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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성경의 맥5: 출애굽 - 이스라엘이 있는 나이신 하느님을 만나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17 조회수3,776 추천수1
[신앙의 해 - 구약성경의 맥] 제5주제 : 출애굽 - 이스라엘이 ‘있는 나’이신 하느님을 만나다


시원역사(창세 1-11장)가 세상과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고, 왜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다른 계획을 세우셔야 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라면, 창세 12-50장에서는 하느님의 그 구원 계획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를 설명합니다.


하느님의 관계 맺음

하느님의 관계 맺음은 아브라함이라는 성조의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그 부르심은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요구하는 것이었고, 아브라함은 땅과 후손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아버지와 고향과 친족 - 고대사회 안에서 그를 지지하고 지탱해 주던 모든 기반 - 을 떠나 안전과 안위를 오직 하느님에게서만 찾는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부르심은 그의 아들, 손자에게 이어졌습니다.

그들이 체험한 하느님이 ‘같은 하느님’이심을 드러내는 말이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입니다. 이 말씀은 서로 다른 성조들의 역사를 한데 묶어주는 말이며, 성조들의 역사를 이끌어주시고, 그들과 함께하셨던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언제 이스라엘은 한 민족으로서 자기 조상들의 하느님을 ‘나의 하느님’ 또는 ‘우리의 하느님’으로 만나게 될까요?

성조사(창세 12-50장)는 성조들 개인의 하느님 체험을 소개해 주고, 이 개인적인 하느님 체험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정식(formula)을 통해 서로 연결시킨다면, 탈출기에서 신명기에 이르는 역사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한 민족으로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었는지를 전해줍니다.


‘있는 자’이신 하느님의 힘과 구원

가나안 땅에서 발생했던 심각한 기근 때문에 야곱 일족은 이집트 땅으로 내려가야 했고, 그의 후손들은 그 땅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이집트 땅에 닥친 위기를 현명하게 해결하였던 요셉의 공훈을 알지 못하는 파라오들이 등장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 땅에 사는 이민족으로서 억압과 핍박을 받는 신세가 됩니다.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들을 440년 동안 지속된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시키시고, 당신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땅으로 데려가고자 하십니다. 하느님의 구원의지는 모세를 파견하시면서 하신 말씀을 통하여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너희 조상들의 하느님, 곧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신 야훼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탈출 3,15). 하느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하여 성조들을 부르시고 보살펴주셨던 그 하느님이 바로 이스라엘을 위해 ‘있는 자(야훼)’이심을 밝히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그들을 위하여 ‘있는 자’이신 하느님의 힘과 구원을 집단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셨고, 이스라엘은 이를 함께 체험하였습니다.

이집트 땅에서 일어난 열 가지 재앙을 통하여 그들은 세상의 참된 힘이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았습니다.

이 재앙들의 목적은 이스라엘도 이집트인들도 ‘주 하느님께서 세상의 주인임을 알아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재앙 이야기 안에서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는 구절이 8번(탈출 7,5.17; 8,6.18; 9,14.29; 10,2; 11,7)이나 등장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하느님의 백성’으로 다시 난다는 것

완강했던 파라오가 마침내 하느님께 굴복하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모세의 영도 아래 광야의 길로, 해방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백성들을 떠나지 않고 그들을 지켜주셨습니다(탈출 13,22 참조).

그런데 이스라엘은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뒤로는 그들을 추격하는 파라오의 요란한 병거대 소리를, 앞으로는 넘실대는 갈대바다의 힘센 물결을 마주한 채 사면초가의 위기를 직면합니다.

광야에서 이렇게 죽느니 이집트의 노예살이가 백 번 낫겠다고 소리쳐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기만 하여라” (탈출 14,14).

과연 그들은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그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갈대바다에서 체험하고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과 그분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습니다”(탈출 14,31).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 자신들의 하느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이후로 그들의 하느님 체험은 점점 깊어집니다. 광야 길을 걸으면서 그들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물과 양식을 제공하시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시나이 산으로 이르는 여정에서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만난 이스라엘은 시나이 산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다시 나게 됩니다.

‘다시 난다’는 것은 시나이 계약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과 시나이 계약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위상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이전의 백성이 계약에 매이지 않는 존재였다면 그 이후의 백성은 계약의 백성으로 그 계약에 내포된 바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불평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

시나이 계약을 맺으면서 백성들이 스스로 실천하겠노라고 약속한 바는 계약에 바로 이어 소개되는 십계명과 계약 법전(탈출 20,22?23,33)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시나이 계약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계약의 백성으로 새로 났으며, 이제는 계약의 의무를 실천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은 시나이 계약 이전과 이후에 하느님께서 백성들을 대하시는 방법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긴 광야 여정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자주 목마름과 배고픔으로 하느님께 불평하였습니다. 그래서 탈출기에서 민수기에 이르는 성경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을 거의 유사한 사건들을 통하여 반복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본문들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그것이 단순한 반복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불평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수 있습니다 (왼쪽 표 참조). 탈출기에서 보도하는 사건은 시나이 계약 이전에 발생한 것이고, 민수기에서 보도하는 것은 시나이 계약 이후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거의 동일한 말로 표현된 두 사건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아주 다른 방법으로 대하신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계약을 통해 하느님의 백성으로 다시 났으며, 새로운 신분에 걸맞은 선택을 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본문들은 계약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줍니다. 계약은 하느님의 강요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동의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 계약은 쌍방의 충실성을 요구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신다면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신실함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히브리어에서 ‘한결같은 사랑’과 ‘신실함’은 ‘헤세드’라는 한 단어로 표현됩니다. 하느님의 헤세드에 이스라엘 역시 헤세드로 응답해야 합니다. 오늘 내가 드리는 헤세드는 나를 향한 하느님의 헤세드에 상응합니까?

* 김영선 루치아 - 마리아의전교자프란치스코회 수녀. 가톨릭대학교에서 석박사 통합과정 2년을 마치고 미국 보스톤대학(예수회)에서 신학 박사학위를취득하였다. 서강대학교에서 구약성서 입문을 강의하고,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서 ‘구약성경과 피정 지도’라는 제목으로 구약성경 세미나를 하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3월호, 김영선 루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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