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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성경 속의 여인: 향유를 부은 여인 - 선한 것을 바로 행동에 옮기는 용기의 모범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03 조회수3,827 추천수1
[성경 속의 여인] 향유를 부은 여인

선한 것을 바로 행동에 옮기는 용기의 모범


네 복음서는 모두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발라드리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네 복음서 모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공통점은 어떤 여인이 주도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곧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발라드리는 사람이 여자라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네 복음서에서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들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이야기를 전해주는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전승은 두말할 것도 없이 마르코복음의 전승이다(마르 14,3-9 참조). 마르코복음은 루카복음(7,36-50 참조)과 요한복음(12,1-8 참조)의 경우에서처럼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발라드림으로써 섬기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향유를 부어 발라드림으로써 예수님의 영광스럽고 지존하신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마르코복음은 예수님께 향유를 발라드린 여인을 죄 많은 여자로 소개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그녀는 많은 죄를 지었지만 예수님에게서 모두 용서받고, 자신의 존재와 품위를 다시 회복하여 정상인으로 일상생활을 했던 사람으로 소개되지 않는다. 그러면 예수님께 향유를 바르는 이 여인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 여인이 보여주는 특별한 점은 무엇인가?

먼저 예수님께 향유를 발라드렸던 정황을 살펴보자.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아의 어떤 집에 들어가시는데, 이때는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을 붙잡아 제거하기로 결정하고 이미 음모를 꾸민 상태였다. 때문에 마르코복음은 이러한 음모 이야기를 향유사건 직전에 언급한다. 예수님께서는 목전에 다가온 당신의 죽음을 분명하게 느끼시고 또 직접 언급하시지만, 제자들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예고에 저항한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한사코 만류한다(마르 8,32 참조).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한 여인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머물러 계시던 집에 찾아온다. 그 여인의 손에는 매우 값비싼 순 나르드 향유가 든 옥합이 들려 있었다. 그 여인은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수난의 예언자이며 전령

우리는 이 여인이 누구인지 모른다. 이름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여인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여인은 무엇인가를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었고,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올바른 직감력도 있었고, 나아가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도 있었다.

어떤 여인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한가운데에 나아가 무엇인가 뜻밖의 행동을 하는 데에는 분명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하지 않으면 성공하기가 힘들다. 그것은 예수님께 향유를 발라드리는 일인데, 현대인은 이를 일종의 화장술로 생각하고 특히 여성의 전형적인 일로만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이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여성의 특별한 일로도 생각되지 않았다.

마르코복음에 의하면,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겪으실 수난의 핵심 신비를 가장 먼저 깨달은 인물이다. 곧 예수님의 수난이 참된 왕의 직무를 수행하는 일임을 깨달은 인물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여인은, 앞선 이스라엘의 왕들이 야훼 하느님의 위탁에 따라 예언자들을 통해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았듯이,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다. 예언자 사무엘이 이사이의 막내아들인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던 것처럼(1사무 16,13 참조), 이 여인은 메시아이신 예수님께 왕으로서 기름을 발라드리는 예언자 직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리스어로 그리스도라 불리는 메시아는 ‘기름부음을 받은 이’를 뜻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기름부음 받은 이로서, 그리고 새롭고 영원한 왕으로 부름을 받은 예수님의 선택과 소명이 향유를 바르는 이 여인을 통해 이 세상에 공개적으로 알려지고, 또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인은 마르코복음에서 처음으로 예수님께서 영원하신 왕이심을 선포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향유를 바르는 행위 자체는 목전에 다가온 예수님의 죽음을 선포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죽으신 다음 그 시신에 직접적으로 행할 수 없는 일(마르 16,1 참조), 곧 향유를 발라드리는 일을 미리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행동을 이렇게 이해하셨기 때문에, 이 여인의 행동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제자들을 단호하게 나무라신다. 제자들은 그 여인이 향유를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차라리 그것을 팔아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투덜거린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여자를 가만 두어라. 왜 괴롭히느냐? 이 여자는 나에게 좋은 일을 하였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내 장례를 위하여 미리 내 몸에 향유를 바른 것이다”(6.8절).

여기에서 제자들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염려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신비에 대한 몰이해, 목전에 다가온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여러 징후들을 완강하게 거부하려는 제자들의 태도, 다른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예수님과 이 여인 사이의 밀접한 관계에 대한 제자들의 시기 등으로 인해 제자들은 그 여인을 비난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위로자와 협력자

향유를 정성껏 발라드리는 여인의 행동을 예수님께서는 틀림없이 위로와 협력의 표지로 이해하시고, 나아가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주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여인은 예수님께서 심적 부담을 상당히 느끼는 삶의 어려운 국면에서 행동하였고,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행동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으로 하여금 원하는 바를 다 행할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을 온전히 개방하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인간적 나약함을 부끄럽게 생각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위로를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신다. 복음의 다른 많은 대목에서처럼 여기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기존하는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문화 내지 관습을 분명하게 깨뜨리신다. 당시의 관습으로 보자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어떤 여인이 특정한 남자에게 향유를 바르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찌 보면, 향유를 발라드리는 여인의 행동은 전형적으로 여성에게 관련되는 감정에 사로잡혀 이루어지는 행동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여인은 단순한 감정에 사로잡혀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성과 의지를 포함한 자기의 존재 전체로 행동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인은 늘 예수님 곁에 있었던 제자들보다 더 현실적으로 그리고 더 단호하게 행동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행동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이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수난의 길을 걸으실 예수님의 태도를 미리 보여준다.

어쨌든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가셔야만 하는 수난의 여정을 가로막거나 방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인은 예수님 곁에 있으면서 함께 고통을 나누려고 한다. 바로 이것은, 예수님의 계속되는 여정에서, 곧 십자가의 죽음과 무덤에까지 그분을 따라다니던 다른 여인들이 취했던 ‘곁에 머물러 있음’의 태도이다.


사람들이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제 말을 바꾸어,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 되었던 이 여인에 대해 이렇게 예언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9절).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여인은 교회 안에서 오늘날까지 다소 등한시되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에 의해 깊은 주목을 받았던 여인의 행동이 우리에 의해서도 거의 망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우리가 용기를 내어 향유를 발라드리는 여인을 더욱 많이 그리고 생생하게 기억하고 거론한다면, 그 모범은 많은 여자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줄 것이다. 특히 바로 오늘날, 이 여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좋은 모범이 될 것이다. 곧 자신의 감정과 현실에 대한 감각에 충실하라는 모범을 보여줄 것이다. 선하고 바른 것을 깨달을 경우, 많은 어려움과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단호하게 실천에 옮기라는 용기를 보여주고 있다.

[쌍백합, 제18호, 2007년 가을호, 김선태 사도요한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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