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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구약성경과 신들18: 치유하는 피의 신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8 조회수3,139 추천수1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 (18) 치유하는 피의 신

생명 지키는 피의 능력도 하느님에게서


우리 몸에 흐르는 피가 구약성경에서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알아보자. 히브리어로 피는 '담'이다.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제국의 공용어인 아카드어로 피는 '다무'다. 아람어와 아랍어로도 피는 '담'이다. 고대 근동 사람들은 고대 셈어의 공통적인 낱말인 담을 통역 없이도 서로 이해하고, 단어에 스며있는 종교적 심성을 자연스레 공유했을 것이다.

히브리어 '에돔'은 이웃 민족 에돔족의 이름인데 '붉다'라는 뜻이다. 이 지역 땅이 붉은색을 띠어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에돔과 이스라엘은 애증의 관계다.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과 에돔의 조상 에사우는 형제이므로 두 민족은 형제지간이지만 실제로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늘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며 지냈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상황이 뒤바뀌기도 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에돔인을 그리스어로 '이두매아'라고 불렀다. 에돔인은 로마 시대에 번성해 유다 땅까지 다스렸다.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하지만 해묵은 감정 탓인지 이들은 형제 유다인을 곱게 통치하지는 않았다.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이 이두매아의 임금 헤로데의 통치를 늘 탐탁지 않게 여긴 배경에는 이런 뿌리 깊은 민족 감정이 있다.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 펼쳐진 고대 수메르 문명 도시국가인 우르와 라르사이신, 기르수의 신들 가운데 피의 신 '다무'가 있었다. 이 피의 신은 악령을 내쫓는 능력과 찢긴 힘줄을 붙여 주는 능력이 있었다. 고대 근동인은 질병이 사악한 귀신을 통해 침입한다고 믿었기에 이 두 능력은 사실상 하나다. 한마디로 '치유하는 신'이다. 다무가 풀과 나무를 자라게 하는 생명력의 신이 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다무 신은 왕가의 고결한 혈통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었다. 이렇듯 다무는 이롭고 좋은 신이다. 담이라는 어근과 이 신의 이름을 사용한 인명이 고대 근동 세계에 널리 사용됐다.


구약성경의 피는 생명력 그 자체

피의 신은 고대 근동에서 꽤 널리 섬겨진 신이지만 구약성경에서 피를 신으로 표현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구약성경에 약 360차례 '담'이 등장하지만, 이는 피의 신이 아닌 사람이나 짐승의 혈액을 의미한다. 구약시대 히브리인들은 피에 대한 고대 근동 종교의 심성은 공유했다. 구약성경에서도 피는 신령한 생명력을 상징했다. 인간은 피를 먹으면 안 된다. 피는 신성한 것이기에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신명기 12장은 피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세 번이나 강조한다. 피는 치유하는 생명력 그 자체다. 인간이 손을 대지 말아야 할 생명의 기(氣) 또는 에너지라 바닥에 쏟아 땅에 되돌려 보내야 한다. 그러면 그 생명력을 받은 땅에서 풀이 돋아나 다시 그 풀을 먹은 짐승이 자라나서 이 땅에 생명력이 끊이지 않는다. 무척 생태적인 이 계명의 배경에는 고대 유목민의 경험과 지혜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율법에 따르면 짐승을 잡아 목을 꺾어 거꾸로 매달아 피를 바닥에 충분히 쏟아 버린 고기는 정결한 고기요, 피를 쏟지 않은 고기는 불결한 고기다. 오늘날에도 유다인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느님 백성은 모든 규정을 잘 지켜 생산된 정결한 식품만 먹어야 한다'는 계명을 지킨다. 유다인들은 계명에 따라 생산된 식품을 '코셰르'(깨끗한)라고 부르며 따로 유통하고 보통 식품보다 비싼 값을 매긴다. 물론 모든 유다인이 늘 정결한 음식만 먹고 살지는 않지만, 코셰르 음식 산업은 현대 세계 유다인 문화와 경제 일부를 이룬다.


사악함을 물리치는 피

피는 잡신이나 악령 등 부정한 것을 쫓았다. 탈출기와 레위기에서 황소와 숫염소의 피를 받아 뿌리는 것은 '속죄 예식'의 일부다. 그들의 부정과 허물 등을 씻으려는 것이다. 숫양의 피를 몸에 바르는 것도 그것이 나쁜 기운을 몰아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히브리인들은 이집트에서 탈출하기 위해 파라오에게 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하느님은 모세를 시켜 갖가지 기적을 보여 주셨지만, 파라오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하느님은 결국 이집트의 맏배를 모조리 치시며 가장 강력한 표징을 보여주셨다. 사람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가 하룻밤에 모두 죽어나갔다. 이집트에서 초상이 나지 않은 집이 없었다. 이러한 끔찍한 일이 히브리인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주님께서 바로 전날 문설주에 피를 발라 놓으면 파괴자가 그 집을 치러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일러 주셨기 때문이다. 피가 생명을 지켜주는 역할을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피가 악령을 쫓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주님이시란 것이다. 피를 바르도록 명령하신 분도, 악령이 그 피를 알아보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것도 하느님이시다. 곧 생명을 지켜주는 피의 역할은 고대 근동 신화와 같지만, 피가 신은 아니다. 생명을 지키는 피의 능력의 근원은 하느님이다. 구약성경은 피를 탈신화하고 야훼 신앙으로 재신화했다.

[평화신문, 2013년 6월 9일, 정리=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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