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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여인: 예언자 한나 - 신약성경의 유일한 여성 예언자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3 조회수6,904 추천수1
[성경 속의 여인] 예언자 한나

신약성경의 유일한 여성 예언자


아기 예수를 메시아로 즉시 알아본 여인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 가운데 예언자로 지목되는 유일한 여성은 한나이다. 한나는 실제로 예언활동을 했던 인물이다.

예언자 한나가 등장하는 장면은 루카복음사가가 간략하게 전해주는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시절의 이야기이다. 한나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났다. 마리아와 요셉은 유다인의 율법에 따라 정결예식을 치르기 위해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 예수님의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 안에 들어갔을 때, 나이 든 시메온이 이 가족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받아 안고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루카 2,29).”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하느님의 구원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고백이다. 이 찬미가는 교회의 공적 예배인 성무일도의 끝기도에 오늘날까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아기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봉헌되시는 장면에 의롭고 독실한 시메온과 함께 등장하는 인물은 당시에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한나이다. 한나는 유다인의 경건한 신앙을 그대로 이어받은 여인이었다. 그는 탄생하신 아기 예수님을 즉시 메시아로 알아본다(루카 2,36-40 참조). 이는 예언자라는 자신의 신분에 너무 잘 어울리는 태도이다.


신심 깊은 여인

성경은 한나가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의 혈통을 이어받은 매우 나이 많은 여자 예언자라고 소개한다. 그는 참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36-37절).” 한나는 남편이 일찍 죽었을 때, 재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무엇인가 다른 소명을 분명히 느꼈고, 남은 여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줄곧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37절).”

그러니까 한나는 평범한 삶이 아니라 매우 특이한 삶을 선택했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특별한 삶을 선택했던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부르심을 깊이 느꼈고 그것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전은 그에게 온전한 삶의 터전, 늘 추구하던 하느님의 현존을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된다. 그는 성전에서 지금까지의 삶은 물론 현재 자신의 삶과 내면을 되돌아보고, 자신의 미래를 하느님의 손에 온전히 내맡긴다.

이러한 삶이 그에게 충만한 기쁨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은, 그의 생애에 관련된 두 가지 상징적 숫자에서 알 수 있다. 그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았다. 그리고 지금 그의 나이는 여든네 살인데, 이는 7을 12번 곱한 숫자이다. 숫자 7은 완전함과 거룩함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혼인 생활과 예언자 생활을 통하여 한나의 삶은 모난 데가 없이 둥글게 다듬어졌다는 것이다. 그가 탄생하신 예수님과 만났던 때가 여든네 살이라는 것은, 당시 한나의 삶이 일생 가운데 정점에 달하던 때라는 것을 말해준다.

한나는 성전에서 머물러 있던 오랜 기간 동안 내적으로는 성경을 가까이 하여 하느님의 말씀에 심취했고, 외적으로는 온 이스라엘이 기다리고 있던 메시아에 대한 관점에서 예언활동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는 이사야와 미가가 메시아에 대해 들려주는 다양한 예언들을 믿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이 구세주의 오심을 기다리며 간직하고 있던 큰 희망을 잘 알고 있었다. 백성의 이러한 능동적 기다림과 내적인 고요는 한나의 마음을 더욱 드높였다. 그 결과 한나는 아기 예수님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이 바로 결정적인 순간임을 깨닫고 이렇게 선포했을 것이다. “아주 평범하게 보이는 이 아기가 바로 메시아이십니다.”

이어서 그는 하느님께 아름다운 찬미가를 불러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의 찬미가는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루카복음사가는 한나가 하느님께 감사하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38절) 모든 사람에게 단지 그 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사실만을 간결하게 전해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다. 곧 한나는 하느님의 도움을 통하여 다다른 통찰을 자기 혼자만 간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구세주께서 이미 여기에 현존하신다는 통찰을 계속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물론 그가 예수님의 사명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예수님의 공적 활동을 아직 체험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 예수님의 구원활동을 미리 준비했다고 볼 수 있다.


문턱에 있는 여인

한나는 새로운 계약이 체결되기 직전의 인물이다. 곧 새로운 계약의 문턱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러기에 그는 구약의 전형에 아직 머물러 있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문화적, 사회적 영역 안에서 여성이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과 반경은 아주 심할 정도로 한정되어 있었을지라도, 어느 시대이든지 여자 예언자들이 있었다. 홍해 바다를 건넌 사건을 승리가의 형태로 힘차게 노래한 미리암, 이스라엘의 초기에 판관과 예언자로 활약한 드보라, 요시아 왕 때에 예루살렘에서 예언적 활동으로 높은 명예를 누렸던 훌다 등이 바로 그런 여성들이다.

이스라엘에는 메시아께서 백성을 본격적으로 구원하는 시기에 모든 사람이 예언자의 영을 받는다는 약속이 있었다. 이를 요엘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 다음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그리하여 너희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요엘 3,1)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에서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베풀어지리라는 하느님의 약속이 실제로 실현되었다고 선언한다. “이 일은 요엘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된 것입니다(사도 2,16).”

성령의 약속은 여자들과 남자들에게서 이미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여자와 남자는 모두 성령을 충만히 받음으로써 예언활동을 이행할 사명이 있다. 바로 이 같은 사실을 성경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건설되기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이제 막 맛본 시메온과 한나를 나란히 소개함으로써 강조하고 있다. 한나의 선포는, 여성의 존엄이 예수님의 사명과 활동에서 크게 존중되고 인정받고 있다는 표징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한나의 이러한 모습이 오늘날 신학과 신심행위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여성의 예언활동을 상당히 높이 평가했고, 과부를 공동체의 그룹에서 크게 인정했던 초대교회 안에서, 한나는 아주 유명하고 존경받는 여인의 모범이었다. 교부 암브로시오와 예로니모는 이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그러나 후에 마리아의 신심이 거세게 확장되는 과정에서 성경의 다른 여성들은 뒷전에 밀려났고, 적지 않은 인물들이 거의 잊혀졌다.

현대는 어쩌면 옛 전통의 끈을 다시 이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사도 바오로는 테살로니카 공동체에게 이렇게 경고한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예언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1테살 5,19-20).” 여기에다 이렇게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성들의 예언활동을 무시하지 말라. 그들의 말을 들어라. 왜냐하면 하느님의 성령께서는 성(性)의 한계를 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분은 “불고 싶은 대로 부는(요한 3,8)” 바람처럼 자유로이 활동하신다.

[쌍백합, 제20호, 2008년 봄호, 김선태 사도요한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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