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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경]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 해설1: 유다교의 성경을 우리의 것으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5-02 조회수2,503 추천수1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 해설

유다교의 성경을 우리의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빚어진 비극적 사건들, 더 정확히 말해 가증스러운 범죄들로 인해 … 그리스도인들은 유다 민족과 그들의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를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 1항).


신약은 구약을 어떻게 보는가?

뭔가 강력한 구절로 글을 시작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3년째 이어서 제가 경향잡지에 글을 쓰다 보니, 1월에는 글의 주제가 달라진다는 것을 일단 확실하게 보여드리고 시작해야 할 것 같아서입니다. 「성경과 도덕」은 작년 12월로 끝났습니다. 같이 정리를 좀 합시다.

올해에는 ‘신약은 구약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관점을 가지고 2001년에 교황청 성서위원회에서 펴낸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를 읽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헌의 차례를 훑어보면 첫눈에 좀 무질서해 보입니다.

제1부 “그리스도교 성경의 필수적인 부분인 유다 민족의 성서”는 주로 구약과 신약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고, 제2부 “유다 민족 성서의 기본 주제들과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의 수용”은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아홉 개나 되는 주제들을 열거하며, 제3부는 “신약에 나타난 유다인들”로서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과 유다인들에 대해서, 그리고 신약성경의 여러 부분에서 유다인들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다룹니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 제4부에서 결론을 서술합니다.

열두 달에 나누어 읽다 보면 전체적인 연관을 파악하기는 더 어려울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서 미리 염두에 두실 것은, 문헌 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와 유다교의 관계라는 점입니다. 첫머리에 인용해 놓은 구절에서 말하듯이, 그리 오래되지 않은 현대에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들을 박해했습니다. 무수한 유다인들이 오직 유다인이라는 이유로 그리스도인들의 손에 죽어야 했습니다.

유다인들은, 수적으로 다수였던 그리스도인들이 찾아낸 희생양이었습니다. 이러한 처사가 얼마나 비그리스도교적인지, 당신 자신을 파스카 어린양으로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얼마나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인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전쟁이 끝난 다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유다인들과 우리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했습니다. 돌아보면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관계에는 오래전부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이대로 갈 수는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정말 철저히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문헌은 1세기부터 다시 돌이켜 보려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신앙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1세기에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그 점에서 유다교 신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이 결정적으로 구별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그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끈들이 많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마리아의 아들로 나자렛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유다인이셨습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의 하느님과 신약성경의 하느님이 같은 분이라고 믿는다면(지금 제가 의도적으로 조건문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분을 아버지 하느님으로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경전과 유다교의 경전은 많은 부분이 공통됩니다. 구약성경 46권 중 39권은, 조금 다른 형태로라도 - 다니엘서나 에스테르기 같은 경우 말입니다. - 먼저 유다교의 경전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몇 가지 질문들이 제기됩니다. 이제부터 문헌의 순서를 거꾸로 거슬러가면서 질문들을 엮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유다인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그 답을 신약성경에서부터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유다인들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습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도 신약성경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유다인들을 비난할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어떤 이들이 유다인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신약성경의 어떤 구절들을 내세워 유다인들을 비난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 것일까요? 신약성경은 어떤 성서적인 맥락에서, 어떤 역사적인 배경에서 유다인들에 대해 말하고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문헌의 제3부입니다.

다음으로, 많은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는 유다인들의 신앙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앞에서 제가 “구약성경의 하느님과 신약성경의 하느님이 같은 분이라고 믿는다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조건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그 전제를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2세기 초반의 마르키온은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은 다른 분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구약성경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하느님은 분노하고 징벌하는 악한 신이고 신약의 하느님은 자비와 용서를 베푸시는 선한 신이라고 보아, 구약성경을 그리스도교의 경전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마르키온 이후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마르키온만큼 극단적이었던 경우는 드물지만) 구약의 신앙과 신약의 신앙 사이에서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강조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문헌 제2부가 바로 이런 질문에 응답합니다. 구약과 신약의 여러 주제들에 대하여, 그 연속성과 차이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근본적으로는 유다인들과 같은 하느님을 믿고 있다는 것, 오히려 우리가 그들의 신앙을 물려받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유다교 회당을 방문하고 “유다인들은 우리의 ‘형님들’”이라고 했던 것이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였지요.


유다인들의 구약 해석은 틀렸다?

이제 제1부에서 제기하는 질문들에 대해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구약성경이 본래 유다인들의 성경이었다면, 그 책이 우리의 책이라고 주장해도 되는 것일까요?

문헌이 발표된 2001년에 신앙교리성 장관으로서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장이셨던 현 교황님은 머리말에서 유다인 학살을 기억하며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들이 이스라엘 성경의 합법적 상속자라고 아무 문제 없이 주장할 수 있는가? 곧 그리스도인들은 이 성경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을 계속해서 내놓을 권리가 있는가, 아니면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에 비추어 월권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주장을 존경과 겸손으로 철회하여야 하는가?”

다른 말로 하면, 구약성경을 우리의 경전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유다인들을 박해한 것과 마찬가지로 불의한 일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쉽게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성경을 이해하지 못해서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유다인들의 구약 해석은 틀렸고 그리스도인들만이 구약성경을 올바로 알아듣는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그러한 시각은 유다인들에 대한 배척으로 쉽게 연결됩니다. 특히 예언서를 강의하다 보면 이런 질문들을 받게 됩니다. 예언서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미리 알려주려고 기록된 것이 아닌가? 유다인들은 어떻게 이사야서 같은 책을 읽으면서도 그것이 예수님에 대한 말씀인 줄을 알아보지 못했는가?

대답은 아직 안 알려드립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하려면 몇 달 더 기다리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성경 안의 유다 민족과 그 성서」 제1부에서는 이 문제에 천천히 접근합니다. 그리스도교의 구약 해석이 구약성경에 대한 ‘유일한’ 해석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제는 오히려 ‘여러’ 해석들 가운데 하나로서 그리스도교적 해석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명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유다교와의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근대의 그리스도교 성경 연구와 대화할 때에도 필요합니다. 근대의 연구 결과들은 오히려 구약성경 저자들은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려고 구약을 쓴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좀 더 겸손하게 시작해야 합니다. 신약의 관점에서 구약을 읽는다는 것이 어떻게 정당할 수 있는가? 그다음에 다시 유다교와의 관계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유다교의 구약 해석과 그리스도교의 구약 해석은 어떻게 병립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품고 이제 다음 달부터 문헌 제1부를 읽겠습니다.

* 안소근 실비아 - 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수녀.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가톨릭대학교와 한국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성서 히브리어를 가르치고 있다.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 총무이다.

[경향잡지, 2013년 1월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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