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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 해설7: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7-30 조회수2,932 추천수1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 해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루카 1,68)


문득 여러 해 전 제가 학생이던 때에 어느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성경의 한 부분에 대해서 논문을 쓰면서 결론이 “하느님은 인간을 구원하신다.”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신부님의 말씀으로는, 성경의 모든 페이지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 말씀을 뒤집어 보아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페이지에서 말하고 있는 것, 구약과 신약의 일관된 주제들이 지금 우리의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부님의 말씀을 뒤집어보면, 성경 전체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구약과 신약에서 인간에 대해서, 하느님에 대해서 어떤 이해가 이어지고 있는지 알아봅시다.


구약성경의 인간

창세기 1-3장은 구약성경의 인간관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구약성경 전체에서 나올 모든 이야기는 여기에 요약되어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이 위대하면서도 비참하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했던 것이지요. 창세기도 기본적으로는 그와 같은 내용을 말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되었고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그러나 죄를 지어 그 모습이 손상되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순서가 참 중요합니다. 저는 이 순서를 볼 때마다 창세기가 놀라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본모습은 하느님을 닮은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눈앞에 보이는 인간의 모습이, 나 자신의 모습이 일그러지고 모자란 것이 사실일지라도, 창세기는 인간이 본래 그런 것은 아니라고 분명하게 단언하는 것입니다.

이집트에서는 파라오가 신의 아들로서 신의 모습으로 태어나 세상을 통치한다는 사상이 있었는데, 구약성경은 임금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하느님을 닮았고 하느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린다고 말합니다. 하느님을 닮았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든, 창세기는 가장 온전한 인간은 하느님을 닮은 인간이라고 말해줍니다.

창세기 3장부터는 그 온전한 모습, 하느님 보시기 좋은 모습이 손상됩니다. 선악과를 따 먹은 다음 인간은 하느님을 피해 숨으려 하게 되고, 인간 서로에게 탓을 미룹니다.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보시니 좋았던 그 모습을 잃어버리기 시작합니다. 그러고는 세상에 죽음이 들어옵니다. 고통, 죽음, 죄는 하느님을 닮게 창조된 인간 안에 들어온, 하느님을 닮지 않은 부분들입니다.

이후로 구약성경 전체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는 믿음을 간직하면서도 끊임없이 계속되는 인간의 죄들을 보여줍니다. 카인과 아벨, 노아의 홍수, 바벨탑. 인간의 죄는 하늘까지 이릅니다. 아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 안에는 죄와 고통과 죽음이 끊이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의 인간

구약성경에서 인간에 대해 말했던 두 측면은 신약성경에서도 이어집니다. 물론, 새로움을 포함하면서 말입니다.

하느님을 닮은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 성경은 믿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말씀들을 담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로마 8,29)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본질의 모상”(히브 1,3)이시고,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1요한 3,2).

더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처음 창조되었을 때에 인간이 지녔던 하느님의 모상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약성경은, 우리가 손상된 모습을 떨쳐버리게 되리라고 말해줍니다. 창세기에서 인간이 죄로 손상되었다는 비참함보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위대함이 먼저 나왔고 그것이 인간의 첫 모습이었듯이, 신약성경은 지금 이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은 언젠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완성되리라고 보증해 줍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직은 불완전하다는 것도 신약성경은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병자와 마귀 들린 사람들. 죽음의 문제. 바오로 사도가 깊이 체험했던 죄의 굴레. 죄와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힘을 미치고 있다는 현실(로마 5,12 참조).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한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도 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도 명백했습니다.


구약성경의 하느님

이런 인간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구약의 이스라엘이 만난 하느님은 구원자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민족의 역사 안에서 두 번에 걸쳐 결정적인 체험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이집트 탈출이었습니다.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탈출 20,2).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기억해야 할 때이면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상기시키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기억한 하느님의 얼굴도 그것이었습니다.

미디안의 침입을 받고 있던 기드온도 그 하느님을 찾았습니다. “저희 조상들이 ‘주님께서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지 않으셨더냐?’ 하며 이야기한 주님의 그 놀라운 일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판관 6,13)

바빌론의 침략으로 다윗 왕조가 무너지고 예루살렘 성전도 불타버렸을 때, 이스라엘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에제 37,11)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 너의 구원자이다”(이사 41,14). ‘구원자’(고엘)는 종으로 팔려간 친족을 속량해 오는 의무를 가진 가까운 친족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의 죄 때문에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가 끊어졌다고 생각했지만 하느님은 당신께서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신 분이심을 알려주십니다(탈출 34,6 참조).

이렇게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용서와 구원을 체험한 이스라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안에서도 하느님을 구원자로 만납니다. 질병으로부터, 고통으로부터 하느님께서 구해주심을 믿고, 하느님의 구원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 희망은 죽음을 넘어서까지 이어집니다.

시편들에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죽을 때에도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시리라는 믿음이 표현되고, 더 늦은 시기의 책들인 다니엘서와 지혜서, 마카베오기에서는,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느님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신약성경의 하느님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그분께서는 당신 백성을 찾아와 속량하시고”(루카 1,68). 세례자 요한이 태어났을 때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하느님께 드린 찬양입니다.

그 첫마디에서 즈카르야는 구원자 하느님을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라 부릅니다. 그 하느님께서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루카 1,73)대로 “구원자”(루카 1,69)를 일으키십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마태 1,21). ‘예수’라는 이름부터가 ‘주님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은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구약에서 보여주신 역사의 연속이었습니다. 인간의 온갖 비참함, 곧 고통과 죽음과 죄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느님-구약에서 기다리고 희망하던 하느님의 구원이 실현되었습니다. 구약과의 연속성을 넘어섭니다.

“이스라엘의 하느님”께 믿고 바랐던 구원이 이루어졌으되, 바로 그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이 신약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짚어두어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민족들의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후손으로 태어나셨다는 사실입니다. 즈카르야의 노래(루카 1,68-79)를 다시 읽어보십시오. 예수님은, 구원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다윗의 후손이셨습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어 위대하면서도 죄와 죽음에 떨어진 비참한 인간. 그 인간을 구원하시어 당신 아드님과 같은 모습을 되찾게 하시는 하느님. 이것이 구약과 신약이 보여주는 인간과 하느님에 대한 이해입니다.

* 안소근 실비아 -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대학교와 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3년 7월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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