르는 내용이 모두 모세 이야기다. 그는 후대 모든 예언자의 원형이다. 그런 모세가 하느님을 직접 뵌 곳이 어디인가? 탈출기 3장에서 하느님은 불붙은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다. 불이 붙었는데도 타지 않는 떨기나무 주변은 하느님이 현현하신 거룩한 장소다. 하느님께서 친히 그곳을 '거룩한 땅'이라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그곳에서 신발을 벗고 예를 갖춰 하느님 말씀을 들었다. 그는 경외심에 휩싸여 얼굴을 가리고 만다.

"주님의 천사가 떨기나무(=가시덤불) 한가운데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꽃 속에서 그에게 나타났다. 그가 보니 떨기(=가시덤불)가 불에 타는데도 타서 없어지지 않았다. 모세는 '내가 가서 이 놀라운 광경을 보아야겠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주님께서 이를 보시고 떨기 한가운데에서 '모세야, 모세야!'하고 부르셨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탈출 3,2-6).

천주교 「성경」과 개신교 「표준새번역」은 모두 이 나무를 '떨기나무'로 옮겼다. 그래서 한국의 독자들은 이 나무를 단순한 관목으로 여기기 쉽다. 그런데 히브리어와 고대 식물학에 주목하면 이 나무에는 가시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떨기나무' 항목을 보면 이 낱말은 '관목'을 의미하고, 한자어 '관목'을 순우리말 '떨기나무'로 순화한다고 설명한다. 곧 하느님은 관목에 현현하신 것이 된다.

그런데 독일어 역본들은 한결같이 '가시덤불'(Dornbusch 또는 가시떨기)로 옮긴다. 독일어 공동번역, 루터역, 엘버펠더역은 모두 단순히 '떨기나무'로 옮기지 않고 '가시'를 살려 번역한다. 실제 이 관목은 가시가 있다. 떨기나무에 '가시'가 있음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가시'는 고대 근동신화에서 상징성을 지닌 낱말이고, 구약의 하느님에서 출발해 신약의 그리스도와 그분의 수난으로 직결되는 종교ㆍ신학적 상징어이기 때문이다.


길가메쉬 : 돈오(頓悟)의 가시나무

인류 최초 장편 서사시인 「길가메쉬 서사시」에는 가시나무가 '깨달음의 나무'로 나온다. 한 편의 대하드라마 같은 이 영웅 서사시는 길가메쉬의 한평생을 담고 있다. 초반부는 혈기 왕성한 청년이 흥미진진한 모험을 하며 우정과 사랑이 깊어가는 일종의 성장 드라마다. 길가메쉬 서사시의 내용을 소개한다.

길가메쉬는 영웅이자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이다. 하도 길들여지지 않고 날뛰어서 사람들은 신에게 그에 대적할 상대를 만들어 달라고 했고 신은 엄청난 인간 '엔키두'를 만들었다. 그런데 결국 이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둘은 힘을 합쳐 산의 괴물 훔바바를 죽이고자 했다. 하지만 힘세고 두려움 없는 질풍노도의 청년들은 과연 자신들이 '괴물 훔바바를 죽일 수 있을까'하고 걱정한다. 길가메쉬가 묻는다. "죽음이 두려운가?" 여기서 죽음이 등장한다. 아무리 강해도 두려운 것이 죽음이다. 죽음을 넘을 수 있을까? 그러나 이들은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둘은 여행을 떠난다. 산에서 꿈을 꾸고 꿈을 풀이하며 지낸다. 죽음도 체험한다. 결국 이들은 훔바바를 이긴다. 영웅이 된 것이다. 그때 이 멋진 청년을 두고 하늘과 땅의 여왕인 이쉬타르 여신이 청혼한다. 길가메쉬는 이를 거절한다. 질투의 여신이자 전쟁의 여신인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러자 신들이 회의를 열었다. 신들은 회의 끝에 길가메쉬의 친구인 엔키두를 죽인다. 가장 큰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다. 길가메쉬는 내가 죽었더라면 하고 고뇌에 빠진다. 신을 거스른 탓에 친구가 죽었다. 그리고 다시 죽음을 두렵게 여겼다. 이를 계기로 그는 세속적 가치의 허무함을 깨닫고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다.

이때부터 영생을 얻으려는 종교적 모티프가 이야기 전면에 등장한다. 성장 드라마가 종교 드라마가 되는 순간이다. 인간이 종교적 가치를 찾는 것은 세상 영화를 모두 누려서가 아니다. 길가메쉬가 그렇듯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란 것을 보여준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인생이 허무하게 끝날 수 있음을 돌아본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찾는다. 그때서야 인간은 나선다.

길가메쉬는 영생을 갈구했다. 사람들은 태초의 홍수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우트나피쉬팀'을 만나면 된다고 일러준다. 길가메쉬는 무작정 그를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가지 마라', '인생이 다 그렇다', '너는 갈 수 없다', '죽음의 강을 건너야 한다'는 등 무수한 말을 듣는다. 결국 그는 뱃사공 우르샤나비의 도움으로 죽음의 강을 건넌다. 그는 영생을 원했다.

[평화신문, 2013년 7월 21일, 정리=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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