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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성경과 신들16: 정의가 강물처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25 조회수2,985 추천수1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6) 정의가 강물처럼

강에 깃든 심판자의 권능은 하느님께


한국교회는 선교 300년대를 향해 가고 있다. 외형을 넓히고, 신자 수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신자들이 신앙의 깊이를 더하고 성경을 더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성경이 탄생한 고대 근동세계와 그 시대 종교와 문화를 이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고대 근동에서 강은 경외감을 지닌 존재였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요르단 강이 큰 신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중 정의를 판결하는 강의 신 '에드'가 있었다. 우리말 성경에서도 '에드'란 말은 상당히 널리 퍼져있다. 구약성경에서 '멸망의 날', '환난의 날', '재앙의 날', '재난의 날' 등으로 다양하게 옮긴 낱말이 모두 '에드의 날'이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앞으로 닥쳐올 환난을 보았다. 그는 눈앞에 놓인 예루살렘 함락만을 예고한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에게 닥칠 재앙도 경고했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모압의 환난, 모압의 멸망(에드)이 가까이 다가오고 그 재앙이 재빨리 닥쳐온다고 말했다(예레 48,16 참조). 번역본은 대개 '환난'으로 그 뜻을 옮겼지만, 멸망과 재앙 등으로도 옮겨 자연스러운 문맥을 살리고 있다.


정의는 강물처럼

강에 담긴 종교심으로 돌아오자. 수메르 시대부터 신성 재판의 최종 판결자로서 막강한 권위를 지니는 강에 대한 종교심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국한되지 않았다. 기원전 1200년께 고대 우가릿(오늘날 시리아와 터키에 있었던 도시국가) 신화에 등장하는 물의 신 '얌무'에도 이런 종교심이 깃들어 있다. 구약성경도 이러한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다양한 성경 인용문에서 강이 심판의 주체가 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강이 정의를 심판한다는 에드의 개념은 고대 근동 종교의 껍질을 벗고 탈신화해 '최후의 직접 심판'이란 개념으로 정착됐다. 그리고 그 심판의 주체는 야훼 하느님이시다. 구약성경에서 에드의 날을 정하는 것도 하느님이시고, 그날에 심판하는 것도 그분이시다. 따라서 구약성경은 에드라는 개념을 받아들여 고대 근동 종교의 전통은 이었지만, 강에 깃든 '심판자의 권능'은 고스란히 하느님께 돌렸다.

야훼 신앙으로 재신화된 에드는 구약성경에서 환난 또는 재앙의 뜻으로 쓰이다가 욥기, 시편, 잠언, 지혜서 등에 해당하는 지혜문학에 이르러서는 '개인적 불행'의 뜻으로 쓰였다. 야훼 신앙 안으로 재신화된 개념이 고대 이스라엘 신학자들의 성찰을 통해 신학적 발전을 이룬 것이다. 강과 정의가 연결되는 구약성경의 종교심은 이렇게 탄생한 것 같다.

고대 근동 지역은 물이 귀했다. 나일 강, 유프라테스 강, 티그리스 강 등 큰 강의 하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메마른 땅이어서 농사가 무척 힘들다. 다행히 이슬비나 안개가 축축이 땅을 적시는 독특한 기후 덕분에 그나마 식물을 키우며 살 수 있다. 아무리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사막 식물이라도 이슬비가 없었으면 생명을 유지하기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잎사귀에 맺히는 영롱한 이슬은 풍요의 전조였다. 만일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으면 그것은 재앙이었을 것이다.


이슬은 풍요의 상징

구약성경에 '하늘의 이슬'이란 표현이 있다. 메마른 땅을 적셔주는 이슬이니 귀하고 귀한 존재라는 뜻이다. 이와 반대로 하느님 말씀이 이슬과 같다고 표현하는 구절도 있다. 모세는 유언으로 남긴 아름다운 시에서 하느님 말씀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같다고 표현한다. 메마른 팔레스티나 땅에서 비는 풍요의 상징이다. 이슬은 금방 증발돼 버리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라 비나 소나기처럼 풍요의 근원으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이슬은 풍요의 근원이다.

구약성경에서 '하늘의 이슬'은 하느님이 내려주신다고 언급하는 구절이 꽤 많다. 그 뜻은 야훼 하느님이 이슬을 내려주신다는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너에게 하늘의 이슬을 내려 주시리라. 땅을 기름지게 하시며 곡식과 술을 풍성하게 해 주시리라"(창세 27,28).

이처럼 창세기 말씀은 이슬을 내려주시는 분은 분명 하느님이시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풍요가 이뤄진다고 전한다.

고대 근동은 한반도와 자연환경이 무척 다르다. 다른 환경에서 수천 년을 살아온 이들은 우리와 몸이 마음에 차이 나는 부분이 있음은 당연하다. 구약성경은 이렇게 우리와는 다른 배경에서 생겨난 문헌이다. '이슬'같이 작고 연약한 물방울에 얽힌 종교심도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까닭이다. 척박한 곳에서는 작은 이슬방울도 풍요의 근원이 될 수 있다. 또 찬찬히 들여다보면 한 방울의 이슬에도 오랜 세월 축적된 신학적 성찰이 영롱하게 들어 있다.

[평화신문, 2013년 5월 26일, 정리=이정훈 기자]
 
※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은 평화방송 TV 홈페이지(www.pbc.co.kr) 강좌/성경 꼭지에서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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