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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성경과 신들20: 나무에 어린 마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29 조회수2,640 추천수1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20) 나무에 어린 마음

자연과 소통하는 전능하신 하느님


지금까지 고대 근동에 등장하는 많은 신들에 대해 배웠다. 이번엔 '나무의 신'이다. 현대사회에 사는 우리는 나무를 하나의 자본으로 여기며 산다. 하지만 고대 근동인들은 나무에 거룩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봤다. 나무에 특별한 마음, 지극한 종교심이 깃들어 있다고 여겼다.

'나무 신'에 얽힌 종교심이 가장 잘 드러나는 예는 이집트의 독특한 보석 장식에 새겨진 나무 형상이다. 이집트어로 '벌떡 일어난 코브라'를 의미하는 '우래우스' 두 쌍이 나무를 보호하고 있는 문양이 그것이다. 파라오의 머리 장식에서 볼 수 있는 우래우스는 고대 이집트의 신적 주권과 왕권을 상징했다. 이는 고대 근동에서 나무를 얼마나 소중한 신으로 섬겼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고대 이집트 왕 투탕카멘의 머리장식에는 우래우스가 있다. 이 밖에도 나무는 고대 근동의 궁전과 신전 벽화에서도 쉽게 눈에 띈다.


나무의 할례

구약성경에는 나무에 얽힌 다양한 종교심이 있다. 하지만 구약성경은 '나무의 신'을 섬기지는 않았다. 다만 나무에 대한 종교적 경외심이 바탕에 깔려 있을 뿐이다. 레위기 19장은 나무의 성장 과정을 사람의 그것과 빗댔다.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온갖 과일나무를 심을 경우, 그 과일들을 할례받지 않은 포피로 여겨야 한다. 세 해 동안 그것들은 할례받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과일들을 먹어서는 안 된다. 넷째 해의 과일들은 주님에게 축제 제물로 바쳐야 하고 다섯째 해부터는 너희가 그 과일들을 먹을 수 있다. 이는 너희의 소출이 많아지게 하려는 것이다"(레위 19,23-25).

과일나무의 생물학적 성장 단계에 종교적 의미가 있음을 하느님께서 친히 알려 주셨다. 이런 종교적 의미를 '할례'에 빗댄 점이 흥미롭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 과일나무는 그저 때맞춰 열매를 맺는 식물이 아니었다. 마치 인격체처럼 생의 단계에 의미가 깃든 생명체인 것이다.

신명기 규정도 마찬가지다. 전쟁 중 적의 성벽 근처에 있는 과일나무는 공격에 방해되므로 성가시다. 당장 그 나무를 베어낸 다음 그 목재를 공성전에 사용하면 전략적으로 이득이다. 하지만 과일나무는 함부로 자르지 말아야 한다고 신명기는 이른다.

"너희가 어떤 성읍을 점령하려고 싸움을 벌여 오랫동안 포위하고 있을 때, 그 성읍의 나무에 도끼를 휘둘러 나무를 쓰러뜨려서는 안 된다. 너희는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베어서는 안 된다. 들의 나무는 너희가 포위해야 할 사람이 아니지 않으냐? 그렇지만 너희가 알기로 열매를 먹을 수 없는 나무는 쓰러뜨리고 베어서, 너희와 싸우는 성읍이 함락될 때까지 그 성읍을 포위하는 공격 보루를 만들어도 된다"(신명 20,19-20).

이 같은 표현에는 마치 나무가 인격체인 양 나무에 대한 종교적 심성이 깃들어 있다. 나무가 분명 신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구 대할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을 우리 욕심대로 착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나무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소리

다윗은 나무를 통해 하느님과 소통한다. 하느님은 나무 꼭대기에서 '발걸음 소리'를 내시고, 다윗은 그 하느님의 소리를 알아듣고 그대로 행하여 승리한다. 하느님은 나무 꼭대기에서 소리를 내시는 분. 나무 꼭대기는 하느님이 임하시는 곳, 그리고 인간에게 친히 신호를 보내시는 곳이다. 인간은 나무에서 나는 소리가 혹시 하느님의 음성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 있다. 다윗은 '나무 꼭대기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었다.

"다윗이 주님께 여쭈어 보자 주님께서 이렇게 이르셨다. '바로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 발삼 향나무 숲 맞은쪽에서 그들에게 다가가거라. 발삼 향나무 꼭대기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거든 그때 습격하여라. 주님이 앞장서 나가 필리스티아인들의 군대를 칠 것이다.' 다윗은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여 게바에서 게제르까지 필리스티아인들을 쳤다"(2사무 5,23-25).

자연은 신비로운 언어로 서로 소통하고 감응한다. 인간은 이런 자연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지만, 하느님은 완벽히 이해하신다는 사상이다. 시편은 하늘과 창공, 낮, 밤 등 자연계의 물체가 서로 이야기하고, 말을 건네고, 지식을 전하는 등 활발히 서로 소통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인간은 그들의 말과 이야기와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 이런 자연계를 지으신 하느님만이 이들과 완벽히 소통하신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네. 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그들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는 온 땅으로, 그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가네"(시편 19,2-5).

자연과의 소통 능력은 창조주 하느님 고유의 권능이다. 그분은 자연계의 모든 소리를 듣고 소통하신다. 나뭇가지에서 나는 소리로 그분은 우리 인간과 소통하신다.

[평화신문, 2013년 6월 30일, 정리=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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